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사회일반

"전화 대신 카톡으로!"...갈수록 심화되는 '콜포비아'

신지혜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8.05.02 10:21

수정 2018.05.02 11:05

전화를 피하고 무서워하는 콜포비아를 겪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전화 벨이 울리면 일부러 받지 않고 뒤늦게 카톡이나 문자로 용건을 물어본다. 사진=Picjumbo.com
전화를 피하고 무서워하는 콜포비아를 겪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전화 벨이 울리면 일부러 받지 않고 뒤늦게 카톡이나 문자로 용건을 물어본다. 사진=Picjumbo.com

#. 대학생 조소혜(25)씨는 한 달 통화량이 채 1시간도 되지 않는다. 통화 대신 주로 카톡과 문자로 사람들과 소통한다.
글로 대화하는 것이 가장 편리한 방법이라 여기기 때문이다. 전화 받는 것 자체가 두렵다. 전화 벨이 울리면 일부러 받지 않고 30분 뒤에 카톡이나 문자로 용건을 물어본다.

전화 통화를 피하고 무서워하는 '콜포비아(call phobia·통화 공포증)'를 겪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지난해 한국인터넷진흥원이 전국 2만5000가구 및 만 3세 이상 가구원 6만2540명을 대상으로 '인터넷 이용실태'를 조사한 결과, 스마트폰 사용자 가운데 메신저를 이용하는 사람은 전체의 77%인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음성 및 영상 통화를 선호하는 사람은 44%에 불과했다.

콜포비아를 겪는 사람들은 전화 통화에 있어 매우 소극적인 특성을 보인다. 반드시 통화를 해야 하는 경우 미리 말할 내용을 수첩에 적어 가상 시나리오를 만들기도 한다. 생각을 정리해 보낼 수 있는 메신저·문자와 달리, 전화는 예측불가능한 상황이 벌어질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가령 메신저에서는 더 이상 말할 내용이 없을 때 이모티콘 등으로 대화를 에둘러 끊어낼 수 있지만 전화 통화에서는 불가능하다. 전화를 끊기 위해 핑계를 찾거나 다음 약속을 기약하는 무의미한 말들을 할 수밖에 없다.

■콜포비아가 생기는 원인은 무엇일까

전문가들은 콜포비아 원인 중 하나로 '간접소통의 일상화'를 말한다. 굳이 통화를 하지 않아도 스마트폰에서 손가락만 까딱하면 원하는 것을 쉽게 얻을 수 있는 세상이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예가 앱이나 메신저를 통해 배달 주문하기, 쇼핑하기, 택시 부르기 등이다. 간접소통이 일상화 되면서 이미 금융권에서 '비대면 거래', 유통업계에서는 '언택트(Un-tact) 마케팅'이 보편화되고 있다.

또 다른 원인으로 상호작용에 대한 두려움 확대를 꼽는다. 통신기술이 발전하면서 사람들끼리 면대면으로 만나는 기회가 줄어든 탓이다. 자연스레 '사회적 기술'이 약해질 수밖에 없다. 심리학 용어인 '사회적 기술'은 개인이 지역사회나 직장에 성공적으로 적응하는 데 필요한 대인관계 기술을 뜻한다.

회사에서도 식사 메뉴를 고르는 것부터 업무 지시나 회의를 할 때 메신저를 이용하는 경우가 많다. 이스트소프트가 진행한 '2015 기업 내 업무 커뮤니케이션 실태 조사' 결과, 업무에서 스마트 기기를 사용한다는 직장인이 전체 응답자의 64.4%(1051명)에 달하는 것으로 집계됐다.

직장인 김현정(29)씨는 "주로 회사동료들과 카카오톡이나 네이트온, 사내 메신저를 통해 대화하는 편"이라며 "직접 대면해서 말할 때보다 메신저를 이용할 때 마음이 편하고, 하고 싶은 말도 전달이 잘 된다"고 말했다.

성신여대 심리학과 서수연 교수(임상심리전문가)는 "사회적 기술은 타고나는 것이 아니고 사람들을 만나면서 학습하는 것인데 그 기회가 점점 줄어들고 있다"며 "사회적 기술에 대한 자신감 결여가 콜포비아로 이어지는 것으로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콜포비아'로 심하게 고통받는 사람들

과거에 전화로 인해 피해를 입었던 사람은 통화에 대한 두려움을 더욱 크게 느낀다. 특히, 감정노동을 한 사람들에게 '콜포비아'는 더욱 심하게 나타난다. 1년간 홈쇼핑 콜센터 상담원으로 근무했다가 퇴사한 이모씨(30)는 "전화로 고객을 응대하면서 콜포비아가 생겼다"며 "욕설·반말로 예의없이 대하는 사람들, 화만 내고 전화를 끊어버리는 사람들 때문에 전화벨 소리만 들어도 두려운 게 사실"이라고 속내를 털어놨다.

퇴근 후에도 끊임없이 울려대는 직장상사의 전화로 콜포비아를 겪는 사람도 있다. 압구정 근처 회사에서 사무직으로 일했던 김모씨(29)는 "퇴근했는데도 굳이 전화로 업무지시를 내리는 직장상사 때문에 회사를 관뒀다"고 토로했다. 이어 "잠들 때도 전화 벨소리가 울리는 듯한 착각에 빠져 정상적인 생활을 하기 어려웠다"고 고백했다.

무심코 받은 전화로 보이스피싱에 휘말려 전화를 회피하게 된 경우도 있다. 대학생 조유림(가명·24)씨는 검찰청, 금융감독원 등 수사시관을 사칭한 보이스피싱 일당에게 2000만원을 송금해 큰 피해를 입었다. 이후 휴대폰에 모르는 전화번호가 뜨면 지레 겁을 먹고 받지 않게 됐다.

■"전화 잘 받는 법 알려드립니다" 스피치 학원까지 등장

전화를 두려워하는 사람들이 많아지면서 '전화 잘하는 법', '전화 겁내지 않는 법' 등을 알려주는 스피치 학원도 등장했다. 한 스피치교육원 원장은 "전화 통화하는 것에 긴장을 느끼는 직장인들이 종종 문의를 한다"고 밝혔다.


지난해 한 취업 전문 사이트에서 국내 상반기 신입사원 1042명을 대상으로 '직장 생활 중 가장 두려운 순간'을 조사한 결과, 39%에 이르는 직장인이 "전화 통화에서 가장 두려움을 느낀다"고 답했다.

전화통화를 기피하고 오로지 '글자'로만 소통했을 때 어떤 문제점이 나타날까. 가장 큰 문제는 의사소통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짧은 문자나 메신저만 이용해 대화하면, 화자의 감정이나 행간의 의미가 사라져 의사소통에 오해가 생길 수 있기 때문.

서수연 교수(임상심리전문가)는 "사람의 목소리가 아닌 글자로만 대화를 하게 되면 상대방이 현재 어떤 상황인지, 기분이 어떤지에 대해 제대로 파악하지 못할 수 있다"며 "이럴 경우 의사소통에 더욱 더 예민하게 신경써야 한다"고 당부했다.



sjh321@fnnews.com 신지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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