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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업계·이용자 울리는 핵(Hack)'...구매 시도해 봤더니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9.01.29 13:00

수정 2019.01.29 20:48

부정 게임 조작 프로그램 '핵(Hack)' 형사처벌 이어지지만
해외 기반 사이트 일망타진 쉽지 않아
직접 구매해보니‥체계적 홍보·판매로 쇼핑몰 방불케
#.기자는 '게이머'다. 서른이 넘은 나이에도 오버워치나 배틀그라운드 같은 '요즘 게임'을 즐긴다. 꽤나 열심히 하는 편이라 평균 이상 계급(이라고 기자는 자부한다)인 '플래티넘' 계급을 유지하고, '치킨(배틀그라운드에서의 우승을 뜻함)'도 종종 뜯는다. 그러나 게임에 대한 열정에 찬물을 끼얹을 때가 있다. 바로 불법 게임 조작 프로그램, 일명 '핵(Hack)'을 만났을 때다.

이 프로그램으로 게임을 해킹할 수 있으며 손쉽게 상대방을 이길 수도 있다.

문제는 핵 프로그램 구매가 마치 편의점에서 삼각김밥 사듯 쉽다는 점에 있다. 이같은 핵 프로그램 유통의 심각성을 짚어보기 위해 기자가 직접 핵 구매 과정을 체험해 봤다.
핵 프로그램 판매 사이트 메인 페이지. 포털사이트에서의 간단한 검색만으로도 쉽게 찾을 수 있다. 가입절차 역시 '초간편'이다. 이들 판매 사이트들은 대부분 해킹한 SNS아이디나 유튜브 동영상 등을 통해 홍보를 진행 중이다. / 사진=핵 프로그램 판매 사이트 캡쳐
핵 프로그램 판매 사이트 메인 페이지. 포털사이트에서의 간단한 검색만으로도 쉽게 찾을 수 있다. 가입절차 역시 '초간편'이다. 이들 판매 사이트들은 대부분 해킹한 SNS아이디나 유튜브 동영상 등을 통해 홍보를 진행 중이다. / 사진=핵 프로그램 판매 사이트 캡쳐
■핵 구매‥'이렇게 쉬울 수가'
직접 체험해 본 핵 구매는 그야말로 '초간편·초고속'으로 진행됐다.

핵 유통 사이트를 찾는 일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당장 네이버 등 포털사이트에 '오버워치 핵', '배틀그라운드 핵'을 검색하니 구매 사이트로 접속할 수 있는 링크가 수없이 나타났다. 유통업자들은 해킹을 통해 확보한 타인의 SNS( 소셜네트워크서비스)계정을 통해 유입자를 확보한다. 한 핵 유통 사이트의 경우 하루 방문자 수만 2만명을 웃돈다.

핵 판매 사이트를 홍보하고 있는 트위터 계정. 최근까지만 해도 가족사진 등이 올라오던 일반 SNS계정이었지만 어느 순간 이후부터 핵 판매 사이트 홍보 게시판으로 전락했다. / 사진=트위터 캡쳐
핵 판매 사이트를 홍보하고 있는 트위터 계정. 최근까지만 해도 가족사진 등이 올라오던 일반 SNS계정이었지만 어느 순간 이후부터 핵 판매 사이트 홍보 게시판으로 전락했다. / 사진=트위터 캡쳐
한 사이트에 접속해 보니 '디싱크', '스카이' 등 처음 보는 이들은 그 뜻을 알기조차 어려운 이름의 다양한 핵들이 즐비했다. 가격 역시 한달 이용 기준 10만원 대에서부터 30만원까지 천차만별이었다.

"처음 구매한다"며 이것저것 문의를 했더니 마치 쇼핑몰 직원들 마냥 친절하게 프로그램을 추천, 구매를 종용하기도 했다. 사이트를 통해 현금을 충전한 뒤 결제하는 방식이라 간편한 것은 물론, 거래내역 조회 등에서 자유롭기까지 했다.

사용 후기 게시판엔 이용자들의 '핵 찬양'이 가득했다. 이들은 자신들이 사용하는 프로그램이 게임 산업을 저해시키는 것은 물론, 법적 처벌까지 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마치 모르는 듯했다.

핵 판매 사이트의 후기 게시판. 핵 프로그램 이용자들의 칭찬이 끊이질 않는다. 자신들이 불법행위를 저지르고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하는 듯하다. / 사진=핵 프로그램 판매 사이트 캡쳐
핵 판매 사이트의 후기 게시판. 핵 프로그램 이용자들의 칭찬이 끊이질 않는다. 자신들이 불법행위를 저지르고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하는 듯하다. / 사진=핵 프로그램 판매 사이트 캡쳐

기자가 핵 구매 의사를 밝히자 핵 판매업자들이 게시판을 통해 친절히 설명에 나서고 있다. / 사진=핵 프로그램 판매 사이트 캡쳐
기자가 핵 구매 의사를 밝히자 핵 판매업자들이 게시판을 통해 친절히 설명에 나서고 있다. / 사진=핵 프로그램 판매 사이트 캡쳐
■'핵' 유통 민·형사 소송 잇따라
그나마 다행인 것은 인기 게임 핵을 유통한 업자들에 대한 법적 처벌이 본격화하고 있다는 점이다.

29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중앙지법 형사7단독 홍기찬 부장판사는 최근 블리자드의 FPS(1인칭 슈팅게임) 게임 '오버워치'의 핵 프로그램을 유통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이모씨에게 400만원의 벌금형을 선고했다.

이씨는 123회에 걸쳐 게임 내 캐릭터의 조준력을 향상시켜주는 핵 프로그램을 판매, 총 454만원을 챙긴 것으로 전해졌다. 이씨는 유튜브와 카카오톡 등을 이용해 구매자와 접촉, 핵을 유통했다.

재판부는 "핵 프로그램 배포를 통해 게임 산업의 발전을 저해하고 유통질서를 훼손했다"며 "이씨가 게임물의 정상적인 운영을 방해할 목적이 있었다고 인정된다"고 설명했다.

현재 게임업계는 업무방해·손해배상을 골자로 한 대규모 민사소송도 준비·진행 중이다. 배틀그라운드의 경우 지난해 1월 320만명을 넘었던 동시 접속자 수가 핵 프로그램 이용자 증가로 인해 지난해 말 89만명까지 줄었다. 무려 70% 이상 감소한 셈이다.

배틀그라운드 제작사 펍지주식회사 관계자는 "수사 및 소송 준비를 위해 자세한 내용은 밝힐 수 없지만 현재 손해배상 청구소송 등 민사소송 여러 건을 준비·진행하고 있다"고 했다.

■일망타진 한계, 처벌 수위 높여야
이같은 법적 제재에도 게임업계와 수사당국 모두 핵 유통업자 일망타진이 쉽지 않다고 입을 모은다.

펍지주식회사 관계자는 "개설된 핵 유통 사이트를 차단하는 정도로 대응을 하고 있는데 계속 생성을 하는 경우가 많아 대처가 쉽지 않다"며 "사이트 개설자에 대해 수사 요청을 하더라도 곧바로 해결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어려운 문제"라고 하소연했다.

경찰 관계자는 "이런 사이트의 경우 해외에 서버를 두고 운영하는 데다 광고 역시 타인의 계정을 사용하기 때문에 단속이 쉽지 않은 것이 사실"이라며 "시간이 걸리더라도 수사력을 집중해 단속해 나갈 것"이라고 전했다.

이 때문에 처벌 수위를 높이는 방안이 제시되기도 한다. 게임 산업에 정통한 한 법조계 관계자는 "현재 핵 유통업자들은 게임산업진흥법의 적용을 받아 1년 이하의 징역이나 1000만원 이하의 벌금형을 선고받는 경우가 많은데 정보통신망 이용 촉진 및 정보보호에 관한 법률 적용도 가능하다"며 "이 경우 7년 이하의 징역 또는 7000만원 이하의 벌금으로 처벌 수위가 높아져 핵 유통업자 수를 줄이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또 "현재 핵 프로그램 이용자에 대한 처벌 규정은 없지만 지난해 이용자를 처벌하는 내용의 입법제안이 나왔다"며 "상습적인 이용자의 경우 낮은 수위의 처벌이라도 경각심 고취를 위해 적용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jasonchoi@fnnews.com 최재성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