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구본영 칼럼] 원교근공을 다시 생각한다

구본영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8.01.03 17:05

수정 2018.01.03 17:05

遠交近攻
미.중 영토 야심 비교할 때 '遠美近中'은 위험한 도박
한미동맹 금 가면 주권 흔들
[구본영 칼럼] 원교근공을 다시 생각한다

해가 바뀌면 누구나 새 결심을 다진다. 국가적으로도 연초는 국정 나침반을 점검할 호기다. 북핵 위기는 커지는데 이를 제어할 지렛대는 작아지는 대한민국의 현실을 보며 갖는 생각이다.

지난 연말 미국 정찰위성이 찍은 한 장의 외신 사진을 보라. 중국 선박이 서해상에서 북한 화물선에 유류를 싣는, 밀수 현장이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중국이 유엔 안보리 결의를 위반해) 현행범으로 딱 걸렸다"고 표현한 바로 그 장면이었다. 한반도가 격랑의 바다에 떠 있음을 새삼 실감케 했다.


북핵은 이미 우리 목을 찌르려는 비수다.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은 신년사에서 "내 책상에 핵 버튼이 있다"고 하지 않았나. 그러나 우리 스스로 뿌리칠 힘이 없다는 게 문제다. 더군다나 앞의 사진에서 읽히는 '불편한 진실'이 뭔가. 중국은 북한이 핵을 내려놓도록 하는 과정에서 김정은 정권이 무너질 수준의 제재를 할 의지가 없다는 사실이다. 그런데도 문재인정부가 미국과 멀어지고 중국 쪽으로 기우는 외교 행보를 하고 있다면 문제는 더욱 심각하다.

지난 한 해는 나라 전체가 중국의 자장(磁場) 속으로 빨려들어간 느낌이었다. 주한미군이 경북 성주에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4기를 배치하자 중국이 보복 공세를 취하면서다. 한류와 한국행 단체관광까지 쥐락펴락하면서 우리를 길들이려 하자 결국 정부는 몸을 굽혔다. 강경화 외교부 장관은 사드 추가 배치와 미사일방어체계(MD) 및 한.미.일 군사동맹 불가 등 이른바 '3불(不)'을 언명해야 했다.

그럼에도 중국은 공세의 고삐를 늦추지 않았다. 중국에 진출한 기업인들 얘기를 들어보면 사태는 자못 심각하다. 한국산 게임이 만리장성에 막힌 지 오래다. 문 대통령의 방중을 계기로 한국 게임에 대한 중국의 판호(출시허가)가 재개되리라는 기대도 무산됐다. 심지어 중국의 스마트폰 업체와 관영 언론들이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등 우리 메모리 반도체 업체들에 가격을 인하하라고 압박하고 있다는 소식이다. 사랑채를 내주니 이제 안방까지 내놓으란 식이다.

안희정 충남지사가 펴낸 '산다는 것은 끊임없는 시작입니다'란 책을 며칠 전 다시 봤다. "국경을 맞댄 강대국은 우리를 속국으로 만들 위험성이 높다. 반면 바다 건너 멀리 있는 강대국은 동맹을 맺어 힘을 빌릴 수 있는 관계가 가능하다"라는 대목에 고개가 끄덕여졌다. 범여권의 기조가 '원미근중(遠美近中)'으로 기운 인상을 주는 가운데 그가 '원교근공(遠交近攻) 외교론'을 폈다는 사실이 얼마간 위안거리다.

사실 원교근공 외교술은 중국 전국시대 책사 범수가 원조다. 이를 '먼 나라와 제휴해 이웃 나라를 치라'는 뜻으로만 해석한다면 단견이다. 그는 한, 위라는 두 이웃 나라를 건너뛰어 제를 치려는 진(秦)의 소양왕에게 충고한다. 그 사이 두 인접국이 진의 영토를 호시탐탐 노릴 수 있음을 잊지 말라고. 우리도 한반도 주변 4강의 우리 영토에 대한 야심이 '중국=일본>러시아>미국' 순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현재 중국과 국경분쟁 중인 14개국 중 '자유민주국가+미군 주둔국'이란 공통분모를 갖는 나라는 없다.
중국이 이를 충족하는 '통일 한국'과 국경을 맞대길 원할 리도 만무하다. 그렇다면 중국이 핵무장한 북한을 버리고 우리 편에 서리라는 기대는 소망적 사고일 뿐이다.
문정부가 한.미 동맹을 흔들면서까지 중국에 기대는 것은 주권을 담보로 한 위태로운 도박임을 유념했으면 한다.

kby777@fnnews.com 구본영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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