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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 합병 가이드라인 '번복'] ‘순환출자 해석’ 스스로 뒤집은 공정위… 신뢰성 타격 불가피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7.12.21 17:36

수정 2017.12.21 22:08

삼성물산 합병 순환출자고리‘강화→신규 형성’ 결정 바꿔
과거 잘못된 판단 인정하며 재벌개혁 메시지 띄웠지만…
이미 내려졌던 법집행 번복.. 신뢰성.예측가능성 훼손 지적
삼성 불복땐 법정싸움 갈듯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이 21일 정부세종청사 공정거래위원회에서 지난 2015년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과정에서 삼성물산 주식을 500만주만 매각하도록 한 공정위의 결정이 잘못됐음을 시인한 후 머리 숙여 사과하고 있다. 연합뉴스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이 21일 정부세종청사 공정거래위원회에서 지난 2015년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과정에서 삼성물산 주식을 500만주만 매각하도록 한 공정위의 결정이 잘못됐음을 시인한 후 머리 숙여 사과하고 있다. 연합뉴스

[삼성 합병 가이드라인 '번복'] ‘순환출자 해석’ 스스로 뒤집은 공정위… 신뢰성 타격 불가피

공정거래위원회가 21일 삼성그룹의 순환출자 해소에 관한 결정이 잘못됐음을 인정한 것은 김상조 위원장의 대기업재벌 구조개혁의 강한 의지로 해석된다. 과거 판단 잘못을 인정하고 재벌개혁의 핵심인 순환출자 문제를 명확히 해두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공정위의 법집행 신뢰성과 원칙, 예측가능성이 훼손됐다는 비판이 예상된다. 삼성 측이 공정위 결정에 불복할 경우 법적분쟁도 예상된다. 삼성그룹은 당혹해하면서도 공식입장을 내놓지 않고 있다.



공정위가 이처럼 과거 잘못을 깨끗이 인정하고 털어낸 것은 향후 재벌개혁에 공정위의 정당성을 강화하고 이를 본격화하겠다는 메시지로 판단된다. 공정위 기업집단국이 지난 20일 대기업재벌 총수일가의 편법적인 지배력 강화 창구로 의심되는 공익법인에 대한 운영실태 조사에 착수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공정위 '순환출자 해석' 뒤집어

공정위가 결정을 변경한 핵심은 순환출자를 기존 고리의 '강화'인지, 새로운 고리가 만들어진 것으로 볼 것인지에 대한 판단이다. 이 판단이 전혀 다른 결정을 가져온다. 합병으로 순환출자를 형성했다면 계열출자를 한 회사가 취득이나 소유한 주식 전부를 처분해야 한다. 그러나 순환출자가 강화된 것이라면 상황이 달라진다. 합병으로 추가되는 출자분만을 처분하거나 순환출자 고리가 복수이면 더 큰 추가 출자분만 매각하면 된다.

이런 가이드라인에 따라 2년 전 공정위는 '경제적 실질이 동일하다'는 근거로 순환출자 강화에 해당된다고 봤다. 이를 전문가들과 재검토했더니, 이것이 잘못된 판단이었다는 데 의견이 일치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기존 결정(3개 순환출자 고리 강화)을 엎은 것이다. 합병 당시 존속법인(제일모직)은 이미 순환출자 고리 안에 있었던 게 아니고, 합병 결과 순환출자 고리 내로 비로소 편입돼 순환출자 고리(삼성SDI→신 삼성물산→삼성전자)가 새로 형성됐다는 설명이다. 여기에다 순환출자 형성 또는 강화를 판단하는 '경제적 실질이 같다'는 근거도 법해석 범위를 넘어서는 것으로 타당하지 않다고 본 것이다.

삼성은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으로 삼성SDI가 통합 삼성물산 주식 904만2758주(2015년 9월2일 합병후 기준 4.7%)를 갖게 됐다. 공정위 재결정으로 순환출자를 해소하려면 이를 모두 매각해야 한다. 이미 삼성은 지난 2016년 2월 삼성물산 주식 500만주를 매각해 현재 삼성SDI의 삼성물산 지분율은 2.11%다. 공정위가 이를 재차 번복할 가능성은 없다. 김 위원장은 "법원의 판단(1심에서 공정위의 유권해석 변경에 삼성의 청탁 인정)이 일부 달라진다 하더라도 공정위의 오늘 결정은 변경되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공정위 신뢰성 '양날의 칼'

공정위의 '결자해지'이지만, 법집행 신뢰성 측면에선 '양날의 칼'을 내리친 셈이다. 되짚어보면 공정위가 그만큼 권력에 자유롭지 못했다는 것이다. 자초한 면이 컸다. 김 위원장은 "이번 결정은 기존 가이드라인 작성 당시 절차적 하자가 있었다는 재판 결과(2017년 8월)와 국정감사 지적(10월) 등에 따라 새롭게 검토절차를 밟은 결과"라고 했다.

공정위는 당초 삼성SDI와 통합삼성물산 간 출자 고리가 '신규로 형성'된 것으로 판단했다. 이럴 경우 삼성SDI는 삼성물산 주식 전량(904만주)을 매각해야 한다. 이 의견을 상정했으나, 최종 결정에서 출자고리가 '신규 형성'이 아닌 '강화'로 해석했다. 처분주식수도 500만주로 축소된 것이다. 이런 결정 번복 과정이 석연치 않았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에 대한 특검수사가 진행되자 공정위의 이런 판단에 청와대 외압설이 불거졌다. 서울중앙지법도 지난 8월 이재용 부회장에 대한 국정농단 관련 뇌물공여죄 1심 판결에서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에 따라 발생한 순환출자 변동에 대한 유권해석 과정에서 가이드라인이 작성된 경위와 그 적용에 대해 삼성의 청탁이 성공한 것으로 볼 수 있다"고 판시한 바 있다. 국회 국정감사에서도 같은 지적이 나왔고, 공정위의 가이드라인 변경 필요성이 제기됐다.

법원 판단 이후 '합병관련 신규순환출자' 해석이 논란이 되자 순환출자를 보유하고 있는 여러 기업집단들도 혼란스러워했다. 현재(5월 1일 지정일 기준) 삼성 7개, 현대자동차 4개, 롯데 67개 등 8개 상호출자제한기업집단이 총 92개 순환출자 고리(1주 이상)를 보유하고 있는 상황이다.

결과적으로 공정위가 이미 내려진 처분을 번복함에 따라 법집행의 예측가능성, 신뢰성을 훼손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삼성이 불복해 소송을 제기할 가능성도 있다. 이에 대해 김 위원장은 "해석 기준의 변경은 소급과는 관계가 없다. 공익을 보호하기 위한 판단"이라고 선을 그었다. "삼성이 소송을 제기한다면 최종 판단은 법원의 몫이 될 것"이라며 향후 법적대응도 시사했다.

한편 공정위의 이번 결정이 현실화된다면 이재용 부회장의 삼성 지배력에 문제가 생길 수도 있다는 시장의 분석도 제기된다. 이 부회장은 삼성 지배구조의 핵심인 삼성전자의 지분 4.61%를 갖고 있는 삼성물산의 최대주주(특수관계인 포함 지분율 39.08%)로서 삼성전자 지배력을 행사하고 있다. 404만주가 2.1%에 불과해 당장 지배력이 흔들릴 일은 없다.
하지만 향후 보험업법 개정이나 금융그룹통합감독시스템이 시행되면 상황이 달라질 수 있다. 삼성생명이 보유한 삼성전자 주식(8.19%)을 매각해야 하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어서다.
삼성의 불복 가능성이 점쳐지는 근거다.

skjung@fnnews.com 정상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