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외교/통일

[남북 2년만에 만남] 속담·농담 오가며 화기애애..우려했던 기싸움 없었다

김은희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8.01.09 16:51

수정 2018.01.09 21:39

조장관 "시작이 반" 운 떼자
리선권 "둘이 가야 멀리간다"
공개 회담하자 즉석 제안도
남북 고위급회담이 열린 9일 오전 리선권 조국평화통일위원회 위원장 등 북측 대표단이 판문각을 나서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남북 고위급회담이 열린 9일 오전 리선권 조국평화통일위원회 위원장 등 북측 대표단이 판문각을 나서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 판문점=공동취재단 김은희 기자】 "여기 이렇게 보따리가 많아요."

무려 2년여 만에 열린 남북회담 현장으로 향하기 직전 조명균 통일부 장관은 자신의 가방을 가리키며 말했다. 그는 회담장인 평화의 집에서 보따리를 한가득 풀어놨고 북측 대표단도 화답하듯 '평창 동계올림픽 파견'이라는 선물 보따리를 내놨다.

우려했던 기싸움은 없었다. 남북 대표단은 첫 전체회의에서 시종일관 화기애애하게 대화를 이어갔다.
수석대표 간 회담부터 의견조율을 위한 두 차례의 '4+4' 접촉, 발표문안 협의를 위한 '3+3' 접촉, 수석대표 간 추가회담, 마지막 종결회의까지 남북 간 큰 이견은 없었다는 게 현장 관계자의 전언이다.

첫 회의의 긴장감을 깬 건 북측 대표단 수석대표인 리선권 조국평화통일위원회 위원장이었다. "내려오면서 조 장관에게 뭘 말할까 생각했다"던 리 위원장은 조카 얘기로 말문을 열었다.

리 위원장은 "2000년 6월 출생한 조카가 벌써 대학에 간다"면서 "벌써 18년이다. 강산이 변한다는 10년이 두 번이나 지났으니 얼마나 많은 세월이 흘렀느냐"고 말했다. 2000년은 남북이 첫 정상회담을 열고 6.15 남북 공동선언을 채택한 때다. 그러면서 "뒤돌아보면 6.15 시대, 그 모든 것이 다 귀중하고 그리운 것이었고 참으로 아쉬운 시간이었다"고 덧붙였다. 남북관계가 좋았던 시기를 언급하며 대화에 대한 의지를 드러낸 것이다.

조 장관이 학창시절 스케이트 선수로 활약한 일화도 리 위원장이 직접 언급했다. 그는 "동심은 순결하고 깨끗하고 불결한 게 없다"면서 "그때 그 마음을 되살린다면 회담이 잘 되리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우리측 대표단은 리 위원장의 이 같은 덕담에 환하게 웃어 보였다.

조 장관과 리 위원장이 속담과 격언, '선물'을 나란히 언급하며 보조를 맞췄다는 점도 인상적이었다.

먼저 조 장관이 속담 '시작이 반이다' '첫 숟갈에 배부르랴'를 인용하며 이번 회담이 갖는 의미를 강조하자 리 위원장은 '혼자 가는 것보다 둘이 가는 길이 더 오래간다' '마음 가는 곳에 몸도 가기 마련'이라는 격언으로 발을 맞췄다.

또 리 위원장이 "온 겨레에게 새해 첫 선물, 값비싼 결과물을 드리는 것이 어떤가 한다"고 강조하자 조 장관은 "첫 남북회담에서 좋은 선물을 만들어나갈 수 있도록 노력했으면 좋겠다"고 화답했다.

이날 회담에선 리 위원장의 호탕한 모습도 눈길을 끌었다.
즉석에서 "확 드러내놓고 하는 게 어떠냐"며 회담 전체를 공개하자는 돌발 제안을 했다는 게 대표적이다. 논의 끝에 '비공개회담 후 공개'로 조율됐으나 북측의 공개 선(先)제안이 가지는 의미는 작지 않다.


리 위원장은 또 모두발언이 끝난 뒤 취재진이 수석대표 간 악수를 다시 요청하자 "기자 선생들에게 잘 보여야 한다"고 농담을 건네기도 했다.ehkim@fnnews.com ehkim@fnnews.com 김은희 기자

fnSurve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