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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어 잔재 남은 민법, 우리말 순화.."전국민 이해하는 그날까지"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8.10.08 14:49

수정 2018.10.08 14:49

민법, 일제시대 '조선민사령' 영향으로 일본 표현 많아
법무부, 법률용어 우리말 순화에 '박차'
"생활과 밀접한 민법, 모든 국민에게 열려야"
일본어 잔재 남은 민법, 우리말 순화.."전국민 이해하는 그날까지"
곳곳에서 외국어·외래어 표기의 우리말 순화가 이뤄지고 있지만, 정작 필요함에도 아직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곳이 있다. 바로 법전이다.

법전을 펼쳐보면 '몽리자(蒙利者·이용자의 한자식 표현)', '가주소(假住所·임시주소의 일본식 표현)' 등 사전이 없다면 뜻 조차 알기 어려운 표현들이 난무한다. 이렇다 보니 인터넷 검색 등을 통해 법에 대한 국민들의 접근성은 높아졌음에도 정작 그 뜻을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가 빈번히 발생하고 있다.

■민법부터 교정용어까지 개정 추진
세종대왕의 한글 창제를 기념하는 한글날이 이달 9일로 572돌을 맞는다.

하지만 '일상 생활에서 편히 쓰라'는 세종의 한글 창제 취지와는 다르게 국민들의 삶과 밀접한 민법 속에는 이해하기 어려운 표현들이 가득하다.

법조문에 포함된 한자어와 일본식 표현에 대한 지적은 꾸준히 제기돼 왔다.

8일 법무부와 국회 등에 따르면 제19대 국회 때인 지난 2015년에도 법무부는 어려운 민법을 우리말로 바꾸는 개정 작업을 추진했지만, 국회 임기 만료로 인해 이뤄지지 못했다. 때문에 법무부는 이번 20대 국회에선 반드시 일본식 표현, 과도한 한자어 사용 등을 바로잡겠다는 계획을 세우고 발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1118개에 달하는 민법 전체 조문 중 1106개의 조문이 재정비된다.

최우선은 일본식 표현과 어려운 한자어를 우리말로 바꾸는 작업이다. '요(要)하지 아니한다' 등과 같은 문어체 표현은 '필요가 없다' 등으로 순화되고, '최고(催告)'와 같이 혼동을 줄 수 있는 말도 '촉구' 등 비교적 명확한 표현으로 개선된다.

법령 뿐만 아니라 교정시설에서 사용되는 용어들의 순화도 함께 추진된다.

요즘도 교정시설에서는 '영치'와 '서신', '교부' 등 일상 생활에선 잘 사용되지 않는 용어들이 심심찮게 눈에 띈다. 법무부는 이같은 표현들을 국민들 모두가 손쉽게 알 수 있는 용어들로 순화하는 작업을 진행 중이다.

'영치'는 '보관'으로, '서신'은 '편지'로 대체된다. 이밖에도 '회신'은 '답'으로, '기일'은 '제삿날'로 순화해 우리말 사용 빈도도 한층 높아질 전망이다.

민법 속 일본식 표현·한자어 개선 방안
현행법 개정안
가주소(假住所) 임시주소
요(要)하지 아니한다 필요가 없다
제각(除却) 제거
최고(催告) 촉구
상당(相當)하는 적절한, 해당하는
폐색(閉塞)된 막힌
저치(貯置) 모아 둠
궁박(窮迫) 곤궁하고 절박한 사정
기타(其他) 그 밖의(에)
■생활과 맞닿은 민법, 모두에게 열려야
지난 1958년 공포되고 1960년 1월 1일부터 시행된 대한민국 민법은 일본의 그늘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했다. 일제시대와 6·25 전쟁 등을 거치며 오롯이 우리만의 법을 만들기엔 한계가 있었던 탓이다. 때문에 당시 민법의 절반 이상이 1912년 공포된 조선민사령과 관계돼 있었고, 일본식 문장을 그대로 옮긴 경우도 많았다.

전문가들은 민법 개정이 국민들의 법 접근성을 높이는 것은 물론, 우리 법의 정체성을 높이는 측면에서도 반드시 필요한 작업이라고 강조한다.

법무부 민법개정위원회 분과위원장을 역임하고 있는 윤철홍 숭실대 법학과 교수는 "민법 제정 당시만 해도 법조인이나 법 학자들이 일본어를 유창하게 하는 경우가 많았지만, 지금은 시대가 변했다"며 "여러 법 중 일상 생활과 가장 밀접한 관련이 있는 민법은 젊은 세대나 교육 수준이 높지 않은 국민들도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어 그는 "행정법이나 형법 등에서 민법에서 사용되는 용어들을 그대로 가져다 사용하는 경우가 많아 민법 용어 순화가 이뤄진다면 자연스레 법조계 전반의 법률용어 순화를 이뤄낼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jasonchoi@fnnews.com 최재성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