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사회일반

보수 후려치기·꺾기는 기본..금융사 갑질에 법무사 '속앓이'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8.11.28 09:29

수정 2018.11.28 09:29

대한법무사협회 , 금융기관·공기업 거래 불공정 사례 발표
/사진=픽사베이
/사진=픽사베이
#1. A법무사는 업무위임을 맡은 은행의 한 지점으로부터 전화가 오면 가슴이 철렁하다. 내부의 실적달성을 위해 금융상품의 가입을 강요하는 연락이 수시로 오기 때문이다. 마지못해 보험 상품에 가입한 동료 법무사들은 수개월 후에 보험계약을 해지하면서 원금의 대부분을 잃게 됐다.
#2. 지역의 한 신용보증기관은 B법무사사무소에 가압류사건을 맡기면서 보수도 없이 별개의 업무처리를 요구했다. 이에 시달린 사무원이 사직을 하는 등 문제가 발생하자 B사무소는 신용보증기관에 어려움을 호소했지만, 돌아온 건 일방적인 거래 해지였다.



법무사들이 거래처인 주요 시중은행을 비롯한 금융사들의 부당한 업무행태에 물질적, 정신적 피해를 입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거래상 지위를 이용해 턱 없이 낮은 보수료를 제시하는가 하면, 판매 중인 금융상품의 가입을 압박하기도 했다. 개별 법무사들은 이의제기라도 하면 일이 끊길까 속앓이만 하고 있다.

28일 대한법무사협회에 따르면 법무사협회는 최근 두 달간 소속 회원들을 대상으로 법무사 위임사무에 대한 금융기관·공기업의 불공정 사례 53건을 취합했다. 협회 측은 이러한 사례에 대한 즉각적 시정조치를 요구하고, 불응하면 공정거래위원회 등에 고발조치 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불공정 사례들을 살펴보면 △보수 후려치기 및 지급 지연 △공과금 선대납 △부대비용 전가 △꺾기(금융상품 가입 강요) 등 다양한 갑질 행위들이 이뤄졌다.

■은행이 내야할 비용도 떠넘겨..낮은 보수에 울상
법무사들의 가장 큰 불만사항은 금융사들이 자신들이 부담해야 할 비용조차 법무사에게 떠넘기고 있는 점이다. 대표적으로 금융사들은 근저당권설정비를 고객에게 부담시키는 것은 위법하다는 법원 판단이 나오자 이 비용을 등기업무를 위임받은 법무사에 전가해 왔다는 게 협회 측의 주장이다. 이 때문에 법무사들이 지급받는 보수료는 대법원에서 인가한 '법무사 보수기준'에 턱없이 못 미치는 실정이다. 특히, 지방에 위치한 관할 등기소를 방문하는 등 업무과정에서 발생하는 교통비조차 법무사들이 부담하도록 했다.

법무사협회 관계자는 “정당한 보수를 주고 일을 시켜야 하는데, 법무사들의 경쟁률이 치열하다 보니 ‘너 아니라도 하려는 법무사가 많다’는 식으로 부당한 업무행태가 이뤄지고 있다”며 “일부 금융사의 경우 모든 비용을 법무사에 떠넘겨 보수표에서 정한 보수에서 20%만 지급하는 곳도 있다. 법무사는 사무실을 유지해야 하니 울며 겨자먹기로 할 수 밖에 없다”고 토로했다.

C법무사는 "(거래처인)지점직원들과 관련된 소유권이전등기를 무료로 해줄 것을 강요하면서 손해 난 것은 설정등기보수를 부풀리라며 배임행위를 권유받기도 했다"고 밝혔다.

심지어 등기업무 과정에서 금융사가 내야할 공과금을 법무사가 대신 내도록 하고, 수개월이 지나 정산해주는 사례도 빈번한 것으로 나타났다. 한 시중은행은 모집인(SR)을 이용한 부동산 대출업무 시 은행의 손해를 보전해주는 권원보험 보험료를 법무사 수수료에서 차감하기도 했다.

■‘갑을관계’ 빌미로 금융상품 강매하기도
계약 관계를 빌미로 자사의 금융상품 가입을 강요하는 '꺾기 행위'도 수시로 이뤄졌다. 다수의 법무사가 거래 중인 시중은행으로부터 보험 가입이나 카드·통장 발급 등을 권유받았다고 증언했다.

한 법무사의 경우 한 은행으로부터 사용할 일이 전혀 없는 회계프로그램의 구입을 강요받고, 수년째 사용료를 납부하고 있다고 토로했다.

한 은행 지점에서는 대출 고객에게 자신들이 계약 중인 법무사와 등기업무를 진행하지 않으면 대출해주지 않겠다며 으름장을 놓는 사례도 있었다.

현재 법무사협회는 각 금융사와 접촉하면서 불공정 사례에 대한 시정조치를 요구하고 있다. 최근에는 KEB하나은행과 법무사 보수기준에 맞춰 보수료를 지급하도록 업무협약을 체결했다.


최영승 대한법무사협회장은 "법무사에 대한 공공기관 및 금융기관의 갑질행위는 거래 상대방인 법무사나 국민은 뒷전이고 오로지 해당 기관의 영리에만 눈먼 소아적 발상에서 비롯된다고 본다"며 "협회는 이들 적폐행위에 대해 금융감독원, 공정위 등 관계기관과 대책을 모색하면서 위법행위에 대해 기관뿐만 아니라 담당자까지 법적 책임을 묻는 등 근절될 때까지 행동에 나설 것"이라고 말했다.

fnljs@fnnews.com 이진석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