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금난 영세업체에 접근 주소 빌려주면 회사인수 유혹.. 은행서 대출 받아 돈만 챙겨
피해자 채무.이자 모두 떠안아
"공장 운영하기 힘드시죠? 사업장 주소지를 빌려주면 인수할게요"
피해자 채무.이자 모두 떠안아
공장을 운영하던 A씨가 J씨(55)에게서 이런 제안을 받자 눈동자가 흔들렸다. 회사 빚이 점점 불어났지만 사정이 어려워 갚을 수 없었던 참이었다. A씨는 J씨 말대로 사업장 주소지를 넘겨주고 사무실 임대 계약서를 작성해줬다. 그러나 J씨 말은 모두 거짓이었다. J씨는 대출만 받아가고 회사를 인수하지도 않았다.
■자금난 시달리는 영세 사업장만 골라
자금난에 시달리는 영세 회사의 사업장 주소지를 빌려 유령법인을 설립한 뒤 은행 대출을 받아 수십억원을 가로챈 혐의를 받는 일당이 무더기로 덜미를 잡혔다.
서울 마포경찰서는 유령 법인을 통해 은행에서 대출받은 J씨 등 13명을 사기 및 공정증서원본불실기재, 불실기재공정증서원본행사 혐의로 검찰에 기소 의견으로 송치했다고 26일 밝혔다. 이들 중 2명은 수배했다.
J씨 등은 2014년 9월부터 지난해 12월까지 경기도에 있는 회사 5개 사업장 주소지에 유령법인을 만들고 시중은행에서 약 26억원을 대출받은 혐의다.
경찰에 따르면 J씨는 파산 위기에 놓인 영세 회사에 접근해 "인수대금과 밀린 직원 급여를 은행에서 대출받아 인수하겠다"며 사업장 주소지를 빌렸다. 이후 J씨는 실제 회의를 열지 않았으면서 법인 대표 변경안에 대한 회의록(정관) 등을 작성했고 신용등급에 하자가 없는 K씨(53) 등은 자신을 법인 대표로 등록한 뒤 관할등기소에 허위로 법인 신고를 했다는 것이다. 이들은 이 같이 하나의 사업장에 또 다른 유령회사를 설립하는 수법으로 여러 개의 유령법인을 설립했다고 경찰은 전했다.
여러 개 유령법인을 세운 것은 실적을 조작하기 위해서였다. J씨 등은 이들 유령회사끼리 거래를 한 것처럼 속이고 매입매출 세금계산서를 허위로 만들어 국세청에 신고한 것으로 조사됐다.
■허위 자료 통해 은행 대출
J씨 일당은 은행 대출을 받기 위해 전문 브로커에 맡겨 허위 재무제표까지 만든 것으로 드러났다고 경찰은 전했다. 허위 자료를 통해 신용을 평가하는 회사에서 우량기업으로 평가받고 시중은행에서 '기업운전자금' 명목으로 26억원을 대출 받은 것이다.
경찰은 이들이 대출사기 범행을 목적으로 법인 대표이사 명의를 만들었다고 보고 있다. 경찰은 "해당 법인에서 대출받은 돈이 회사 운영을 위해 사용됐다는 증거는 확인되지 않았다"고 전했다. J씨 등 13명 중 일부는 혐의를 인정했다고 경찰은 설명했다.
금융감독원 관계자는 "실적에 급급한 은행에서 서류가 미비하더라도 대출해 주기도 한다"며 "대출 사기를 당하면 대출해준 은행 직원이 직접 대출금을 배상하는 등 책임이 따를 수 있기 때문에 주의해야 한다"고 말했다.
integrity@fnnews.com 김규태 김유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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