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국제정치

사우디 "카슈끄지와 무관" 살해 의혹 첫 공식 부인

서혜진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8.10.13 20:49

수정 2018.10.13 20:49

A Saudi flag flutters near a security camera are seen in front of the residence of the Saudi consul in Istanbul, Turkey, 12 October 2018.EPA연합뉴스
A Saudi flag flutters near a security camera are seen in front of the residence of the Saudi consul in Istanbul, Turkey, 12 October 2018.EPA연합뉴스


사우디아라비아 정부가 12일(현지시간) 자국 유력 언론인 자말 카슈끄지를 계획적으로 살해했다는 의혹을 강하게 부인했다.

압둘아지즈 빈 사우드 사우디아라비아 내무장관은 이날 국영 SPA통신에 "카슈끄지 실종에 사우디 왕실이 개입했다는 일부 언론의 보도는 허위"라며 "그런 보도는 거짓이고 근거 없는 의혹을 제기하는 행태"라고 비판했다.

사우디 정부의 장관급이 공개적으로 살해 의혹을 부인한 것은 이번 실종사건이 발생한 이후 처음이다.

사우디 왕실을 비판한 언론인 카슈끄지가 이달 2일 실종된 뒤 그를 불편하게 여긴 사우디 왕실이 이스탄불 주재 사우디 총영사관을 방문했을 때 살해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이에 대해 사우디 정부는 그가 총영사관을 떠난 뒤 실종됐다며 무시하는 태도로 일관했지만 이제 강공으로 전환하는 모양새다.

압둘아지즈 장관은 "사우디 정부는 우리 국민인 그가 무사하길 바란다"며 "우리는 원칙과 규범, 전통을 지키고 국제법과 협약을 준수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언론 보도는 오직 사실에 근거해야 한다"면서 이번 의혹이 국제사회에서 사우디를 곤란하게 하려는 터키와 카타르 일부 언론의 '여론전 공작'이라고 역공했다.

사우디 국영 알아라비야 방송은 "사우디 정부가 카슈끄지를 살해했다는 근거로 언론이 보도한 내용이 모두 허위로 드러나고 있다"며 "진실은 오직 하나, 사우디 정부가 그의 실종과 관련이 전혀 없다는 것"이라고 의혹을 반박했다.

사우디는 이번 사건을 터키 당국과 공동 조사하는 대표단을 이날 터키 이스탄불로 보냈다.

현재 '사우디 정부 살해 기획설'이 기정사실로 되면서 분위기는 사우디에 불리하게 흘러가고 있다.

전날 워싱턴포스트(WP)는 익명의 미국 및 터키 관료들을 인용해 터키가 카슈끄지 피살 관련 오디오 및 비디오 기록을 갖고 있다고 보도했다.

WP는 "특히 오디오 기록은 이스탄불로 파견된 사우디 팀이 카슈끄지의 사망에 책임이 있다는, 설득력 있고 소름끼치는 증거를 제공한다"고 말했다.

한 소식통은 "영사관 안에서 녹음된 목소리는 카슈끄지가 영사관으로 들어간 뒤에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알려준다"고 말했다. 그는 녹음 기록에 카슈끄지 및 아랍어를 하는 남자들의 목소리가 나오며 "그가 어떻게 추궁 당하고, 고문 당하고, 살해됐는지 들을 수 있다"고 말했다.

WP 칼럼니스트로 미국에서 망명 생활을 하며 사우디 정부와 무함마드 빈살만 왕세자를 비판해 온 카슈끄지는 지난 2일 결혼을 앞두고 약혼녀의 모국인 터키 이스탄불에 있는 사우디 총영사관에 결혼 관련 서류를 발급받기 위해 들어갔다가 행방불명됐다.

사우디 정부는 카슈끄지가 당일 오후 총영사관을 나간 뒤 실종됐다고 주장하고 있다. 레제프 타이프에르도안 터키 대통령은 이를 증명하라고 압박하고 있다. 터키 당국은 그가 총영사관 안에서 사우디 정부에 의해 계획적으로 살해했다고 잠정 결론을 내린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서방국들은 사우디와 거리를 두기 시작했다.

사우디의 우군인 미국 정부는 사건 발생 초기 방관했으나 사우디에 진상 규명을 압박하는 쪽으로 입장을 바꿨다.

영국 버진그룹의 창업자 리처드 브랜슨 회장은 사우디 국부펀드 PIF가 10억 달러(약 1조1400억원)를 투자하는 계획에 대한 논의를 중단했다. 또한 사우디 정부가 이끄는 홍해 관광 프로젝트와 관련된 자문이사직도 사임했다.

버락 오바마 미국 행정부 시절 에너지장관을 지낸 어니스트 모니즈도 무함마드빈 살만 사우디 왕세자가 주도하는 5000억달러 규모의 메가시티 프로젝트 '네옴'과 관련한 자문이사역을 그만뒀다.

구글의 모기업 알파벳의 도시개발 부문인 '사이드워크 랩스'의 최고경영자(CEO) 댄 닥터로프와 애플의 수석디자이너 조너선 아이브도 실수로 이 자문이사회에 이름이 오른 것이라고 말했다.

이달 23일 사우디 왕실이 리야드에서 여는 국제 경제회의 '미래 투자 이니셔티브'(FII)에 김 용 세계은행 총재, 브랜슨 회장, 다라 코스로샤히 우버 CEO가 불참한다고 밝혔다.

미국 뉴욕타임스, 영국 이코노미스트 등 서방의 유력 언론도 이 행사 취재를 취소했다.

이번 사건이 사우디의 소행으로 드러나면 무함마드 왕세자가 '비전 2030'에 따라 야심 차게 추진 중인 초대규모 신도시, 관광단지 개발에도 악영향을 끼칠 수도 있다.


사우디 정부는 탈석유 시대를 대비하고 폐쇄적 '이슬람 왕국'의 이미지를 벗어나려고 국부펀드에 서방의 투자를 더 해 이들 사업을 추진한다는 계획이다.

sjmary@fnnews.com 서혜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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