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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난씨, 우리 헤어져①] 예고없이 찾아온 지진의 공포 2016 경주지진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8.05.26 11:14

수정 2018.05.26 11:14


2016년 9월 12일 경북 경주에서 발생한 규모 5.8의 지진으로 경주시 건천읍 한 사찰 건물이 무너진 모습. 사진=연합뉴스
2016년 9월 12일 경북 경주에서 발생한 규모 5.8의 지진으로 경주시 건천읍 한 사찰 건물이 무너진 모습. 사진=연합뉴스
#그날은 여느 때와 다름없는 평범한 하루였다. 출근하고 학교에 가고 그리고 돌아온 가족들이 모여 저녁식사를 하는 시간이었다. 그때 갑자기 온 세상이 흔들렸다. 2016년 9월 12일 오후 7시 44분. 경북 경주시 남남서쪽 8.2km 지점에서 규모 5.1의 지진이 발생한 것이다. 그리고 약 1시간 후에는 규모 5.8의 본진이 발생했다.

이날 발생한 지진은 1978년 국내 지진 관측 이래 최대규모의 지진으로, 진앙지와 가까운 경주 지역은 물론 전국 대부분의 지역에서 진동을 느낄 수 있었다. 국민들은 그동안 지진에 관한 이야기를 많이 들었어도 이번처럼 실감하기는 처음인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지진의 피해는 경주를 비롯해서 6개 시·도에서 발생하였다. 수많은 국민들이 지진에 놀라 불안에 떨어야 했고 부상자 23명, 이재민 54세대 111명, 약 110억 원의 재산 피해가 집계됐다. 그날 우리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던 것일까?

당시 국가 재난관리 업무를 총괄하고 있던 국민안전처. 대규모 지진 발생 정보가 접수되자마자, 그 즉시 모든 직원들이 비상근무에 돌입했다. 가장 먼저 움직인 이들은 긴급 재난문자 발송을 담당한 부서였다. 국민들을 대상으로 4회에 걸쳐 신속하게 긴급 재난문자를 발송했다. 그런데 어찌된 일일까?
"지진이 언제 일어났는데 왜 이제야 알리는 겁니까?"
국민들의 휴대전화에 긴급 재난문자가 도착한 것은 지진 발생 후 약 8분이 지난 시각이었다. 지진이 잦은 일본의 경우 10초 안에 지진 발생 사실을 국민에게 전파한다. 많은 이들은 한참을 지나 도착한 지진 정보를 보면서 정부의 느린 대처를 질타했다. 문제는 이뿐만이 아니었다. 지진에 놀란 국민들은 가족과 친지의 안부를 묻기 위해 전화에 매달렸다. 그러나 저녁 7시 50분부터 9시 40분까지 약 1시간 50분가량 일부 지역에서 전화 연결이 지연되는 일들이 발생하였다. 많은 국민들이 사용하는 카카오톡에서도 문자수신과 발신이 지연되었다. 답답한 국민들은 지진에 대한 정보를 얻기 위해 국민안전처의 홈페이지로 접속을 시도했다. 그러나 그날 저녁 7시 52분부터 밤 10시53분까지 3시간 동안 국민안전처의 홈페이지는 접속이 이루어지지 않았다. 국내통신사들의 통신망과 전산망에 순간 접속자가 크게 증가하면서 접속장애가 발생했던 것이다.

"지진 대피소는 어디에 있나요?"
한반도를 뒤흔든 지진은 순식간에 잦아들었다. 그리고 그날 진앙지와 가장 가까운 지역인 경주의 시민들은 겁에 질린 채 거리로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삼삼오오 모여든 이들이 가장 먼저 살핀 것은 자신들과 가족의 안전이었다. 그들은 언제 다시 발생할지 모르는 지진에 대비하기 위해 안전한 대피소를 찾기 시작했다.

당시 경주 지역에는 다른 지역들과 마찬가지로 민방공 대피소가 지정돼 있었고 재난 임시 주거시설도 마련됐다. 하지만 이 시설들은 전쟁이나 풍수해 등에 대비한 시설이었다. 따라서 지진 대피소가 어디인지 묻는 질문에 지자체의 담당 직원들도 말문이 막힐 수밖에 없었다. 결국 거리로 나온 주민들 대다수는 스스로 대피소를 찾아야 했다.

주민들은 건물이 무너질 위험이 없는 넓은 지역이 안전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경주시민운동장과 인근 학교 운동장 등으로 몰려갔다. 하지만 일부 학교는 교문이 잠겨 있기도 했고 지진에 대비한 실내 구호소가 지정되거나 운영되고 있는 곳은 거의 찾아볼 수 없었다. 주민들은 학교 운동장이나 자동차 등에서 밤을 지새워야 했다.사람들이 대피하는 과정에서 크고 작은 부상이 발생했다. 부상자는 20대에서 80대까지 다양한 연령층에서 나타났다. 가장 대표적인 부상 원인은 대피 도중 넘어짐이었다. 집이 지진에 흔들리면서 장식장과 서랍장 등에 올려놓은 물건이 떨어져 다친 경우도 있었고 놀라서 뛰어내리다가 다친 사람들도 있었다. 이러한 부상들은 대부분 갑작스러운 대규모 지진에 공포심을 느낀 나머지 당황해서 일어난 것이었다. 이날 지진을 가장 극심하게 체험한 경주 지역의 주민들은 당시 미리 지진대피장소를 지정해 두었다면 주민들의 혼란을 줄일 수 있었다고 입을 모은다.

"도대체 정부는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었던 것인가"
이런 불안한 상황이었음에도 경찰관이나 지역 공무원들의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다. 그들 역시 지진을 처음으로 겪는 이들이 대부분이었다. 따라서 구호방법은 무엇인지, 대피소는 어디서 어떻게 운영해야 하는지, 모든 것이 혼란스러웠기 때문에 현장조치 행동매뉴얼에 따라 주민대피 안내가 제대로 이루어질 수 없었던 것이다.

"괜찮아. 그냥 앉아서 공부해."
당시 밤 자율학습 시간이었던 A고등학교. 갑자기 진동이 느껴졌고 학생들은 혼란과 공포에 사로잡혀 당황해 했다. 그런데 학생들을 지도하고 이들의 안전을 책임지는 교사들 역시 지진이 일어났을 때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전혀 알지 못했다. 그날 교사들이 공포에 질린 학생들에게 지시한 것은 대피가 아니었다. 다행히 그날 그 학교는 별다른 지진의 피해를 입지 않았다. 그렇지만 만일 그대로 공부하던 중에 더 큰 지진이 발생했다면, 그래서 학교 시설이 큰 피해를 입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생각만 해도 아찔한 상황을 피할 수 없었을 것이다.

공포의 밤이 지나가고 혼란과 피해 수습이 시작됐다. 2016 경주 지진의 피해 상황을 집계하던 관련 기관은 국내 지진 대비 태세에 심각한 문제점이 있음을 알게 됐다. 많은 학교 시설들이 지진에 무방비 상태라는 것. 국내 대부분의 지역에서 학교는 자연재난이 발생했을 때 주민들의 대피소로 활용되고 있다. 이 때문에 이미 오래 전부터 지진에 대해서도 대비해야 한다는 주장과 함께 학교 시설의 내진설계 기준과 내진성능이 부족하다는 문제점이 제기돼 왔다. 따라서 정부는 3~5층 이상 규모의 학교 건축물에 대해서 2005년 7월부터 내진설계를 의무화하도록 했고 2009년 3월부터 전국의 모든 초·중·고등학교 시설로 그 대상을 확대했다. 그러나 문제는 2005년 7월 이전에 설계된 학교 건축물들은 대부분 내진설계가 적용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또 경북·경남 지역의 학교 시설들은 내진보강률이 전국 평균보다 낮은 수준이었다. 이러한 문제점은 경주 지진에서 여실히 드러났다.

2016 경주 지진 당시, 경주시에서 재난 발생시임시 주거시설로 활용하기로 지정한 학교는 67개소. 이중 10개 학교에서 지진 피해가 발생한 것이다. 지진이 발생했을 때 학생들과 지역 주민들의 안전을 책임져야 하는 학교가 어쩌면 지진에 무방비 상태일 수도 있다는 사실이다.

피해 상황 조사가 마무리되고 복구 작업에 착수했다. 그러나 미처 예상치 못한 문제가 복구를 막아섰다. 그것은 바로 복구비용에 대한 문제였다. 당시 우리나라에서 지진으로 인한 피해를 보상받을 수 있는 보험은 국가에서 운영하는 풍수해보험과 민간 보험사에서 운영하는 지진특약이 있었다. 그러나 피해를 입은 주민들 중에서 풍수해보험에 가입한 이는 0.1%에 불과했고, 민간보험의 지진특약에 가입한 비율 역시 0.14%로 매우 저조한 상황이었다. 또 당시 국가 차원에서 민간 건축물의 내진보강을 활성화하기 위해 '민간 건축물 내진보강 인센티브 제도'를 운영하고 있었지만 민간의 자발적인 참여는 거의 이루어지지 않고 있었다.
한마디로 경주 지진은 국가 차원이나 민간의 모든 부문에서 지진에 대한 체계적인 대비가 거의 없었던 재난이었던 것이다.

2016년 경주 지역의 가을은 많은 과제들을 안은 채 점점 짙어져 갔다.


<이 기사는 행정안전부가 과거 재난대응의 문제점과 교훈을 담아 발간한 재난대응 사례집 '재난씨, 우리 헤어져'의 내용을 편집한 것입니다.>
경주지진 이후 달라진 점
경주지진 이후 달라진 점

true@fnnews.com 김아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