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지인의 아파트에서 생긴 일이다. 내용은 이렇다. 평소 음식물쓰레기 처리는 대부분 지인의 아내 몫이었다. 가끔은 지인도 마지못해 돕긴 했다. 보통 비닐봉지 하나에 음식물쓰레기를 담곤 했다.
이어 또 하나의 비닐봉지를 '방탄복'처럼 하나 덧씌우곤 했다. 혹시라도 새어나오거나 터질까 싶어서다. 통상 음식물쓰레기통 뚜껑을 연 후 비닐봉지 입구를 풀어서 음식물을 부었다. 이때 음식물을 최대한 남지 않게 깨끗하게 붓는 것이 관건이다. 이어 비닐봉지는 옆에 있는 통에 담아야 했다. 주의할 점은 손에 음식물이 묻지 않게 담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 두 가지가 항상 중요했단다. 하지만 두 번째 문제가 항상 미해결이었다. 아무리 주의를 기울여 부어도 손에는 물기가 묻어 있어 찝찝했다. 이런 상황을 대비해 물휴지 한 장을 호주머니에 챙겨 가곤 했다. 이럴 때마다 음식물쓰레기통 옆에 손씻는 수도라도 하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단다. 하지만 그저 바람일 뿐이었다. 그런 것까지 배려할 아파트 관리소도 아닐 테고.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어느 날 음식물쓰레기통 옆에 세면대가 설치됐다. 생수통처럼 생긴 물통을 선반에 올려놓은 형태로, 수도꼭지를 틀면 소량의 물이 흘러나와 손을 씻을 수 있다. 이뿐 아니다. 아파트 1층 입구 문이 버튼식 보안장치를 갖춘 자동문으로 전면 교체됐다. 가구마다 출입카드를 지급했다. 과거와 비교하면 상전벽해 수준이라고나 할까. 문득 세상의 결과에는 원인이 있기 마련이란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어줍은 기자정신이 발동했다. 왜일까. 관리사무소가 주민들에게 베푼 자비인가, 아니면 속사정이 따로 있나 알아봤다고 한다. 아파트에 갑자기 변화의 바람이 분 까닭이 분명 있을 것이란 판단에서다. 아뿔싸. 바로 그거였다. 남의 이야기인 줄만 알았던 최저임금과 주52시간제가 이유였다. 아파트 경비원을 줄이기 위한 궁여지책이었던 셈이다. 아파트 경비원이 하던 일을 최대한 줄이려는 의도에서 세면대와 자동문을 설치했던 것이다.
그제서야 무릎을 쳤다는 게 지인의 말이다.
뒷맛이 개운치 않았다. 뭔가 좋아지되, 좋아지지 않은 듯한 묘한 느낌이다.
언젠가 1층을 오가면서 인사를 나누던 경비원을 볼 수 없는 날이 오는 건 아닐지. 경비실에 인공지능 로봇이 앉아서 오가는 주민들을 통제하는 날이 오는 건 아닌지. 첨단 기술과 변화가 좋은 것인지, 아닌지 헛갈린다.
syj@fnnews.com 서영준 정보미디어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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