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14곳뿐 "자리 없다, 치료소관 달라" 거절 일쑤
강제입원 조건 개정에도 낮은 수용률로 실효성 의문
(서울=뉴스1) 유경선 기자 = 정신질환자들의 정신건강을 위해 힘쓰던 고(故) 임세원 강북삼성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47)가 자신이 담당하던 환자에 의해 안타깝게 생을 마감한 사건이 발생한 가운데, 현장에서는 타인에게 해를 끼칠 우려가 있는 정신질환자가 발견돼도 입원조치에 어려움이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현재 서울시에서 경찰이 정신질환자를 인계한 후 입원시킬 수 있는 병원은 모두 14곳이다. 경찰과 업무협약(MOU)을 맺은 곳들이다. 정신질환자가 보호자 없이 발견돼서 신고가 들어왔을 경우에 경찰이 이 14곳 중 한 곳의 병원으로 환자와 동행한다.
앞서 지난 2017년에는 정신질환자를 입원시킬 수 있는 요건이 한 차례 강화된 바 있다.
◇정신질환자 강제입원 요건 2017년 강화…"국제기준 맞춘 결정"
헌법재판소는 지난 2016년 9월 보호의무자 2명과 전문의 1명의 동의 하에 정신질환자를 보호입원시킬 수 있게 하는 정신보건법 제24조 조항에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다. 환자의 동의 없이 그를 입원시키는 것이 신체상 자유 등을 침해하므로 '침해의 최소성' 원칙에 맞지 않는다는 것이 근거였다.
이에 따라 2017년 5월부터 시행된 '정신건강증진 및 정신질환자 복지서비스 지원에 관한 법률(정신건강복지법)'은 입원 요건을 강화했다. 입원에 동의하는 전문의의 수를 1명에서 2명으로 늘렸고, 2명은 서로 다른 의료기관에 소속된 전문의여야 한다는 내용이 새로 생겼다.
유엔 인권위원회는 전 세계적으로 정신병과 관련된 강제적 입원은 완전히 없어져야 한다고 밝힌 바 있다. 2014년 9월에는 유엔 장애인권리위원회가 '모든 국민은 신체의 자유를 갖는다'는 대한민국 헌법 제12조를 준수하라고 권고하기도 했다.
정신질환자 입원 요건을 강화한 결정은 자칫 환자의 기본권이 침해될 우려가 있었던 기존 입원 절차에 신중함을 더했다는 점에서 평가받을 만하다. 2016년 말 기준으로 국내 정신병원 입원환자 6만9000여명 중 강제입원된 환자가 67%에 달했다는 조사 결과도 있다.
미국·영국과 독일·프랑스 등에서는 정신질환자 입원 결정 과정에 전문의 외에 법원도 개입한다. 여기에는 환자의 인권을 정신질환증세보다 가벼이 여길 수 없다는 의식이 깔려 있다.
복지부 관계자는 "법 개정 후 초기에는 절차상 복잡함이 배가돼 의료계에서 불편하고 힘들다는 목소리가 많았지만, 이제는 제도가 안착된 편"이라며 "환자의 인권도 이전에 비해 실질적으로 증진됐다"고 말했다.
◇"정신질환자 입원 수용률 떨어져…병원 여러곳 전전하기도"
정신질환자의 인권이 침해될 소지가 이전에 비해 줄기는 했지만, 그전에 정신질환자 입원을 수용해주는 병원이 적다는 문제가 현장에서 지적된다.
서울시에는 경찰이 정신질환자 입원을 요청할 수 있는 14곳의 병원이 있지만 병동에 입원이 가능한 자리가 남아 있지 않거나, 정신질환자가 가벼운 찰과상만 입어도 '치료 소관이 다르다'며 입원 수용을 거절하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서울시내 한 파출소 A경위는 "파출소 위치상 주변에 정신질환자가 많은데, 자해를 하거나 타인에 위해를 가할 우려가 있다고 판단되는 경우에는 일단 정신병원으로 데려가야 한다"며 "입원 요건이 강화된 이후 입원 가능 여부를 판단하기까지 시간이 더 많이 걸리는데, 입원이 거절되기라도 하면 정말 난감하다"고 토로했다.
A경위는 또 "입원 가능한 폐쇄병동을 갖춘 병원이 서울에 많지도 않은 데다, 빈 자리가 있는 병동이 있어도 엄청나게 먼 거리를 가야 하는 일이 일쑤"라면서 "종로구나 중구 같은 서울 중심부에서 한 시간 거리인 중랑구나 은평구를 가야 하는 일도 다반사"라고 호소했다.
서울시내 또 다른 지구대 B경위도 "자신이나 타인을 위협할 소지가 있는 정신질환자가 발견되면 주로 은평구에 있는 병원을 찾아가는데, 먼 거리를 찾아가도 아주 까다롭게 환자를 받는다"며 "법 개정 전후로 특별히 달라진 걸 느끼지 못할 정도로 환자를 잘 받아주지 않는다"고 말했다.
B경위는 "은평구 병원에서 환자를 받아주지 않은 경우 차선책으로 동작구나 중랑구에 있는 병원으로 환자를 데리고 가기도 한다"며 "이런 경우 근무시간 3시간이 훌쩍 지나버려 관할 순찰을 인근 지구대·파출소에서 지원받기도 한다"고 털어놨다.
한편 경찰은 자해나 타인에 대한 상해 등 우려가 있어 보이는 정신질환자에만 입원조치 결정을 할 수 있다는 기존 매뉴얼을 개정했다. 앞으로 경찰은 과거 형사처벌 이력이나 치료 중단 여부까지 참고해 정신질환자 입원 결정을 할 수 있게 됐지만 입원 수용률이 낮은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현장에서의 어려움은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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