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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목사' 빌리 그레이엄, 99세 일기로 별세

윤재준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8.02.22 01:56

수정 2018.02.22 01:56

‘미국의 목사’로 불리던 빌리 그레이엄이 21일(현지시간) 99세를 일기로 미 노스캐롤라이나주 몬트리트의 자택에서 별세했다고 AP통신 등 외신들이 보도했다.

그레이엄 목사는 지난 1989년 파킨슨병 진단을 받았으며 골절상과 폐렴 등으로 건강이 악화돼왔다.

지난 1918년 노스캐롤라이나주 샬롯 인근의 목장에서 태어난 그레이엄 목사는 16세때 참가한 부흥회에서 목회자의 길을 처음 깨닫고 밥존스대학교 거쳐 플로리다주 탬파의 플로리다 바이블 인스티튜트에 재학했다.

그는 어느날 밤에 빈 골프장의 18번홀을 걷던 중 비로써 목사의 부름을 받았다고 회고했으며 1939년에 목사 안수를 받았다.

일리노이주 휘튼대학교 재학 중 만난 중국과 한국 파송 선교사의 딸인 루스 벨을 만나 1943년 결혼했으며 미 육군의 군목이 되기 위한 교육을 받던 중 병을 앓은데다가 2차세계대전이 종전되면서 미국과 유럽에서 청소년들을 상대로한 목회 활동을 시작했다.

그레이엄이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1949년 로스앤젤레스에서 천막을 치고 진행한 부흥회에 미국 출판업계의 거장인 윌리엄 랜들 허스트가 기자들을 대거로 보내면서 부터다.


그후 1954년 영국 런던에서 12주동안 약 200만명을 대상으로 설교하면서 영국인들로부터 존경을 받기 시작했으며 3년뒤 뉴욕 매디슨 스퀘어 가든 경기장에서 개최한 부흥회는 참가자들이 넘쳐나면서 당초 계획했던 6주 행사를 16주로 늘려야 했으며 그레이엄 목사는 체중이 약 14kg 줄기도 했다.

지난 2005년 뉴욕에서 개최된 그의 마지막 부흥회에는 24만여명이 참가하는 등 지금까지 세계 195개 도시 또는 영토에서 2억1400만명이 그의 설교를 직접 또는 위성을 통해 지켜봤다.

그레이엄 목사는 12명의 미국 대통령과 같이 운동이나 농담을 하고 고비를 겪을 때 기도해주는 친구이기도 했다.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이 백악관 인턴과 스캔들이 알려지면서 곤경에 빠질 때 그레이엄 목사는 용서를 호소하기도 했다. 클린턴은 그레이엄 목사를 “죄 뿐만 아니라 구원도 매우 심각하게 여긴 분”이라고 회상했으며 조지 W 부시는 젊었을 때 그와 가진 대화를 계기로 음주를 중단할 수 있었다고 밝힌바 있다.

그레이엄 목사는 사생활이나 재정 문제로 인한 스캔들이 없었으며 대형 교회를 세우거나 구호단체 설립, 선거 출마나 정치 로비를 하는 것도 자제했다.

정치적인 발언도 자제해왔지만 지난 2012년 미국 대선을 앞두고 미국 주요 일간지에 낸 전면 광고를 통해 동성결혼에 반대하는 후보를 지지할 것을 요구하기도 했다.

그레이엄 목사는 1955~2013년까지 갤럽이 실시한 세계에서 가장 존경 받는 남성 설문 조사에서 상위 10위안에 누구보다도 많은 56회 올랐다.

그의 타계 소식에 각계에서 애도를 표시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트위터를 통해 “그와 같은 사람은 없었다”며 “매우 특별한 사람”이라고 애도했으며 지미 카터 전 미 대통령도 성명을 통해 사망 소식에 “부인 로절린과 함께 매우 슬프다”며 그가 좋은 친구이자 목회자였다고 밝혔다.

조엘 오스틴 목사는 그레이엄 목사는 자신의 영웅이었다며 애도했다.


지난 2007년 부인과 사별후 “그녀가 보고 싶게 될 것”이라며 “그녀와 천국에서 다시 만나는 날이 더 기대된다”라고 말한 그레이엄 목사는 빌리 그레이엄 도서관내 루스 여사 묘 옆에 안장 될 것으로 전해졌다.

jjyoon@fnnews.com 윤재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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