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 5시가 넘으면 집 밖에 잘 못 나갑니다…여기 산 지 40년이 됐는데 아들이랑 뒷길은 한 번도 안 가봤어요"
김순례 할머니(가명)는 1980년에 시집와 약 40년 가까이 천호동에서 살고 있다. 천호동은 남편이 살던 동네였고 김 할머니도 이렇다 할 불만을 갖고 있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집들이 겸 찾아온 시동생이 펄쩍 뛰며 '아이들 교육은 어떻게 시킬 것이냐'고 역정을 냈다. 김 할머니 집 주변엔 소위 '천호동 텍사스촌'이라 불리는 집창촌이 있었기 때문이다.
서울시 강동구 천호동 423번지는 한 때 500~1000여 명의 여성이 성매매에 종사하던 집창촌이다.
수십 년간 재개발이 없었던 천호2구역은 여전히 기름보일러와 연탄난로를 쓸 정도로 낙후됐다. 주민들은 집창촌 인근에서 인권유린이 많이 일어나다 보니 자녀 교육 등에도 어려움이 많았다고 고충을 털어놨다.
김 할머니는 "처음엔 집창촌인지도 몰랐다. 살다 보니 알게 됐는데 여기서 성매매만 일어나는 게 아니더라"라며 "어린 아가씨들이 강제로 팔려와 몸으로 일해도 빚을 갚지 못한다. 브로커와 조폭, 사채 등 온갖 범죄가 뒤엉켜있다더라"고 말했다.
할머니는 "40년째 살고 있지만 아직도 밤 5시가 넘으면 집 밖에 잘 나가지 않는다"며 "올해 서른 살이 된 아들과도 집창촌이 있는 쪽으론 한 번도 가본 적이 없다. 같이 시장에 갈 땐 늘 뒷길로 돌아가는데 아들이 속으론 어떻게 생각했을까 마음 아픈 적도 있다"고 전했다.
천호 2구역 일대엔 30년 이상 거주하고 있는 중장년층이 대다수다. 이들 중 황영남 할아버지(가명)는 6.25 전쟁이 일어난 1950년부터 약 70년간 천호동에서 살며 일생을 보냈다.
황 할아버지는 "한 20년 전엔 밤만 되면 성매매하러 온 남성들로 택시가 줄 설 정도로 집창촌이 번성했었다"며 "친척이 집에 오면 민망스러웠던 적이 한 두 번이 아니다. 주위 사람들에게 천호동 산다고 말하지 못한 적도 많았다"고 떠올렸다.
그는 "최근에도 두 명이 숨지는 사고가 일어나 안타까웠지만 빠져나갈 방법이 없다며 자포자기하는 젊은 아가씨들 참 많이 봤다"며 "집창촌에서 자의로 일하는 아가씨들을 많이 못 봤다. 집창촌은 인권유린을 비롯해 온갖 범죄가 일어나는 곳인 만큼 빨리 철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천호2구역 일대는 현재 철거 중으로 이르면 2023년 뉴타운이 들어설 예정이다. 집창촌과 노후된 시장, 주택을 재정비해 열악한 환경을 개선하고자 하는 것이다.
천호동에 거주하며 공인중개사로 10여 년간 일해온 박혜숙 씨(가명)에 따르면 천호2구역 일대는 집창촌 이미지 탓에 부동산 거래조차 되지 않는다고 한다.
박 씨는 "천호2구역은 역에서 걸어서 5분밖에 안 걸릴 정도로 위치가 좋지만 집창촌 이미지 탓에 부동산 계약을 기피한다"며 "집창촌이 차지하고 있는 면적이 작지 않다. 대다수의 성매매 업소가 빠져나가며 빈 건물만 남았는데 재개발을 통해 이미지를 바뀌어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솔직히 말해 술집이나 해장국집같이 집창촌으로 인해 형성된 상권도 있었다"며 "집창촌을 철거하면 어떤 이는 설 자리를 잃게 될 수도 있다. 하지만 크게 봤을 때 집창촌이 철거돼야 이 지역이 살 수 있다고 본다"고 덧붙였다.
한편, 이와 관련해 강동구청 관계자는 "열악한 환경과 부정적인 이미지로 인해 주민들이 그간 고충이 많으셨다"며 "내년 3월부터 철거가 시작되고 2022년~2023년쯤 뉴타운이 들어서면서 천호동은 새로운 모습으로 거듭나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banaffle@fnnews.com 윤홍집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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