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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중로] 서울 예찬

김용민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8.11.12 17:09

수정 2018.11.12 17:09

[윤중로] 서울 예찬

서울은 아름다운 도시다. 다른 의견을 갖고 있는 사람도 있겠지만 내 눈에는 그렇다. 그러나 나 또한 서울의 아름다움을 느끼는 데 적지 않은 시간이 걸렸다. 사실 익숙한 풍경에 대한 평가는 대체로 인색하다. 서울 풍경은 너무 익숙해 평가를 덜 받았던 셈이다.

하지만 외국인의 눈에 비친 서울의 모습은 예전부터 남달랐던 모양이다.
수십년 전 얘기다. 서울의 모 대학에서 강의하는 한 외국인과 친분이 있었다. 같은 하숙집에 산다는 인연으로 이런저런 얘기를 나눌 기회가 많았다. 여러 얘기 가운데 아직도 기억에 남아있는 것은 그의 '서울 예찬'이었다. 이 외국인은 서울이 아름다운 도시라며 그걸 모르고 지내는 우리들을 아쉬워했다. 아름답고 멋진 산과 구릉이 여러 건물들과 조화를 이뤄 세상 어느 곳에서도 보기 어려운 경치를 자아낸다는 게 이유였다. 그때 나는 그런 평가를 그다지 인정하지 않는 편이었다. 그저 그가 듣기 좋은 얘기를 해주는구나 하는 정도랄까. 실제로 세상에는 아름다운 도시들이 얼마나 많은가. 프랑스 파리, 이탈리아 로마, 체코 프라하, 미국 뉴욕 등등. 그 당시 사진과 영상을 통해서 본 외국의 도시들은 훌륭한 중세 건물들과 마천루가 즐비한 신비로운 도시였다. 거기에 비교하면 서울은 초라하다는 생각이었다.

그런 편견이 어느 때부터인가 조금씩 바뀌었다. 서울을 둘러싼 산과 구릉 그리고 갖가지 건물들과의 조화, 예전에 그 외국인이 얘기한 서울의 모습이 보이기 시작한 것일까.

특히 늦가을, 서울의 모습은 어떤 계절보다 최고다. 과거와 현대가 어우러진 고즈넉한 정취는 서울을 한껏 아름답게 치장한다. 요며칠 전 단풍구경 한번 해보자며 집을 나섰다. 멀리 떠날 입장은 아니어서 가까운 곳을 찾다가 발견한 곳이 '한양도성 순성길'이었다. 전체 길이가 약 18.6㎞, 6개로 나눠진 구간 중 청와대 뒷길인 백악구간을 구경 삼아 쉬엄쉬엄 걷기로 했다. 윤동주기념관과 거의 붙어있는 한양도성 창의문부터 대학로 인근 혜화문까지 4.7㎞가 백악구간이다. 그 길이 온통 가을색으로 물들어 감탄을 자아냈다.

어느 한 곳이랄 것도 없다. 손에 잡힐 듯한 북한산의 기암과 그 사이에 옹기종기 자리잡은 마을, 가파른 북악산과 사방으로 뻗은 산세 그리고 오래된 성곽을 물들이는 울긋불긋한 단풍들이 가는 길 내내 이어졌다. 이것만으로도 서울, 특히 서울의 가을은 충분히 아름다웠다.
굳이 산을 찾을 필요도 없다. 동네 골목길 돌아 큰길로, 이 건물 지나 저 건물 사이에서도 서울의 정취는 물씬 묻어난다.
습관처럼 시간만 나면 해외여행을 떠나기보다 우리가 가진 아름다움을 먼저 챙겨보는 것은 어떨까. 서울은 손꼽힐 정도로 아름답고, 특히 눈부신 가을을 가졌다.

yongmin@fnnews.com 김용민 산업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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