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사회일반

"사장 나와".. 손님은 王, 꼴불견 손님은 甲

김유아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8.05.10 17:28

수정 2018.05.10 17:39

[fn스포트라이트-일상 속 갑질] <1> 외식업계
다짜고짜 폭언에 고성 "맛없다.기분 나쁘다" 결제 카드 던지기도
'반말 주문에 반말 대응' 일부 식당 재치 문구
일단 자리 먼저 잡자식 '노쇼'도 매출 손실 주범.. 공정위, 위약금제 도입
"사장 나와".. 손님은 王, 꼴불견 손님은 甲

#. 최근 대한항공 조현민 전 전무의 갑질 논란과 관련, 외신들은 '갑질(Gapjil)'이라는 단어를 한국어 발음 그대로 표현하며 과거 '영주처럼 임원들이 부하 직원이나 하도급업자를 다루는 행위'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갑질의 주체는 재벌이나 직장 상사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파이낸셜뉴스는 일반음식점, 카페, 병원 등 우리 일상 곳곳에서 이뤄지는 갑질행위의 실태를 집중 진단한다.

"주인 오라 그래! 뭐 이런 가게가 다 있어?" "여긴 서비스가 왜 이리 엉망이야? 사장 나와!"

서울에서 낙지집을 운영하는 김경자씨(가명)는 그동안 손님들로부터 이런 말을 종종 들었다고 한다. 음식에서 이물질이 나온 것도, 반찬을 늦게 갖다준 것도 아닌데 다른 손님들 보는 앞에서 이런 망신을 당했다는 것이다. 이처럼 외식업계 종사자들은 손님의 갑질에 수시로 노출돼 대책이 시급하다고 입을 모은다.


■폭언에 면전 카드 던지기까지…노쇼도 골치

김씨는 당장 며칠 전에도 황당한 사례를 겪었다. 여자 손님 2명이 낙지볶음을 시켜 먹더니 "매워서 속 버렸다"며 다짜고짜 김씨에게 언성을 높인 것이다. 김씨는 "낙지가 맵다고 하는 손님이 있을까봐 보통 맵기로 하고, 더 매운 걸 선호하는 손님을 위해 테이블 위에 고춧가루를 둔다"며 "사실 낙지볶음이 어느 정도 매운맛이 나지, 단맛이 나느냐"고 토로했다.

김씨는 손님이 던진 카드에 얼굴을 맞은 적도 있다. 한 손님이 가게에 들어오면서 대뜸 낙지전을 서비스로 달라고 요구, 어이가 없어 대답을 하지 않다가 계산 시 청구했더니 손님이 "그래, 네 맘대로 하고 싶은 대로 해라"고 소리치면서 카드를 던졌다는 것이다. 김씨는 그날 억울한 마음에 펑펑 울 수밖에 없었다고 털어놨다.

손님 갑질은 식당뿐만 아니라 카페에서도 마찬가지다. 테이블 위에 아이의 변이 묻은 기저귀를 두고 가거나 뛰어다니는 아이를 제지하지 않고 오히려 큰소리치는 경우가 있다. 뛰어놀다가 사고라도 나면 배상해야 할 상황을 우려, 아이들 입장을 불허하는 노키즈존 카페가 늘어나는 추세다.

또 대면 상황은 아니더라도 업주들이 또 다른 유형의 갑질로 꼽는 것이 '노쇼'다. 음식점에 예약하고는 연락도 없이 예약한 날 나타나지 않는 노쇼 행위는 유명 셰프에게도 예외가 아니다. 최현석 셰프는 한 라디오 방송과 인터뷰에서 "하루에 한두 팀이 노쇼를 하는데 보통 한분이 오면 10만원 이상 사용한다. 두 테이블이면 5~6명분인데 30일로 가정하면 1800만원 정도 매출 손실이 나는 셈"이라며 "규모가 작은 레스토랑일수록 노쇼는 더 치명적이어서 실제로 노쇼 때문에 가게 문을 닫는다는 오너셰프도 있다"고 전했다.

■"반말로 주문하면 반말로 주문 받습니다"

우리나라는 '손님은 왕'이라는 특유의 관념 때문에 진상 고객 대비책이 부족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익숙하지 않은 컴플레인 문화가 진상을 키운다는 분석도 있다. 서비스 불만을 남기는 절차를 통해 적절한 보상을 요구하는 서구권 컴플레인 문화와 달리 한국은 현장에서 직원에게 불만을 표시하는 데 익숙하다는 것이다. 더러는 다짜고짜 가게에 대해 좋지 않은 글을 인터넷에 올리겠다며 협박하는 손님도 있다는 게 외식업계 종사자들의 하소연이다.

이에 따라 일부 식당이나 카페는 손님의 갑질을 사전에 차단하기 위해 다양한 방안을 강구하기도 한다. 한 카페에는 '영상 및 음악 청취는 이어폰 사용' '반말로 주문하시면 반말로 주문 받습니다' 같은 문구가 써 있다. 또 다른 식당 직원 유니폼에는 '남의 집 귀한 자식'이라는 문구가 붙어 있다. 1인당 1메뉴 주문을 당부하는 가게도 이제는 흔해졌다.

공정거래위원회는 노쇼를 막기 위해 소비자분쟁해결기준 개정안을 통해 위약금 규정을 새로 도입했다.
손님이 음식점 예약시간이 1시간도 남지 않았는데 예약을 취소하거나 나타나지 않으면 예약할 때 냈던 보증금을 한 푼도 돌려받을 수 없다는 내용을 담았다. 다만 보증금이 없는 곳이 많은 데다 해당 규정은 강제성이 없어 효율성에 의문이 제기되기도 한다.


한국외식산업학회 관계자는 "식당, 카페는 백화점과 달리 보통 소상공인이 운영하는 곳이어서 입소문이 잘못 나면 혼자 감당해야 해 갑질에 더 노출되면서도 참는 경우가 많다"며 "노쇼 위약금을 적용했다가 오히려 업주가 피해를 볼 수 있는 만큼 위약금보다는 손님들 의식개선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스포트라이트팀 박인옥 팀장 박준형 구자윤 김규태 최용준 김유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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