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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난씨, 우리 헤어져] ⑧20세기 최악의 가스 유출 참사, 인도 보팔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8.07.14 12:19

수정 2018.07.14 12:20

지난해 12월 3일 인도 현지에서 보팔 참사 피해자와 지원단체 회원들이 플래카드를 들고 시위를 벌이고 있다./사진=EPA연합뉴스
지난해 12월 3일 인도 현지에서 보팔 참사 피해자와 지원단체 회원들이 플래카드를 들고 시위를 벌이고 있다./사진=EPA연합뉴스
1984년 12월 초, 당시 미국의 종합화학회사였던 유니언 카바이드는 인도 보팔시에서 농약과 살충제를 생산하는 공장을 운영하고 있 었다. 원료로 쓰이는 ‘메틸이소시안산(MIC)’을 저장하는 탱크에서 균열이 발생하면서 폭발이 일어났고, 2시간여에 걸쳐 약 36t의 맹독성 화학물질이 방출됐다. 이 사고로 인해 20만명 이상이 호흡기 장애와 실명 등의 부상을 당하고 약 2800여 명(추정)의 사망자가 발생했다.

이날 인도 보팔에서 발생한 MIC 누출사고는 20세기 최대 규모의 산업재해로 전 세계에 널리 알려졌다. 이 사고는 현재까지도 보상을 둘러싼 소송이 계속되고 있다.

사고를 일으킨 유니언 카바이드의 공장 내 창고 등에는 아직도 425t이 넘는 유독성 폐기물들이 처리되지 않은 채 방치되고 있어 토양과 지하수 오염으로 주민들이 유독물질 오염 가능성에 여전히 노출돼있다.

유니온 카바이드의 인도 보팔 공장은 1969년에 설립됐다. 당시 계획은 살충제 원료를 미국 본사로부터 수입한 뒤 살충제로 합성하는 시설을 건설하는 것이었다. 살충제 원료인 MIC는 그 제조 공정상 많은 위험을 내포하고 있어서 인구밀집 지역인 보팔 지역에 건설하는 것이 타당하지 못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유니언 카바이드는 수익을 높여야 할 필요성이 제기되자, 보팔지역에 MIC
제조시설을 추가로 설치했다. MIC는 살충제와 제초제, 의약품 합성의 원료로 사용되는데, 물과 격렬한 반응을 일으키며 아주 적은 양으로도 사람의 폐와 눈에 심각한 장애를 유발할 수 있고 중추신경계와 면역체계를 일시에 파괴하는 독극물로 알려져 있다.

인도 보팔에 MIC 제조시설을 설치할 당시, 저장 탱크로 연결되는 배관에는 안전을 위해서 화학물질과 반응이 없는 스테인레스강 배관을 사용하도록 권장했다. 그러나 비용절감을 위해 설계와 달리 탄소강 배관을 사용했고, 그 대신 질소를 주입, 반응을 억제하는 방법이 적용됐다. 그러나 이는 안전성이 검증되지 않은 방법이었다.

이후 인도 보팔에서 살충제를 생산하던 유니언 카바이드는 전 세계적인 기근으로 인해 살충제 수요가 급감하는 가운데, 중·소 업체와의 저가 경쟁에 밀리면서 구조조정을 착수하게 됐다. 인도 보팔 내 공장을 폐쇄하고 다른 개도국으로 생산 시설을 이전하기로 했던 것이다. 이러한 결정이 내려지자 공장의 유지관리를 위한 비용을 절감하기 위해 안전관리자의 수를 대폭 감소하는 조치가 이어졌다. 그 결과 공장 내 안전사고가 빈번히 발생했는데, 이를 개선해 달라는 요구가 있었으나 당시 경영진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1984년 12월 2일 사고 당일. 한 공장 직원은 MIC를 저장하는 610번 탱크의 온도와 압력게이지에서 이상을 발견했다. 그리고 저장 탱크의 현장 상황을 확인하는 과정에서 직원들의 눈에서 눈물이 나는 등 이상 증상이 발생했고, 이 사실은 작업반장에게 즉시 보고됐다. 그러나 당시 작업반장은 상황의 심각성을 인지하지 못했고, 즉각적인 현장 조치를 취하지 않으면서 사고 확대를 막을 수 있는 골든타임을 놓쳤다.

MIC는 1차 세계대전 때 독가스로 사용된 ‘포스겐’과 ‘시안화 가스’가 섞인 맹독성 화학물질이다. 이를 보관하는 탱크 내부는 섭씨 0도를 유지해야 한다. 저장탱크의 온도와 압력게이지가 계속해서 이상 증상을 보이자 직원들은 심각한 상황임을 인식하고 누출을 막는 조치를 취하려고 했다. 하지만 저장 탱크의 온도는 내려가지 않았다. 급기야 탱크에 균열이 발생하면서 폭발과 함께 MIC가 대량으로 누출되기 시작했다. 사고 수습 과정에서도 지자체 및 대응 기관과의 원활한 연락이 되지 않았다. 새벽 1시에 주민들에게 사고 발생을 알리는 비상경보를 발령했다. 하지만 이때는 이미 가스가 퍼질 대로 퍼진 뒤였다. 공기보다 무거운 MIC 유독가스는 지상에 낮게 깔려 주변 도시 구석구석까지 스며들었다.

깊은 잠에 빠져 있던 사람들은 갑작스런 고통에 깨어났다. 눈이 바늘로 찌르는 것처럼 따가웠고, 숨이 턱턱 막히며 토할 것 같은 증상이 계속됐다. 새벽 2시 즈음 병원에 실려 온 환자 중에는 입에 거품을 문 사람도 있었고 이미 앞을 볼 수 없는 상태인 사람도 있었다. 사람들은 유독가스로부터 멀리 도망치려 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가스가 퍼져나가는 속도가 더 빨랐기 때문이다. 가라앉은 가스는 키가 작은 아이부터 덮쳤고 주민들은 극심한 호흡 곤란과 폐부종 증상을 보이며 죽어갔다. 날이 밝자 보팔 시내에는 동물 사체가 가득했다. 수많은 사망자가 발생했으며 사고 이후 후유증으로 인해 사망한 것으로 추정되는 사람들도 많았다. 도시 전체에 시체가 썩는 냄새가 코를 찌르고 시신들을 강에 던지기도 했다.

저장사고 당시 공장에는 3개의 원료물질 저장 탱크가 있었으며, MIC 가스는 필요한 만큼 생산 후 사용하거나 권장보관용량(60%)을 단기간 저장하도록 돼 있었다. 그러나 당시 모든 탱크에는 이미 권장보관용량 이상의 MIC가 저장돼 있었다. 또 공장 내부에 있던 살수장치, 탱크, 가스 세정기, 소각탑 등의 안전장치 중 에서 그 어느 하나도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

문제는 이뿐만이 아니었다. MIC 누출 사고가 발생한 직후 당연히 울려야 할 사이렌 경고시스템이 작동하지 않았다. 잦은 고장을 이유로 알람기능을 해제해 버렸기 때문이다. MIC 누출이 시작된 지 1시간이 지난 새벽 1시경, 주민 대피 경보가 잠시 울렸다. 그러나 작은 규모의 누출이 발생했을 때 경보가 울리고 이내 곧 꺼지던 상황이 자주 있었던 터라 인근 주민들은 상황을 심각하게 판단하지 않았다.

회사 공보시스템을 통해 사고 소식이 직원들에게 전달된 후 직원들은 바람을 피해 긴급히 대피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사업장 내 비상연락체계가 가동되지 않았다. 공장 내 상황관리자와 정부의 상황인지, 그리고 상황전파 지연이 맞물리면서 새벽 3시경이 돼서야 주민대피경보가 울렸다. 그러나 그때는 이미 골든타임이 지난 이후였고 현장 직원과 주민들이 피해를 입은 상태였다.

특히 당시 유니온 카바이드는 평소 보팔 지역의 주민들에게 MIC의 위험성이나 대피요령에 대한 교육을 시행한 적이 없었고, 관련 정보를 제공하지 않아서 피해가 극심했다. 주민들은 MIC가 호흡을 통해 폐와 중추신경계에 영향을 준다는 사실을 알지 못하는 상태였으므로 바람을 피해 대피를 하지 않았고, 많은 주민들이 길거리에서 사망하거나 부상을 당했다.

사고 발생 이후 인도는 환경보호법에 따라 기업에 대한 정부 규제 및 시민권을 강화했다. 대표적으로 정부는 공장에 대한 검사 및 폐쇄 권한을 가지게 됐다. 시민들은 안전관리 규정을 지키지 않고 일상생활에 위협을 가하는 기업을 고발할 수 있게 됐다. 더불어 정부는 기업들의 산업재해 예방 보험 가입을 의무화 했다.

보팔 사고 이후 미국은 위험에 대한 주민 ‘알 권리’ 정책을 시행했다. 대표적으로 화학사고와 같은 비상 사태와 관련하여 주 비상대응위원회와 지역비상기획 위원회를 설립했다. 또 화학사고 발생 시 관련 기관과 주민들에게 전달할 통보 조항을 리스트화, 지역 주민에게 기업이 화학물질 정보를 제공하는 것을 의무화했다.

유럽의 경우, 위험정보 공유 프로토콜 개발이 진행됐으며 유해 화학물질 사전 통보 승인조약이 추진됐다. 해당 조약은 특정 유해 화학물질과 농약의 국제교역 시 사전 통보를 통해 승인 절차를 밟게 한 것으로서 국가 간 위험물질 이동조항을 규제하는 협약이었다.

인도 보팔의 MIC 누출 사고는 우리에게도 많은 시사점을 주었다. 특히 2012년 구미에서 불산가스 누출 사고가 발생하면서 화학사고에 대한 국민적인 불안감이 고조됐다. 이 불상사를 방지하기 위해서는 화학물질을 취급하는 사업장의 경우, 안전의식 고취를 위해 안전관리자와 CEO의 안전교육과 각종 안전장치의 관리를 강화해 나가야 한다.

또 인도 보팔의 사고 사례에서 알 수 있듯이 주민들에 대한 보호시스템이 체계적으로 마련돼야 한다. 화학물질의 독성과 위험성에 관한 정보를 상시적으로 주민과 공유하고, 사고가 발생할 경우 신속하게 주민들에게 알려야 한다.
주민들에게 사고 소식을 알리는 기준과 방법을 체계화하여 일정 규모 이상 화학사고 발생 시 신속한 주민 보호시스템을 가동해야 한다.

<이 기사는 행정안전부가 과거 재난대응의 문제점과 교훈을 담아 발간한 재난대응 사례집 '재난씨, 우리 헤어져'의 내용을 편집한 것입니다>
[재난씨, 우리 헤어져] ⑧20세기 최악의 가스 유출 참사, 인도 보팔


true@fnnews.com 김아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