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계상이 맡은 조선어학회 대표 류정환은 한글학자 최현배 등을 염두에 둔 인물이라고 봐도 틀리지 않다. '택시운전사'의 시나리오를 쓰기도 했던 엄유나 감독은 "조선어학회 사건을 다룬 다큐멘터리를 보고 영화 제작을 결심했다"고 말했다. 조선어학회 사건은 일제가 1942년부터 1944년까지 우리말사전 제작에 참여했던 국어학자 등을 잡아들인 사건으로, 모두 33명이 재판에 회부돼 옥고를 치렀다. 이 중 이윤재, 한징은 옥중에서 사망했고 김윤경, 이극로, 이희승, 최현배, 장지영 등은 1945년 광복 이후에야 풀려났다. 죄목은 치안유지법상 내란죄였다.
영화에서처럼 사전 원고뭉치(말모이)가 기적적으로 발견된 것은 역사적 사실이다. 광복 직후인 1945년 9월 8일 서울역 창고에서 낡은 상자 하나가 나왔는데, 그 안에서 2만6000여쪽에 달하는 말모이가 발견됐다. 영화 속 이야기처럼 조선어학회 멤버 중 한 명이 죽음과 맞바꾸며 그 원고를 꼭꼭 숨겨놓았던 것인지도 모른다. 그 덕에 총 6권 분량의 '큰사전'이 1957년 완간됐다.
영화 마지막에 등장하는 낡은 원고뭉치의 실물을 직접 볼 수 있는 전시회도 열리고 있다. 국립한글박물관이 오는 3월 3일까지 여는 '사전의 재발견'전이다. 여기에는 서울역 창고에서 발견된 말모이와 이를 바탕으로 만든 '큰사전' 등이 전시돼 있다. 깨알 같은 글씨체로 쓰여 있는 낡은 원고뭉치를 보면서 감수성 예민한 몇몇 관객은 왈칵 눈물을 쏟을지도 모른다.
jsm64@fnnews.com 정순민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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