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강남시선

[윤중로] 스튜어드십 코드의 올바른 활용법

윤경현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9.01.20 16:49

수정 2019.01.20 16:49

[윤중로] 스튜어드십 코드의 올바른 활용법

요즘 자본시장에서 가장 관심이 뜨거운 단어 중 하나가 '스튜어드십 코드(Stewardship Code)'다. 우리말로는 '기관투자자의 의결권 지침' 내지는 '수탁자 책임원칙'이라고 한다. 기관투자자가 집안일을 맡은 '집사(steward)'처럼 주인(고객)의 재산을 잘 관리하도록 만든 것이다. 여기에는 기업의 의사결정에 적극적으로 참여해 주주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고, 위탁받은 자금의 주인(고객)에게 이를 투명하게 보고하는 내용도 포함돼 있다. 지난 2010년 영국이 제일 먼저 도입했다.

자본시장의 '큰손'인 국민연금이 한진칼과 대한항공에 적극적인 주주권 행사를 추진하면서 스튜어드십 코드가 다시금 주목을 받고 있다.
국민연금이 스튜어드십 코드를 이행하는 첫 번째 사례다. 앞서 국민연금은 지난해 6월 한진칼과 대한항공 경영진 일가의 잇따른 일탈행위에 대해 공개서한을 보냈고, 같은 달 경영진과 비공개 면담을 하기도 했다. 그 결과는 만족스럽지 못했고, 국민연금은 결국 칼을 꺼내 들었다.

국민연금은 이참에 가이드라인을 만들고 나섰다. 우선 부당지원, 경영진 일가의 사익편취, 횡령, 배임, 과도한 임원부수 한도 등 중점관리사항별로 대상기업을 선정한다. 이들을 상대로 비공개 대화를 한 다음 개선의 여지가 없다고 판단되면 공개서한 발송, 임원 해임·직무정지, 합병·분할 등 단계별로 압박 수위를 높여갈 방침이다.

국민연금은 사주의 갑질 등으로 사회적 파장을 낳은 기업에 대해서도 주주권을 행사키로 했다. 사회책임투자(ESG)에서 책임을 다하지 않는, 이른 바 '착하지 않은 기업'이 대상이다. 경영사안이 아닌, 사회문제로 기업가치를 훼손할 우려가 있는 기업에 주주권을 행사하겠다고 밝힌 셈이다.

일각에서는 여전히 '연금 사회주의'에 대한 우려를 제기한다. 스튜어드십 코드가 정부의 '대기업 길들이기'를 위한 경영간섭에 악용될 소지가 있다는 것이다. 국민연금이 5% 이상 지분을 가진 기업은 약 300개, 10% 넘게 보유한 기업은 100개에 육박한다. 스튜어드십 코드의 가장 중요한 목표는 투자한 기업의 가치가 떨어지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당연히 기관투자자들은 경제논리에 따라야지 정치논리에 휘둘려서는 안 된다.

이번 국민연금의 주주권 행사는 사실상 스튜어드십 코드의 첫 단추다. 잘 끼워야 한다. 자칫 잘못하면 스튜어드십 코드가 제대로 실행되기도 전에 신뢰를 잃고 좌초할 수도 있다. 그만큼 국민연금의 신중한 판단이 요구된다. '스튜어드십 코드 도입 목적을 제대로 달성하지 못했다'는 영국 등에 대한 평가를 곱씹어볼 필요가 있다.

기업들도 달라져야 한다. 사실 기업 스스로 기관투자자들의 주주권 행사를 자초한 측면도 크다.
이제는 '주주들의 이익을 지켜달라'는 투자자의 목소리에 응답할 차례다. 스튜어드십 코드가 기업 지배구조 개선, 책임경영 등 우리 자본시장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시키는 방향으로 쓰이기를 기대한다.
그래서 "일본은 기관투자자의 활발한 주주활동으로 증시를 20년 박스권에서 탈피시켰다"는 금융당국의 주장이 현실이 되기를 바란다.

blue73@fnnews.com 윤경현 증권부장

fnSurve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