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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장칼럼] 더블린과 기네스의 250년전 계약

최갑천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8.07.31 16:56

수정 2018.07.31 16:56

[차장칼럼] 더블린과 기네스의 250년전 계약

지난 6월 초 유럽의 끝 아일랜드를 다녀왔다. 아일랜드에서 가장 보고 싶었던 건 더블린 외곽에 자리한 기네스 본사였다. 기네스 더블린 공장은 과거 모습을 그대로 간직했다. 더블린 공장의 연면적은 도시 전체의 10% 이상일 만큼 웅장했다. 전 세계에서 매일 생산되는 기네스 맥주가 1000만잔을 넘는다. 이런저런 설명이 더해지자 흑맥주의 성지에 온 감흥은 배가됐다.
20유로의 '비싼' 입장료가 아깝지 않았다.

그런데 기네스 본사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건 맥주나 웅장한 시설은 아니었다. 기네스가 이 척박한 도시에 터를 잡은 250년 전의 사연에 솔깃해졌다. 창업주 아서 기네스는 1775년 더블린 외곽의 리피강 둔치 옆에 버려진 양조장을 인수했다고 한다. 당시 더블린시는 쓸모없는 폐공장을 떠안겠다는 한 기업가의 제안을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그래서 아서 기네스에게 계약금 100파운드와 연 45파운드 임대료라는 파격적인 조건을 내걸었다. 45파운드는 우리 돈 6만6000원이다. 기네스는 맥주의 품질을 좌우하는 물까지 무상 제공받았다. 그런데 당시 맺은 계약기간이 무려 9000년이다. 이 황당한 계약은 지금도 더블린시를 웃음거리로 만들고 있다. 불행히도 기네스는 지금 영국 주류회사인 디아지오 소유다. 기네스 후손의 무리한 사업확장이 화를 불렀다. 그러나 더블린시는 이 '멍청한 계약'을 행운으로 여긴다. 지방정부가 직접 걷는 세금은 없지만 간접적 경제효과가 어마어마하지 않은가. 기네스를 보기 위해 더블린을 찾는 관광객만 1년에 100만명이 넘는다. 이들의 소비에서 파생된 연관산업과 고용효과는 지방정부로서는 축복일 것이다.

우리는 어떤가. 국가 핵심기업들을 홀대하는 경향이 짙다. 최근 주력산업인 반도체와 디스플레이만 보더라도 기술유출 공포에 시달리고 있다. 고용노동부는 최근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과 삼성디스플레이 공장의 작업환경보고서를 제3자에게 공개하라고 결정했다가 비난을 받았다. 이 보고서에는 공정 설계 등의 민감한 기업정보가 담겨 있다. 중국으로서는 반드시 손에 넣을 게 뻔하다. 다행히 해당 기업이 행정심판 등을 제기해 가까스로 공개는 막았다. LG디스플레이는 지난해 광저우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공장 설립을 추진했다가 산업통상자원부의 심의 지연으로 5개월을 낭비했다. 이번엔 정부의 지나친 기술유출 우려가 발목을 잡았다. 중국 정부도 7개월 정도 몽니를 부리다 최근에야 사업을 승인했다. 미래 성장동력을 결정하고 수조원의 투자를 결정한 기업에는 피를 말리는 시간이었을 것이다. 최근 정부는 대기업들에 국내 투자와 일자리 확대를 압박하고 있다. 아쉬울 때만 기업을 찾는 느낌이다.
제조업에 실질적 도움이 될 규제 해소는 좀처럼 안 보인다. 정부가 눈앞에 열매만 보지 않길 바란다.
때론 경제를 살리는 데 '멍청한 계약'도 상책이 될 수 있다.

cgapc@fnnews.com 최갑천 산업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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