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차적으로 연금 개혁은 전문가의 영역이다. 전문가들이 밑그림을 그리고 나중에 정치가 덧칠을 하면 된다. 덧칠은 덧칠일 뿐이다. 전문가들이 세운 뼈대는 유지하는 게 좋다. 그래야 연금이 펑크가 안 난다. 국민연금 제도발전위원회는 1년에 걸친 논의 끝에 지난 8월 권고안을 내놨다. 소득대체율을 그대로 두든 또는 높이든 보험료율 대폭 인상이 불가피하다는 내용이다. 보험료 내는 나이를 더 높이고, 연금 타는 나이를 더 늦춰야 한다는 내용도 담겼다. 위원회는 적립배율 1배, 곧 국민연금의 지속가능성에 초점을 맞췄다. 연금으로 들어오는 돈과 연금에서 나가는 금액을 동일하게 맞추자는 것이다.
하지만 복지부 개편안에는 이런 권고가 싹 빠졌다. 대신 정치색이 짙게 묻었다. 문재인 대통령은 줄곧 국민 눈높이를 강조했다. 복지부가 지난달에 올린 1차 개편안에 퇴짜를 놓은 것도 그래서다. 어쩔 수 없이 박능후 복지부 장관은 전문가 의견보다 청와대의 보완 지시를 염두에 두고 최종 개편안을 짰다. 4안에 담긴 소득대체율 50%는 문 대통령의 공약이다. 그러면서도 보험료율 인상은 최소한으로 묶었다. 그 결과는 여론을 의식한 겉핥기식 개혁이다.
기초연금을 보강하는 방안은 국민연금 개혁의 본질이 아니다. 2안은 소득대체율·보험료율을 건드리지 않고 기초연금을 2022년부터 월 40만원으로 인상한다는 내용을 담았다. 기초연금은 다 세금이다. 세금을 많이 내는 청년들 어깨만 더 무거워질 판이다.
국민연금 개편엔 고통이 따른다. 요술 방망이는 없다. 더 받으려면 더 내야 한다. 나아가 펑크까지 막으려면 훨씬 더 많은 돈을 내야 한다. 복지부는 이 같은 현실을 외면한 채 땜질식 개편안을 내놨다. 최종적으로 국민연금 개혁은 국회의 몫이지만 오는 2020년 봄 총선을 앞두고 대대적인 개혁은 사실상 불가능해 보인다. 문재인정부의 국민연금 개혁은 두루뭉술 끝날 공산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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