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북정책 운전석 앉은 한국
지난해 5월 미국의 시사주간지 타임은 당시 대선을 닷새 앞에 둔 문재인 대선후보를 아시아판 표지모델로 삼고, 그를 '협상가(The negotiator)'라고 칭했다.
대선후보였던 문 대통령은 타임과 인터뷰에서 "김정은 위원장이 '비합리적' 지도자일지라도 그가 북한을 통치한다는 '현실'을 받아들여야 한다. 그래서 우리는 그와 얘기해야 한다"고 밝혔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을 향해선 김정은 위원장과 햄버거도 먹을 수 있다고 말한 '실용주의자'라고 했다. 그로부터 꼭 1년이 되는 오는 5월 '비합리적 지도자'와 '실용주의자'가 '협상가'의 중재로 만나게 됐다.
문 대통령은 지난 10개월간 협상가로서 어떤 모습을 보여왔는가.
11일 청와대 핵심 관계자는 "대북정책을 결정하는 사람은 다름아닌 문 대통령 본인이었다"고 말했다. 또 다른 관계자 역시 "소위 '대미라인'이니 '대북 대화파' 등 특정 참모군의 의견을 따르기보다는 대통령 본인이 온전히 최종적으로 의사결정을 했다"고 설명했다. 외교안보라인에서 '실세 참모'가 없다는 뜻이기도 하다. 북한과 대화 경험이 전무한 '미국통'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을 서훈 국가정보원장 등 '북한통' 앞에 배치한 건 이런 상황을 잘 대변하는 것이다. '대화파'들의 입김이 센 상황에서도 대통령이 모든 판을 그려나가고 있다는 뜻이다.
실제 정부 출범 초기 청와대는 대북특사를 파견할 계획이 있었으나 미국부터 가야 한다는 문 대통령의 구상에 따라 곧바로 철회됐다. 문 대통령은 트럼프 대통령이 추구하는 압박과 제재에 동참하며, 워싱턴의 의구심을 불식해 나갔고 이를 기반으로 중국으로, 북한으로 활동반경을 안정적으로 넓혀나갈 수 있었다.
협상가로서 문 대통령은 철저히 자세를 낮추고 '트럼프 대통령'의 공(功)을 강조하는 전략을 구사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남북대화를 강력히 지지해 준 덕분이다" "트럼프 대통령과 이 역사적 위업을 함께 달성하고 싶다" "대북특사단 활동은 남북 간의 대화뿐 아니라 미국의 강력한 지원이 함께 만들어낸 성과"라고 밝혔던 것은 모두 트럼프 대통령에게 그대로 전달됐다.
BBC 방송에서 존 덜러리 연세대 교수는 "문 대통령이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을 동시에 다루는 데 있어 '정직한 브로커의 역할'을 했다"고 평가했다.
문 대통령의 모든 외교시계는 북.미 정상회담이 열리는 5월로 맞춰져 있다. 협상가에게 마지막 고비가 남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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