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사회일반

세무서가 예식장 건물에 둥지를 튼 사연

정용부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8.04.06 08:27

수정 2018.04.06 10:55

▲ 서울 영등포구 선유동의 영등포세무서의 모습./사진=정용부 기자
▲ 서울 영등포구 선유동의 영등포세무서의 모습./사진=정용부 기자

최근 각종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때아닌 영등포세무서가 화제가 되고 있다. 서울 영등포구 선유동에 위치한 영등포세무서 청사가 다른 공공기관 건물에 비해 화려한 고딕 양식의 붉은색 벽돌로 이뤄진 점 때문이다.

보통 관공서라 하면 틀에 박힌 사각형 건물에 특색 없는 외관을 떠올린다. 이런 일반의 인식과 달리 영등포세무서는 성당이나 중세 궁전 같은 외관에 떡하니 징세업무를 담당하는 세무서 간판이 걸려있으니 의아해 할 수 밖에.

하지만 영등포세무서가 이 곳에 둥지를 튼 데에는 남다른 사연이 있다. 영등포세무서가 지금의 청사로 이전한 건 2002년의 일이다. 이전까지 영등포세무서는 영등포구 문래동 구로세무서와 같은 단지 내에서 한솥밥을 먹었다.


그러다 한 예식장이 본관을 비롯해 두 개 건물을 물납(조세를 현금 대신 주식이나 부동산, 채권 등 재산으로 이행하는 것)하면서 마침 더부살이 중에 사무공간을 비좁음을 호소하던 영등포세무서가 이를 그대로 수용해 옮겨간 것이다. 즉 현 청사는 정부가 땅과 건물을 매입해 조성한 게 아니라 사유재산이 국유재산화되면서 관공사가 입주하게 된 것.

이 같은 사정을 알리 없는 일반 시민들은 한때 ‘징세업무를 담당하는 세무서 건물이 저렇게 화려해도 되나’라며 볼멘소리를 하기도 했다.

영등포세무서 한 관계자는 “예전엔 종종 건물에 대해 물어보는 시민이 있었다. 그때마다 예식장 건물이었다고 설명을 하면 ‘아~’하고 수긍했다”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이제는 시간이 흘러 그마저도 물어보는 시민이 거의 없다”라고 덧붙였다.

또 다른 관계자는 청사에 대해 “처음 부임한 직원들조차 건물 이력에 대해 이야기하곤 했다. 근무해보니 다른 청사에 비해 층고가 높아 여름엔 시원하고 답답함이 없다”라고 전했다.

▲ 서울 영등포구 양평동의 한 예식장을 내부 수리해 청사로 사용하고 있는 서울남부고용노동지청의 모습 /사진=정용부 기자, 건축문화 'A&C출판'
▲ 서울 영등포구 양평동의 한 예식장을 내부 수리해 청사로 사용하고 있는 서울남부고용노동지청의 모습 /사진=정용부 기자, 건축문화 'A&C출판'
▲ 1990년 3월 4일 '한겨레신문'에 실린 해당 예식장의 신문광고
▲ 1990년 3월 4일 '한겨레신문'에 실린 해당 예식장의 신문광고

인근에는 이와 비슷한 분위기의 건물에 자리한 공공기관이 하나 더 있다. 서울남부고용노동지청이다. 이 건물 또한 비슷한 구조와 분위기를 가졌지만 규모는 더 크다. 남부노동지청 청사는 건축가 모세용이 디자인한 것으로 애초 예식장으로 설계돼 그 예술성을 인정받아 '대한민국 건축자산'에 오르기도 했다.


그러나 이 또한 얄궂은 운명을 맞아 영등포세무서 건물과 함께 물납돼 국유재산화되면서 하나는 남부고용지청이, 또 다른 하나는 세무서가 들어섰다.

김돈희 재무설계사는 “당시 업계에서 영등포세무서 터에 대한 물납은 크게 회자됐던 일이다.
과거 법인사업자의 경우 자산이 법인에 편중되어 있는 경우가 많아 갑작스러운 유고시 상속세 재원을 마련하지 못해 부동산이나 주식, 경영권으로 징세를 대신하는 일이 많았다”라고 설명했다.

demiana@fnnews.com 정용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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