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확인해봄’은 잘못된 시민 의식과 제도, 독특한 제품·장소, 요즘 뜨거운 이슈 등 시민들의 다양한 궁금증을 해결해보는 코너입니다. 보다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고독한 팩첵커’가 직접 카메라를 들고 달려갑니다. 많은 제보 부탁드립니다.<편집자주>
우리 사회에서 서점은 어떤 공간일까요? 책을 판매하는 공간에서 ‘읽는 공간’으로 변화하고 있는 것 하나는 확실해보입니다. 대형서점에서 책 읽는 사람들은 과거에도 존재했습니다.
이런 경향을 ‘서점의 도서관화’라고 합니다. 하지만 부작용도 만만치 않습니다. 손상되는 책들이 많기 때문입니다. 올해 초 이 문제가 보도되며 이슈가 되기도 했는데요. 상황은 좀 나아졌을까요? 서울 종로구의 대형서점 K와 여의도에 자리한 대형서점 Y를 찾았습니다.
결론부터 말하면 상황은 바뀌지 않았습니다. 서점 내부를 살펴보면 베스트셀러, 잡지, 여행 코너에 비치된 책들의 훼손이 심합니다. 먼저 K서점입니다. 표지가 벌어져 있는 건 다반사였고, 구겨지고 찢어진 책도 쉽게 찾아볼 수 있었습니다. 비닐로 포장한 만화책 코너도 비닐이 찢어진 책들이 비치돼있었습니다.
다음은 여의도 Y서점입니다. 이곳은 여행 책자 훼손 정도가 특히 심했는데요. 한 여행 가이드북은 너덜너덜하다는 표현 외에는 설명할 방법이 없었습니다. 표지가 접히고 찢어진 책은 이미 새 책이라고 볼 수 없는 수준이었죠. 영상에는 담지 않았지만 또 다른 대형서점 브랜드인 B모 서점의 경우 표지가 구겨진 잡지를 여러 권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서점에서 책을 고르고 있던 시민 A씨는 “책을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구겨지거나 찢어진 책을 보면 마음이 안 좋다”고 말했습니다. 잡지 코너에서 책을 보고 있던 시민 B씨도 “책을 보는 건 좋은데 곱게 봤으면 좋겠다”고 전했습니다.
대형서점에서 훼손은 어쩔 수 없는 결과라는 시각도 있습니다. 북튜버를 지망하는 대학생 C씨는 “대형서점은 유동인구가 많으니 인기 있는 책들이 손때를 탈 수밖에 없다”며 “훼손을 최소화할 수 있는 대책이 필요할 것 같다”고 말했죠.
서점은 잡지나 수험서 등 일부 서적을 ‘견본’으로 지정하기도 합니다. 보고 참고하라고 둔 책이기 때문에 더 심하게 훼손된 책이 많습니다. 토익이나 토플 같은 영어시험 참고서가 대표적입니다. 그런데 견본은 팔지 않는 책이라 출판사는 책을 만들었어도 손해만 보게 됩니다. 훼손된 다른 책도 마찬가지입니다. 안 팔리면 그냥 반품입니다.
■출판사에 손해 떠넘기는 구조 그대로.. 독서 문화 활성화는 ‘물음표’
C씨의 말처럼 대형서점을 찾는 고객은 적지 않습니다. 크리스마스와 신정이 껴있는 연말·연초가 되면 과장 좀 보태서 여기가 서점인지 지하철 9호선인지 착각할 정도죠. 소비자가 서점에서 책을 보는 걸 막을 수 없다면 어쩌면 책 훼손은 당연해보이기까지 합니다. 하지만 진짜 문제는 따로 있습니다.
책이 훼손돼 팔리지 않으면 그냥 반품입니다. 새 책 대신 구겨진 책을 사고 싶은 소비자는 없을 텐데요. 결국 출판사만 손해를 떠안는 구조는 그대로라는 것이죠. 출판 관련 스타트업을 운영하고 있는 D씨는 “대형서점과 출판사는 확실한 갑을 관계”라며 “출판사 입장에서는 손해를 감수하며 서점의 요구에 맞출 수밖에 없다”고 비판했습니다. D씨는 “기사가 난 이후에도 특별히 바뀐 것은 없다”고 덧붙였습니다.
이같은 지적이 있을 때마다 서점은 “독서 문화 활성화에 기여하고 있다”고 주장합니다. 효과는 어느 정도였을까요? 문화체육관광부가 발표한 ‘2017년 국민독서실태조사’를 보겠습니다. 국내 독서율과 양을 조사한 가장 최근 자료인데요. 만 13세 이상 한국인의 독서율은 2015년 56.2%에서 2017년 54.9%로 되레 감소했습니다.
자세하게 살펴보면 전자책이 책 소비를 일정 부분 대체했습니다. 같은 기간 초·중·고등학생의 연간 전자책 독서율은 27.1%에서 29.8%로 증가했고, 성인도 10.2%에서 14.1%로 증가세였습니다. 종이책은 성인의 경우 65.3%에서 59.9%로 뚝 떨어졌고, 초·중·고등학생도 94.9%에서 91.7%로 줄었습니다.
국내 대형서점이 ‘서점의 도서관화’를 추진한지 몇 해가 흘렀지만 효과로 이어졌는지는 물음표가 남는 결과입니다. 소비자들이 서점에서 본 책을 얼마나 구매하는지 조사된 바도 없습니다. 이러니 ‘독서문화 확산은 명분이고 실상은 마케팅 수단일 뿐’이라는 비판이 제기될 수밖에 없습니다.
새로운 마케팅, 새로운 트렌드가 필요하다면 부작용을 최소화하는 방안을 모색하는 노력도 함께 따라와야 합니다. 소비자의 손을 탄 책을 할인해서 판매한다든지, 서점에서 필요한 책 몇 권을 구매해 ‘열람 전용’으로 운영한다든지 말이죠.
복합문화공간으로 탈바꿈한 서점은 분명 매력적인 면이 있습니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서점은 책 훼손이 심해질 수밖에 없는 구조를 만든 셈입니다. 이제는 대형서점과 중·소·독립서점, 출판계가 상생할 수 있는 비전이 필요합니다.
ocmcho@fnnews.com 조재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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