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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n스트리트] 체코와 슬로바키아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8.11.29 16:53

수정 2018.11.29 16:53

체코슬로바키아의 역사는 미국과 연관이 깊다. 1918년 미국에 살던 체코인과 슬로바키아인들이 펜실베이니아주 피츠버그에 모였다. 이들은 두 민족이 힘을 합쳐 한 나라를 세우자고 뜻을 모았다. 이것이 피츠버그협정이다. 당시 두 나라는 오스트리아·헝가리제국이 지배했다.

이 제국은 제1차 세계대전에서 패한 뒤 힘없이 무너졌다. 협정에 따라 체코와 슬로바키아는 땅도 공평하게 나누고 의회·행정부·법원도 따로 갖기로 했다. 언어도 2개어를 공용어로 채택했다. 한 지붕 두 가족의 연방제를 꾸린 셈이다.

삶은 평탄치 못했다. 제2차 세계대전 때 독일 나치의 침공을 받았다. 전쟁이 끝나자 소련군이 밀고 들어왔다. 체코슬로바키아는 이후 40년 가까운 세월을 소련의 위성국으로 지냈다. 1968년에 반짝 민주화 바람이 불었다. 그러나 '프라하의 봄'은 소련과 동유럽 동맹군의 군홧발에 짓밟혔다. 개혁을 이끈 알렉산드르 두브체크 공산당 제1 서기는 권좌에서 쫓겨났다. 두브체크는 슬로바키아 출신이다.

1989년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자 어둠이 걷히기 시작했다. 체코슬로바키아에선 벨벳혁명이 일어났다. 벨벳처럼 부드럽게 혁명이 마무리됐다는 뜻에서 붙여진 이름이다. 공산당 일당독재가 무너진 자리에 바츨라프 하벨 대통령이 이끄는 민주정부가 들어섰다. 프라하에서 태어난 하벨은 체코 출신이다.

이때 나라를 분리하자는 이야기가 나왔다. 사실 두 민족은 인종도 다르고, 언어도 다르다. 1993년 둘은 평화적으로 갈라섰다. 이를 벨벳이혼이라 한다. 하지만 여전히 논란이 있다. 총 들고 싸운 원수도 아닌데 굳이 갈라설 필요가 있었냐는 것이다. 국민투표로 다시 결정하자는 움직임도 나왔다. 지난 2011년엔 하벨 전 대통령이 사망하자 두 나라가 함께 모여 국장을 치렀다. 장례미사에서 기도문은 체코어와 슬로바키아어를 공평하게 썼다.

문재인 대통령이 28일(현지시간) 체코를 방문했다.
우리 외교부가 영문 트위터 계정에 체코를 체코슬로바키아로 잘못 표기하는 외교적 결례를 범했다. 소련(현 러시아)이 무너진 뒤 유럽 내 국명이 뒤죽박죽이 됐다.
아무리 그래도 외교부가 저지를 실수는 아니다. 강경화 장관이 좀 더 나사를 조여야 하지 않을까.

paulk@fnnews.com 곽인찬 논설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