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 누구나 당할 수 있다
수직적 권력관계서 비롯..직장인 10명 중 7명 경험
정신.신체적 고통 호소..사내 상담할 곳 마땅찮아
즐겁게 일해야 할 직장에서 왕따, 폭행, 책임 전가 등 고통을 호소하는 직장인들이 늘고 있다. 특히 최근 간호사 태움(직장 괴롭힘) 문화가 사회문제로 부각되면서 직장 내 괴롭힘 문화를 바꿔야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파이낸셜뉴스는 삶의 터전인 직장 문화 개선을 위해 3차례에 걸쳐 실태, 문제점, 개선방안 등을 짚어보는 시리즈를 게재한다. <편집자 주>
수직적 권력관계서 비롯..직장인 10명 중 7명 경험
정신.신체적 고통 호소..사내 상담할 곳 마땅찮아
"왜 복귀했어?"
중견기업에 다니는 A씨(여.30대)가 1년간 육아휴직을 하고 돌아오자 상사 B씨가 건넨 말이다. 육아휴직 전부터 관계가 좋지 않았던 상사의 막말은 심해졌다.
11일 국가인권위원회의 '2017 직장내괴롭힘 실태조사'에 따르면 직장인 10명 중 7명 이상이 괴롭힘을 당한 것으로 나타났다. 국가기관에서 첫 수행한 실태 조사로, 괴롭힘은 일부 '성격 모난' '일 못하는' 직장인만 당하는 게 아니다.
■직장인 73% "괴롭힘 당했다"
괴롭힘 유형은 다양해 흔히 떠올리는 폭언, 따돌림 등 개인 괴롭힘 뿐만 아니라 성과를 가로채거나 일감을 몰아주는 업무 행위도 해당한다. 일부 기업은 괴롭힘을 실적 향상 수단으로 활용하기도 한다. 인권위 조사결과 직장인 4명 중 1명은 실적이나 성과 향상을 위한 수단으로 괴롭힘을 당했다고 답했다.
문강분 행복한일노무법인 대표는 "현장에서는 경쟁적 조직문화와 성과주의로 인해 직원들에게 실적 압박을 하는 과정에서 괴롭힘이 상시화 되고 있다"고 진단했다. 상사에게 권한이 집중될수록 직장 괴롭힘이 더 발생하기 쉬운 구조라는 게 전문가들 분석이다. 수직적 권력관계에서 부당한 지시 등에 저항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중소기업 사무직 C씨(30대)의 업무 시작은 커피 타기다. 팀원을 위한 간식 심부름도 C씨 몫이다. C씨의 일처리가 지연되자 상사는 "아이 XX, 그거 하나 빨리 처리 못하냐"라고 고함을 지르고 마우스를 던졌다. C씨는 회사에 면담을 신청했지만 돌아온 답은 "참아"라는 것이었고 그는 최근 우울증 진단을 받았다. 인권위에 따르면 괴롭힘 피해 경험자 10명 중 6명은 정신적.신체적 건강에 부정적 영향이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왕따시켜" 조직적 따돌림
조직적인 괴롭힘도 자주 발생한다. 대기업 영업사원 D씨(29)는 최근 팀장으로부터 신입직원을 따돌리라는 말을 들었다. 팀장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게 이유였다. 신입직원만 빼고 채팅방을 만들어 업무를 공유했다. 팀장은 채팅방에서 신입직원을 수차례 비난했다. 그는 "신입사원을 잘 모르는데도 따돌림에 동참할 수밖에 없다"며 "나도 당할 수 있다는 불안감에 다른 방법이 없다"고 전했다.
기업에 괴롭힘에 따른 구제제도가 마련돼 있지 않고 구체적인 법령도 없어 한번 괴롭힘을 경험하면 벗어나기가 어렵다. 인권위 조사 결과 회사에 상담이나 고충 처리를 요청할 수 있는 창구가 있는 경우는 21%에 불과했다.
19, 20대 국회에서 직장 괴롭힘 관련 법안이 5건 발의됐으나 단 1건도 국회를 통과하지 못해 법적 구제도 힘든 실정이다. 이상혁 한국노총 노무사는 "취업규칙이나 단체협약에 직장 괴롭힘 처벌규정을 두는 기업은 찾기 어렵다"며 "피해자가 모든 고통을 감수하는 상황에서 예방과 구제책 마련이 절실하다"고 지적했다.
전문가들은 괴롭힘 원인으로 세대 간 근로문화 차이와 경쟁적 업무환경을 꼽는다. 50대와 20대가 느끼는 괴롭힘도 달랐다. 인권위 조사에서 20대는 직장 괴롭힘을 묻는 30개 문항 중 20.7개를 괴롭힘이라고 응답했다. 30대는 17.5개, 40대는 12.7개, 50대 이상에서는 10개 미만을 선택했다.
한국청년정책연구원 고강섭 책임연구원은 "세대 간 사회화 과정이 달라 일에 대한 '해석의 틀'이 다르다"고 평가했다.
junjun@fnnews.com 최용준 김규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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