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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의나루] 혁신성장은 누가 추진해야 할 것인가

김충제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8.01.11 16:44

수정 2018.01.11 21:13

[여의나루] 혁신성장은 누가 추진해야 할 것인가

문재인정부가 내놓은 경제정책 중에서 국민 모두가 동의하는 정책이라면 단연 혁신성장이 아닐까 싶다. 기실 혁신성장의 핵심 내용이 우리나라의 미래 먹거리, 즉 신산업을 열어가자는 것이기에 그 필요성에 공감하지 않을 사람은 없을 것이다. 지난 10일 발표한 대통령 신년사에서도 혁신성장의 추진이 미래 성장동력을 발굴하고 좋은 일자리를 창출하는 수단이 돼야 한다는 강력한 기대감이 표출된 바 있다.

그런데 막상 혁신성장을 이끌어나갈 주체가 누가 돼야 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상당한 이견이 있는 것 같다. 작년 12월 초 대통령 주재로 열린 혁신성장회의 전략회의에서는 '과거의 대기업 중심, 정부 산업정책 중심의 성장전략에서 중소.벤처 기업의 규제를 풀어 이들이 신산업을 만들어내는 완전히 정반대의 방향성을 가지는 성장전략'이라고 발표됐다. 더욱이 정부 내에서 혁신성장을 추진해 나가는 핵심 부처로서 중소벤처기업부의 역할이 강조되고, 신산업을 열어가기 위해 설치한 4차산업혁명위원회 구성을 보더라도 정부는 혁신성장의 주체로서 중소.벤처기업에 대한 기대감이 큰 것으로 보인다.
반면 재계를 중심으로 한 산업계에서 혁신성장의 주체는 역시 대기업이 맡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 같다. 이들은 향후 4차 산업혁명을 이끌어 갈 주요 기술인 인공지능 (AI), 사물인터넷, 빅데이터, 로봇 등의 기술력은 기존 대기업들이 세계적 수준에 가장 가까이 다가가 있으므로 이들 대기업이 일할 수 있게 규제를 풀어야 혁신성장이 가능하다고 주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과연 어느 쪽이 옳을까.

필자는 양쪽이 모두 옳기도 하고, 틀리기도 하다고 생각한다. 아마도 혁신성장의 이상적 모델인 실리콘밸리를 살펴보면 알 수 있다. 실리콘밸리의 스타트업(창업초기기업)들은 그들이 창의적으로 발굴하고 개발하기 시작한 신산업을 본격적으로 비즈니스로 열어갈 때는 실리콘밸리의 대표 대기업들과 손잡으려 한다. 때로는 그냥 서로 투자를 주고받는 협업의 형태를 띠기도 하지만, 자신들이 일군 비즈니스가 기존 대기업들에 M&A되기를 원하는 스타트업이 대부분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기실 스타트업과 기존 대기업 사이의 협업 관계는 스타트업들이 비즈니스 아이디어를 형성해 나가는 단계부터 이뤄지는 것이 일반적이다. 이 과정에서 기존 대기업들은 자신들이 축적해 온 기술력과 사업 추진력을 동원해서 스타트업들에 기술개발 멘토, 잠재적 투자자 역할을 하면서 스타트업들의 창업을 도와준다. 반면 스타트업들은 기존 대기업들이 놓칠 수 있는 니치 분야에서 창의적 아이디어를 제공하면서 새로운 비즈니스의 창안자 역할을 하는 셈이다. 결국 실리콘밸리의 힘은 이런 창의적 스타트업들과 세계적 플랫폼을 갖춘 대기업들이 항상 협업을 이루는 산업생태계를 형성하고 있는 데서 나온다고 해야 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나라의 혁신성장을 위한 산업생태계에서도 대기업, 중소.벤처기업, 스타트업 어느 누구도 빠져서는 안 된다. 대기업들이 가진 기술력, 글로벌 비즈니스 경험이 스타트업들이 가지는 창의적 활력과 만나야 진정한 혁신성장을 위한 효율적인 산업생태계 형성이 가능할 것이기 때문이다. 아마도 혁신성장을 열어갈 규제개혁의 핵심도 바로 이들 두 세력이 쉽게 잘 만날 수 있게 만드는 데서 찾아야 할 것이다.


그렇지만 이 과정에서 모두가 가질 수 있는 의구심이 있다. 대기업이 스타트업의 창의성을 이용하기만 하고 사업화 과정에서는 이들을 배제해버리지 않을까 하는 것이다.
정부가 주의를 기울여야 하고, 대기업들이 자세를 전환해야 하는 게 바로 이 부분일 것이다.

김도훈 경희대 국제대학원 특임교수·전 산업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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