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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장하는 아이 느는데...아이용 안전한 화장품은 없다(?)

신지혜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7.12.25 11:47

수정 2018.01.17 13:51

지난해 초등학교 여학생 42.7% "색조 화장 경험 있다"
10대 화장품 시장도 매년 20%씩 성장..약 3000억 규모
식약처, 지난 1월 '어린이 화장품'을 정식으로 허용하겠다고 했지만 여전히 감감무소식
한 학생이 거울을 보며 화장을 고치고 있다. 요즘에는 학생들이 스킨, 로션 등의 기초라인 화장품을 이용한 화장 뿐만 아니라 색조 화장품을 이용한 화장에도 공을 들인다. 사진=Pixabay.com
한 학생이 거울을 보며 화장을 고치고 있다. 요즘에는 학생들이 스킨, 로션 등의 기초라인 화장품을 이용한 화장 뿐만 아니라 색조 화장품을 이용한 화장에도 공을 들인다. 사진=Pixabay.com

#내년 초등학교 5학년이 되는 딸을 둔 주부 이정희(가명·43)씨는 매일 아침 딸아이와 전쟁을 치루곤 한다. 기껏 차려준 밥상은 본체도 않은 채 방으로 다급히 들어가 현란한 화장술을 펼치기 때문이다.
화장품 종류만 무려 10가지. “네 나이 때 무슨 화장이야? 스킨, 로션, 선크림만 발라” 화를 꾹꾹 눌러가며 말하지만 “모르면 가만히 있어. 내 친구들 다 화장하고 다니는데 나 왕따 당하면 엄마가 책임질거야?” 되받아치는 딸의 말에 속이 타들어가기 일쑤다.


화장하는 학생의 연령이 갈수록 낮아지고 있다. 중·고등학교의 청소년 뿐만 아니라 초등학교 고학년 어린이들까지 앳된 얼굴에 화장을 하고 있다. 게다가 어린이들은 스킨, 로션 등의 기초라인 화장 뿐만 아니라 색조 화장품을 이용한 화장에도 공을 들인다는 것이다.

지난해 녹색소비자연대전국협의회의 ‘어린이·청소년 화장품 사용 행태’ 조사 결과에 따르면 초등학교 여학생 42.7%가 색조 화장 경험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매일 색조화장을 하는 초등학생은 12.1%에 달했다. 화장에 일찌감치 눈을 뜬 학생들은 동영상 사이트 유튜브에 올라온 등교 메이크업 영상이나 유명 아이돌의 화장법 영상을 기반으로 고난도의 화장기술을 익히기도 한다.

■화장품 업계, 어린 학생 고객 확보전 '총력'
화장에 관심을 갖는 학생들이 증가하면서 화장품 업계는 이들을 겨냥한 제품을 앞다퉈 출시하고 있다.

25일 화장품 업계에 따르면 10대 화장품 시장은 매년 20% 성장하고 있으며 현재 약 3000억원 규모인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1월 화장품 전문 제조·유통(OEM·ODM)업체 BCL은 10대 전용 화장품 브랜드 '0720'을 출시했다. ‘0720’은 10대들이 등교를 위해 바쁘게 서두르는 시간인 오전 7시 20분을 의미하기도 하고, 10대들이 쓰는 신조어인 ‘이거 레알’(어떤 내용이 사실임을 강조할 때 쓰는 말)이라는 뜻도 담겨 있다. 이랜드그룹도 지난해 한국콜마와 손잡고 10대 화장품 브랜드 ‘더데이걸즈뷰티’ 라인을 선보였다. 대형 문구 전문점과 마트에서도 어린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PB 화장품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심지어 학교 앞 문방구에서도 틴트 2천원, 팩트 3천원의 저렴한 가격으로 색조 화장품을 판매하고 있다.

어린이 화장품 품목을 보면 어른들이 쓰는 것 못지않다. (왼쪽부터) 썬크림 팩트, 립스틱, 매니큐어. 사진=독자 제공
어린이 화장품 품목을 보면 어른들이 쓰는 것 못지않다. (왼쪽부터) 썬크림 팩트, 립스틱, 매니큐어. 사진=독자 제공

■식약처의 ‘어린이 화장품’ 합법화는 언제쯤?
어린 학생을 대상으로 한 화장품 시장의 규모가 커지면서 우려의 목소리도 함께 커지고 있다. 기초화장도 제대로 하지 않은 상태에서 하는 섣부른 화장은 성장기에 있는 초등학생의 여린 피부를 자극할 수 있기 때문이다. 초등학생들은 화장품의 올바른 사용법에 대해서도 잘 모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김주덕 성신여대 뷰티산업학과 교수가 지난해 11~12월 서울과 인천, 울산의 초등학교 4~6학년 여학생 288명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한 결과, 70.5%에 해당하는 학생이 화장 후 일반 비누 또는 폼클렌징으로만 화장을 지우고 있었다. 이중세안에 대한 개념이 부족한 탓이다.

서울 서대문구 소재의 모 초등학교에 다니는 김소영(가명·13)양은 “화장을 해도 일반 비누로 세안하는 경우가 많다”며 “친구들이 화장품에 대해서는 관심이 많지만 화장을 지우는 제품에는 관심이 없다”고 말했다.

식품의약품안전처(이하 식약처)는 지난해 ‘소중한 내 피부를 위한 똑똑한 화장품 사용법’ 홍보물을 제작해 10세 미만의 초등학교 저학년을 위한 ‘예쁜 나’ 책자를 전국 초등학교에 배포했다. 어린 학생들이 화장하는 추세를 막을 수 없다면 차라리 안전하게 화장품 사용법을 교육하자는 의도다.

더불어 지난 1월에는 ‘어린이 화장품’을 정식으로 허용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현재 식약처가 관리·감독하는 화장품 유형은 ▲영유아용(만 3세 이하 어린이용) ▲목욕용 ▲인체 세정용 ▲눈 화장용 ▲ 방향용 ▲두발 염색용 ▲색조 화장용 ▲두발용 ▲손발톱용 ▲면도용 ▲기초화장용 ▲체취 방지용 이렇게 12가지다. 식약처는 올해 9월까지 화장품 유형에 ‘어린이용 제품류’를 추가하고 기준·관리에 관한 시행안을 만들 계획이라고 입장을 발표했다. 어린이에게 알레르기를 유발할 수 있는 물질이 들어있을 경우 의무적으로 표시하고, 색소 물질 규제를 강화하는 방안도 포함됐다.

하지만 식약처는 아직까지도 어린이용 화장품에 대한 개정안을 발표하지 않고 있다. 화장품 정책과의 한 관계자는 “화장품 업계와 소비자의 의견에 대해 좀 더 들어봐야 할 것 같다”며 “내부조사과정이 진행되고 있어 정확한 날짜를 말하기 어렵지만 내년 중반이나 하반기에 계획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주부 송유정(가명·35)씨는 “어린 학생들은 친구들이 화장을 하면 따라할 수밖에 없다”며 “피부의 자극을 최소화하는 성분으로 만들어진 어린이 전용 화장품이 하루라도 빨리 출시돼야 한다”고 말했다.

sjh321@fnnews.com 신지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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