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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의도에서] 제로페이를 위한 변명

안승현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9.01.14 17:39

수정 2019.01.14 17:39

[여의도에서] 제로페이를 위한 변명

시장경제의 기본원리는 모든 결정 권한을 시장의 자율적인 조정능력에 맡겨두는 데서 출발한다.

그런데 대다수의 시장경제 시스템들은 한편에서 정부의 개입을 허용한다. 시장이 실패할 경우나, 공정한 경쟁, 혹은 거래가 이뤄지지 않을 때 이를 바로잡기 위해서다.

시장경제가 정부로부터 얼마나 자유로워야 하는가, 정부가 시장에 개입하는 것이 과연 옳은 일인가는 오래전 서구에서부터 시작된 해묵은 논쟁이다. 여전히 정답은 나오지 않았지만 최근의 흐름을 보면 현재 우리 사회가 어떤 답을 원하고 있는지는 좀 더 분명해진다.

지금 한국 사회는 높낮이가 큰 계단으로 이뤄졌다.
계층 간 격차가 심각하고 그 높낮이가 사회적 갈등의 뿌리가 된다. 정부가 얘기하는 소득격차 해소나, 청년 복지증대는 시장의 경쟁구도를 하향평준화시키자는 게 아니다. 적어도 출발선 정도는 나란히 놓고 시작하자는 최소한의 보완책이다.

우리 나라에서 정부가 가장 많이 개입하는 시장 중 하나는 아마 금융산업일 것이다. 오죽하면 금융에만 '관치금융'이라는 유행어가 있을 정도다. 요컨대 정부가 은행이나 카드사, 보험사에 감 놔라 배 놔라 잔소릴 하며 금융사들의 경영을 통제한다는 것인데, 말만 듣고 보면 바람직해 보이지는 않는다.

그러나 조금만 껍질을 벗기고 들여다보자. 지금도 시중에 깔려 있는 가계대출이 800조원이 넘는다. 주위를 둘러보면 10명 중 서너명 이상이 크든 작든 1, 2금융권이나 여신금융에 빚을 지고 있는 상태다. 금융사들이 철저히 자신들의 이익을 우선시하도록 자율에 맡겨놓는다면 이들의 삶이 얼마나 팍팍해지겠는가.

지난해 12월 20일 서울시가 주도하는 '제로페이'가 시범서비스를 시작했다. 이제 세상에 빛을 본 지 영업일수 기준으로 보름 남짓 된 이 신생아를 놓고 요즘 말들이 많다. 아직 정식 서비스를 시작도 하지 않았는데 초기 가맹점이 적다거나, 실효성 부족, 정부의 과도한 시장개입 등등 비판의 화살이 곳곳에서 날아든다.

소상공인과 구매자가 계좌이체로 직거래를 하고, 그 대신 수수료를 받지 않는다는 이 결제시스템이 눈에 가시처럼 걸리는 사람들이 많은 모양이다.

금융사들 시각에서 제로페이는 존재해서는 안되는 시스템이다. 시장에서 비판이 나온다는 것은 누군가 경쟁심을 느끼고 있다는 말이기도 하다. 아마도 결제시장의 패권을 장악하고 있는 여신사들이 그중 제일 앞줄에 있을 것이다.

관치 논란에 대해 한 가지만 짚고 넘어가자. 그간 금융권에서 서민들을 위해 내놨던 대부분의 정책들은 모두 관치의 힘에서 비롯됐다. 소위 돈이 안되는 상품들을 자발적으로 내놓을 만큼 금융사들은 감성적이지 않다. 관치는 때로 실패도 하고 문제도 일으키지만 반대편에서는 또 누군가에게 삶의 동아줄이 되기도 한다.

소상공인들의 어려움은 이미 심각한 수준이다. 누군가는 방법을 고민해야 하고 무엇이라도 해야 할 때다. 물론 서울시가 제로페이를 본궤도에 올려놓기 위해서는 풀어야 할 과제도 많다. 사용자들을 제로페이에 끌어오기 위한 결정적인 묘책은 아직도 계속 고민해야 할 문제다.
필요하다면 '여신전문금융업법'을 바꿔서라도 정책이 제 힘을 발휘할 수 있도록 밀어붙이는 뚝심도 있어야 한다.

정책은 항상 실패와 성공 사이 외줄타기다.
한달도 안된 제로페이를 놓고 이를 논하기에는 아직 너무 이르다. 최소한 호적에 잉크 마를 정도 시간은 줄 수 있는 것이 아닌가.

ahnman@fnnews.com 안승현 정책사회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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