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농·귀촌 해마다 늘지만 원주민과의 갈등 커지는 등 선제적 갈등 조정 대책 필요
경북 봉화에서 지난 21일 발생한 총기 난사 사건은 귀농인과 원주민의 갈등에서 비롯된 것으로 알려졌다. 2014년 귀농해 소규모 농사를 짓고 있던 피의자 김모씨(77)는 최근 폭염이 심해지자 상수도 문제를 두고 고지대에 사는 현지 이웃과 마찰을 빚었다. 김씨는 면사무소에 찾아가 상수도 사용을 두고 민원을 제기했으나 중재를 제대로 받지 못했다. 결국 김씨는 주민과 면사무소 직원들에게 엽총을 겨눴다.
■이웃 갈등으로 떠나는 고통받는 귀농인
빡빡한 도시 생활을 떠나 매년 귀농인은 늘고 있지만 현지 주민과의 갈등도 그만큼 늘어나고 있다.
22일 통계청과 농림축산식품부, 해양수산부가 공동 발표한 '2017년 기준 귀농어·귀촌인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귀농·귀촌인은 51만6817명으로 통계를 작성하기 시작한 2013년 이후 매년 늘어 처음으로 50만 명을 넘었다.
귀농 인구가 늘어난 만큼 갈등도 커지고 있다.
지난 6일 충북 제천시청 브리핑실에서는 청풍면 학현리 전 이장(원주민)과 현 이장(귀농인)이 마을 소유 펜션 운영권이 자신에게 있다고 주장하는 기자회견을 열기도 했다. 펜션 사업을 위해 마을발전협의회가 구성됐지만 무용지물이었다.
귀농인과 원주민의 갈등은 '역(逆) 귀농'으로 이어지고 있다. 2016년 농림축산식품부가 귀농·귀촌한 1000가구씩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귀농과 귀촌에 실패해 다시 도시로 되돌아오는 '역 귀농'을 계획 중인 가구가 각각 4%와 11.4%로 나타났다. 소득 부족(37.8%)이 주된 사유였지만 이웃 갈등·고립감(16.9%)도 적응 실패 원인으로 꼽혔다
일례로 귀농을 꿈꾸며 충북 보은 인근에 토지와 주택을 사들인 손모씨(65)도 이웃과의 갈등으로 주말에만 내려가는 '반쪽 귀농'으로 바뀌었다. 손씨가 매입한 밭에 이웃이 허락없이 호두나무 10수를 심은 것이다.
손씨는 마을 이장이나 노인회관, 군청까지 찾아갔지만 뾰족한 해결책을 찾지 못했다. 손씨는 "1년 동안 고성이 오간 뒤에야 간신히 호두나무가 뽑혔다"며 "오만 정이 떨어져 귀농의 꿈이 사라진 지 오래다"고 털어놨다.
■마을 공동체 등의 '중재' 역할 부재
기존 주민들도 할 말이 많다. 귀농인들이 '시골 문화'에 대한 아무런 이해 없이 귀농한다는 것이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이 평균 농촌 거주 기간이 약 42년인 시골 주민 946명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귀농·귀촌인과 원주민 간 갈등 이유는 '농촌 사회 문화에 대한 이해 부족(29.3%)'이 가장 높았고 '마을 일이나 행사에 불참(21.0%)', '집·토지 문제 또는 재산권 침해(10.7%)', '도시 생활 방식을 유지(10.3%)' 등이 뒤를 이었다.
경남 합천에서 수박 농사를 짓는 이모씨(66)는 "우리가 도시에 가면 도시 사람들처럼 사는 것처럼 귀농인들도 불만이 있더라도 우리 방식을 따라야 한다"며 "다짜고짜 계약서부터 들이밀면 답답할 노릇이다"고 밝혔다.
귀농인과 현지 주민의 갈등을 중재할 기구로 마을 공동체가 거론되고 있다. 과거부터 마을 이장이나 노인회 등에서 중대사를 결정한 만큼 갈등을 선제적으로 조정하는 입장이 돼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마을 공동체가 대개 기존 주민을 대변하는 탓에 갈등이 끊이질 않는다는 것이 귀농인들의 주장이다.
정성근 한국귀농인협회 대표는 "귀농인과 현지 주민의 갈등은 살아온 문화가 달라 생긴다"며 "마을 이장이나 면사무소 등에서 중재 역할을 해줘야 하는데 갈등 관리 시스템이 시골에는 없다"고 전했다.
정 대표는 "이번에 발생한 엽총 사건도 가뭄인 상황에서 물을 누가 쓰냐의 문제에서 비롯됐다"며 "면사무소에서 상호 간 동의할 수 있는 중재안을 가지고 왔으면 극단적인 사건은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다"고 진단했다.
beruf@fnnews.com 이진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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