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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 세계은행 총재 사임, 서방-신흥시장 갈등 재점화

박종원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9.01.08 15:43

수정 2019.08.25 14:13

세계은행의 김용 총재가 임기를 3년 가까이 남기고 갑자기 사의를 표하면서 수장의 국적 논란이 다시 불붙을 예정이다. 신흥시장 회원국들이 더 이상 '미국인'이 이끄는 불공정한 국제기구를 용납할 수 없다고 주장하는 가운데 '미국제일주의'를 앞세우며 국제기구를 폄하했던 도널드 트럼프 미 정부가 어떤 후계자를 지명할 지 세계의 이목이 쏠리고 있다.

지난 2012년 버락 오바마 정부 시절 세계은행 총재에 지명됐던 김 총재는 1일(현지시간) 성명을 내고 다음달 1일자로 자리에서 물러나겠다고 밝혔다. 그는 직원들에게 보낸 e메일에 "예상치 못하게 민간 영역에 합류할 기회가 왔으며 나는 이 길이 기후변화나 신흥시장의 사회기반시설 부족 등 주요 국제 문제에 더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방법이라고 판단했다"고 적었다. 그는 이날 오전 이사회에서 사임 의사를 밝혔다. 김 총재는 사회기반시설에 투자하는 민간 기업에 입사할 예정이다.
세계은행은 크리스탈리나 게오르기에바 최고경영자(CEO)가 다음 달부터 총재 대행을 맡는다고 발표했다.

김 총재는 서울에서 태아나 5세에 가족을 따라 미국으로 이민을 떠났다. 그는 하버드대학에서 의학 및 인류학 박사 학위를 받았고 세계보건기구(WHO) 에이즈 부문 국장을 지냈으며 2009년에 미 다트머스대학 총장을 역임했다. 그는 트럼프 정부 출범 이후 연임에 성공해 2021년에 퇴임할 예정이었다. 블룸버그통신 등 현지 언론들은 김 총재가 국제기구를 싫어하던 트럼프 정부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130억달러(약 14조6016억원) 규모의 자본 증자에 성공하는 업적을 이뤘다고 평가했다.

그가 갑자기 사임한 이유에 대해 BBC 등 일부 언론들은 김 총재가 중국에 대출을 늘리고 석탄 발전에 대한 지원을 줄여 트럼프 정부와 마찰을 빚었다고 강조했다. 이에 영국 가디언 등 다른 언론들은 내부 관계자를 인용해 김 총재가 개인적인 결정으로 사임했으며 외압에 의해 물러난 것은 아니라고 전했다.

문제는 후임이다. 지난 1946년부터 업무를 시작한 세계은행은 각국 경제에 투자해 생활수준 향상을 꾀했으나 사실상 최대주주인 미국의 입김을 피할 수 없었다. 현재 미 재무부는 세계은행 투표권의 약 16%를 차지하고 있으며 설립 이후 지금까지 모든 총재는 미국인이었다. 김 총재가 처음 선임됐던 2012년에도 콜롬비아와 나이지리아 후보가 김 총재와 경합했으나 밀려났다.

라구람 라잔 전 인도 중앙은행 총재는 블룸버그통신을 통해 세계은행과 마찬가지로 유럽인들이 수장을 이어받는 국제통화기금(IMF)을 언급하면서 "만약 이런 기구들이 나머지 세계를 위해 기여하도록 만들어진 것이라면 미국과 유럽이 각 기구의 수장을 독점하는 행위를 끝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반면 갑작스레 총재 지명에 나서야 하는 트럼프 정부는 중국에 유화적인 세계무역기구(WTO) 탈퇴를 주장하며 노골적으로 미국편을 드는 국제기구를 원하고 있다.
이에 월스트리트저널(WSJ)은 트럼프 정부가 서방이 독점하는 현 체제와 싸우려는 많은 다른 회원국들과 단체들에게 충격적인 결정을 내릴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pjw@fnnews.com 박종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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