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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대석 서울대병원 교수 "의료집착에 빠진 한국사회, 연명치료보다 의미있는 마무리 도와줘야"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9.01.09 18:47

수정 2019.01.09 18:47

‘바람직한 임종’ 덕형포럼 강연
허대석 서울대병원 교수 "의료집착에 빠진 한국사회, 연명치료보다 의미있는 마무리 도와줘야"

"의료 본질은 환자의 마지막 임종도 편하게 모시는 것인데 그런 경우는 거의 없다. 가족들이 포기를 못해서다. 우리는 의료집착이란 사회현상에 빠져 있다."

국내에서 웰다잉(well-dying) 전문가로 꼽히는 허대석 서울대병원 혈액종양내과 교수(사진)는 단순한 수명연장이 우리 삶에 어떤 의미가 있는지를 지적했다.

수많은 말기암 환자들의 임종을 지켜본 허 교수는 '바람직한 임종이란 무엇인가'라는 화두를 던지며 단순히 의료기기로 연명치료를 이어가기보다 인생의 마무리를 의미있게 채울 방법을 고민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허 교수는 9일 경남중·고 재경동창회 조찬모임인 덕형포럼이 서울 을지로 롯데호텔에서 가진 조찬모임에서 '품격있는 삶의 마무리와 연명의료'라는 주제로 이 같은 내용의 강연을 펼쳤다.

허 교수는 죽음에 대한 우리나라의 사회적 문화와 제도적 문제가 바람직한 임종을 찾지 못하게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허 교수는 "부고 기사만 봐도 죽음의 주체가 환자인지 가족인지 알 수가 없다"며 "원래는 의사가 환자에게 (연명치료 여부 등을) 통보하고 자기가 결정하는 게 맞는 것이나 실제 병원에선 가족에게 얘기한다"고 말했다.

이어 "그러면 가족은 환자와 대화를 하지 않는다. 환자가 있어도 가족들은 겉돌다가 환자가 돌아가시기 2~3일 전에 급하게 움직이고 결국 대리결정한다"며 "그러다 보면 연명의료를 하고 1년에 최소한 3만~5만명이 그렇게 돌아가신다"고 설명했다.

의료진 입장에선 방어진료를 하고, 가족들 어느 누구도 쉽게 환자의 인공호흡기를 바로 끊어달라고 말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아울러 중환자실 진료비의 경우 정부에서 본인부담을 최소화하려 하고 있어 의료진이나 가족들 모두 말기암 환자를 집이 아닌 중환자실로 보내는 것이 일상화됐다는 지적이다.

허 교수는 "우리나라 평균수명이 80을 넘어섰지만 이러한 연장은 활동을 못하는 시간으로, 되레 힘든시간만 연장될 수 있다"며 "죽음이란 것도 본래는 자연현상인데 부정적으로 바라보면 불행이 시작된다"고 말했다.

주요 말기암 환자들과의 상담사례를 전한 허 교수는 일상생활의 귀중함을 느끼면서 미래의 남은 시간을 의미있게 보내는 문화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40대 여성 유방암 말기 환자는 마지막에 하고 싶은 것으로 집에 가서 설거지를 하고 싶다 했다"며 "흔히들 남은 시간을 거창하게 보내려 하기보다 일상적인 일을 더 이상 하지 못하게 된 것에 아쉬움을 표한다"고 말했다.

이어 "말기암 판정을 받으면 일부는 억지로 연장하려 하기보다 수용하고 남은 시간을 의미있게 보내려 노력한다"며 "연명치료에 집착하면 중환자실에서 보내는 절대시간은 연장되겠지만, 하루가 1년 같게 만들면 좋은 추억으로 남은 한정된 시간을 좋게 마무리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끝으로 허 교수는 "마무리를 잘 하셔야 (인생) 전체가 잘 완성이 된다"며 "마지막 해가 지는 모습도 얼마나 의미를 부여하느냐에 따라 컬러풀해질 수 있다. 미세먼지로 뿌연 하늘에서 해가 지는 모습을 보는 게 우리들의 상황"이라고 묘사했다.

hjkim01@fnnews.com 김학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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