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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있는 올림픽 이야기] 1972년 뮌헨올림픽 ‘검은 9월단’ 테러에도 올림픽은 계속됐다

성일만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8.01.09 18:58

수정 2018.01.09 18:58

테러에 중단된적 없는 올림픽
올림픽은 테러로 중단된 적 없었다.

1988년 9월 24일 기자는 잠실 올림픽 주경기장에 있었다. 오후 1시30분, 막 남자 100m 결승이 시작되려 하고 있었다. 100m는 단 10초에 승부가 끝난다. 가장 짧은 스포츠 이벤트. 잠시 한눈을 팔면 놓치고 만다.

저만치 출발선에 선 선수들이 보였다.
1984년 LA올림픽 4관왕 칼 루이스(미국)와 벤 존슨(캐나다), 크리스티 린포드(영국) 등 지상에서 가장 빠른 사나이들이 스타팅 블록에 몸을 웅크리고 있었다.

출발 신호와 함께 8명의 '인간 탄환'들은 일제히 땅을 박차고 기자를 향해 달려 왔다. 취재를 위해 결승점 부근에서 기다리고 있었으니 말이다.

당시 대부분의 전문가들은 칼 루이스의 금메달을 점쳤다.

루이스는 불과 한 달 전인 8월 취리히 대회에서 9초93으로 금메달을 차지했다. 존슨의 기록은 10초00. 1987년 로마 세계선수권대회 우승자 존슨은 허벅지 부상에 시달리고 있었다.

그런데 정작 결승테이프에 맨 먼저 몸이 닿은 선수는 벤 존슨이었다. 9초79, 세계 신기록이었다. 루이스는 9초92. 자신의 기록을 0.01초 앞당겼으나 완벽한 패배였다. 3위는 9초97의 린포드.

루이스는 제 정신이 아닌 듯 보였다. 퇴장하는 곳을 찾지 못해 허둥대는 루이스의 모습이 고스란히 기자의 눈에 들어왔다. TV 카메라는 우승자 존슨을 쫓기에 바빴지만. 남자 100m 결승은 기자가 지켜본 가장 짜릿한 10초 승부였다. 하지만 존슨은 금지약물 복용 사실이 드러나 금메달을 박탈 당했다.

1988년 서울올림픽에 참가할 당시 루이스의 건방은 하늘을 찔렀다. 1984년 LA올림픽 4관왕이자 지상 최고의 스프린터, 루이스는 자신의 경호를 위해 별도의 리무진을 요구했다. 물론 조직위원회는 거절했다. 한 선수에게만 특별대우를 해줄 수는 없었다.

당시 서울올림픽에 출전한 선수들은 서울의 치안에 불안감을 가졌다. 김포공항 테러(1985년), 대한항공 폭파(1987년) 등 잇달아 테러가 발생한 탓이었다. 루이스의 과민반응은 그 연장선에 있었다. '평화의 제전' 올림픽은 전쟁으로 인해 세 차례 중단됐다. 하지만 테러로 인해 올림픽이 열리지 못한 적은 한 번도 없다.

가장 심각한 위협은 1972년 뮌헨 올림픽에서 '검은 9월단'이 자행한 테러였다. 이 사건으로 인해 총 17명이 사망했다. 팔레스타인 게릴라들인 '검은 9월단' 8명은 이스라엘 숙소에 난입해 선수 2명을 사살하고 9명을 인질로 삼았다.

이스라엘은 특공대 파견을 제안했다. 독일 정부는 협상을 벌여 이들을 선수단 숙소 밖으로 유도하는 데 성공했다.
이들을 이집트 카이로로 이송시켜 준다고 안심시킨 다음 급습했다. 결국 인질 전원과 게릴라 5명, 독일 경찰 1명이 사망한 후 끝을 맺었다.
이 사건은 스티븐 스필버그에 의해 영화 '뮌헨'(2005년)으로도 만들어졌다.

texan509@fnnews.com 성일만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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