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Top-down 형식의 수직적 회의가 1차원적 회의였다면 수평적 회의는 2차원적 회의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마저도 구식이 되어버렸다. 세계적인 기업들은 여기서 더 나아간 형식을 취하고 있다. 시간과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형식에 국한되지 않는 3차원적 회의가 요즘 대두되는 ‘오픈형 회의’이다.
이런 변화가 실제로 어떤 영향을 미치는 것일까? 우리는 수직적인 조직 문화가 수평적으로 옮겨가면서 발생한 수많은 신화들을 이미 경험했다.
2002월드컵에서 전대미문의 4강 신화를 이룬 대표팀 감독 히딩크는 취임 이후 선수단 내의 수직적인 문화를 깨트렸다. ‘명보야, 밥 먹자!’ 에피소드는 유명한 일화이다. KBO 하위권이었던 롯데자이언츠를 포스트시즌에 진출시킨 로이스터 감독도 수평적 분위기를 조성했다. 그는 ‘쳐라! 영웅이 될 지어니!’라고 외쳤다. 소극적인 선수는 영웅이 될 수 없다며, 적극적이고 창의적인 야구를 하게끔 했다. 누구나 눈치 보지 않고 칠 수 있는, 즉 발언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든 것이다.
기업에서는 이들을 앞다투어 벤치마킹했다. 하지만 수평적 회의에도 한계점은 존재했다. 같은 시간에 모두 모여, 기다란 테이블에 직급 순으로 앉아서 하는 회의는 겉으론 ‘수평적’이라 해도 비효율적이었다.
그래서 넷플릭스는 수평적 회의를 오픈형 회의로 확장했다. 직원들은 자유롭게 랩톱과 스마트폰을 들고 다니며 업무를 하고, 누구든 아이디어가 생각나면 회의를 시작할 수 있다. 특히 목표 도달에 중요한 것은 ‘통제가 아닌 맥락’(context, not control)이라고 했다. 업무에 대한 전체적인 맥락만을 인지시키고 그 외 모든 것들은 열어두었다. 페이스북 COO인 셰릴 샌드버그는 넷플릭스의 기업문화가 담긴 문서를 ‘실리콘밸리에서 가장 중요한 문서’라고 했다.
국내 기업 중에서도 오픈형 회의를 실행하는 곳들을 찾아볼 수 있다. 그중 하나가 세계사컨텐츠그룹이다. 세계사는 <어떻게 원하는 것을 얻는가>, <설민석의 조선왕조실록> 등 다수의 베스트셀러를 낸 출판사였다. 하지만 2017년 과감히 ‘출판그룹’이라는 틀을 깨고 다양한 컨텐츠를 기획/제작하는 ‘컨텐츠그룹’으로 발돋움했다. 또한 지정석을 없애고 울창한 숲을 회사 내에 옮겨놓는 등 오피스 혁신을 시작했다. 직원들은 노트북을 들고 원하는 곳에서 업무를 한다.
오픈된 구조의 세계사컨텐츠그룹 사무실에서는 자유로운 소통과 협업이 가능하다. 누구든, 언제든 회의를 시작할 수 있고, 회의실을 예약하거나 승인을 받아야 하는 ‘절차’는 없다. 서서 회의를 하던 컨퍼런스 콜을 하던, 직급에 상관없이 자유롭게 회의를 주재할 수 있다. 그저 업무에 대한 ‘맥락’을 이해하여 아이디어들을 교환하고 발전시키면 된다. 인턴이 낸 아이디어라도 좋으면 채택하고, 대표가 낸 아이디어라도 좋지 않으면 다른 방향을 제시할 수 있다. 그렇기에 불완전한 아이디어에서도 인사이트가 폭발하고 시너지가 생긴다. 최윤혁 대표는 직원들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시키는 것만 잘하는 ‘무난한 직원’은 없습니다. 모두가 프로인 스타플레이어에요.”
물론 오픈형 회의 문화는 구성원들의 노력이 없다면 오히려 해이해질 수 있다.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자리를 잡아가고 있는 이런 기업문화들은 지금 또 다른 미래를 실험하고 있다. 과연 ‘자유’와 ‘책임’이 적절히 조화를 이루며 4차 산업혁명에 걸맞은 기업문화로 자리 잡을 수 있을지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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