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악산 산양은 왜 법정에 설 수 없나] "인간중심적 사고 벗어나 자연물도 권리 주체로 인정해야"
<중>자연물 인정하는 새 법 필요
야생동물의 '법적 지위' 규정..현행 법령 어디에도 없어
자연물 원고로 한 소송 각하..민법·민사소송법 개정 위해선 국민적 논의와 큰 합의 필요
설악산 산양 28마리 소송을 대리한 변호사들은 국내법과 국제조약을 들어 산양이 원고가 될 수 있다는 의견을 개재했지만 법원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명확한 법 또는 규정이 없다는 이유로 당사자 능력도 인정받지 못했다. 전문가들은 산양 같은 자연물이 소송에서 원고 자격을 얻기 위해선 새로운 법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法 "산양 원고로 받아들일 수 없어"
30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행정법원 행정6부(이성용 부장판사)는 지난 25일 산양 28마리가 문화재청이 설악산에 케이블카를 만들도록 허가한 처분을 취소해 달라고 낸 소송에서 원고의 청구를 각하했다. 각하는 소송을 내는 원고가 절차나 자격을 갖추지 못했을 때 법원이 사안을 심리하지 않고 종결하는 것이다.
동물권리를 연구하는 변호사단체 피앤알(PNR)은 원고인 산양의 소송을 대리하면서 "본 소송은 인간중심적 사고에서 나아가 산양 고유한 이익 침해를 다루고 자연물을 보호 객체가 아닌 권리 주체임을 인정받기 위한 기회"라고 밝혔다.
쟁점은 크게 2가지였다. △국내 특별법 및 국제조약을 근거로 자연물의 당사자 능력을 인정할 수 있는지 △원고 산양을 대신해 후견인이 소송을 대리할 수 있는지 여부다. 당사자 능력은 소송의 주체가 될 수 있는 권리능력을 말한다. 민법에서는 사람과 법인에 대해서만 권리, 의무의 주체가 될 수 있는 지위 즉 권리능력을 인정한다.
피앤알 측은 민법상 자연물의 당사자 능력에 대한 명시적 법 조항이 없더라도 다른 관련법을 통해 산양이 원고가 될 수 있다는 입장이다. 반면 재판부는 당사자 능력을 규정하는 민사소송법에 자연물에 대한 조항이 없고 민법상 후견제도에도 자연물은 해당하지 않는다고 봤다.
재판부는 "야생동물 당사자능력을 인정하는 현행 법령은 없다"며 "원고들이 제시한 야생생물법, 문화재보호법과 국제조약들은 자연물에 대한 국가 또는 국민 보호 책무를 규정할 뿐 이를 통해 당사자 능력이 도출된다고 볼 수 없다"고 판시했다.
이어 "민법상 후견제도는 권리능력은 있으나 질병 장애 등 사무처리 능력이 부족한 사람을 위해 후견인을 선임한다. 원고 산양들은 사람이 아닌 야생동물로서 권리능력이 없다"고 덧붙였다.
■관련법 발의 없어..."법감정 시기상조"
법원은 법을 근거로 판결한다. 때문에 과거 자연물이 원고가 된 소송은 매번 법이 없어 패소했다.
신지형 녹색법률센터 변호사는 "현행법 어디에도 동물 당사자능력을 인정하는 규정은 없다"며 "새로운 입법을 하지 않는 이상 (법원은) 똑같은 결론을 내릴 수밖에 없을 것 같다"고 했다.
현재 자연물 당사자 능력을 명시한 입법 발의는 없다. 다만 이정미 정의당 의원이 대표 발의한 '민법 일부개정법률안'이 있다. 민법상 물건지위에 있는 동물을 인간과 물건이 아닌 제3의 객체로 인정하는 법안이다. 2017년 3월 발의됐지만 국회 본회의에 오르지 못하고 현재까지 계류 중이다.
피앤알 공동대표 박주연 변호사는 민법 개정안에 대해 "동물을 독립된 법적 지위를 가진 존재로 규정을 하면 추후 당사자능력, 권리능력을 별도로 논의할 여지가 있게 된다"며 "하지만 물건과 다른 존재로 규정한다고 해서 바로 자연물에 당사자능력이 생기진 않는다. 자연물 당사자능력을 예외적인 경우에 허용하는 민법이나 민사소송법 개정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입법까지는 넘어야할 산이 높다. 법 개정을 위해서는 국민적 합의가 있어야 하는데, 동물식물이 소송 주체로 나설 수 있다는 생각은 공감대가 떨어지기 때문이다.
서울고법 한 판사는 "국내 법제상 자연물 원고 문제는 너무 어색하다"며 "국민적으로 큰 합의와 논의 없이는 국회도 움직이지 않고 법 없이는 판사들도 전과 같이 판결할 수밖에 없다"고 전했다.
[email protected] 최용준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