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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의나루] 근대사로 보는 한·일관계 해법

안삼수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9.02.14 17:14

수정 2019.02.14 17:14

[여의나루] 근대사로 보는 한·일관계 해법

인간사는 필히 '좋은 일, 나쁜 일'이 함께 생긴다. 국가의 역사에도 '좋은 역사, 나쁜 역사'가 함께 발생한다. 나쁜 역사를 통상 '어두운 역사'(dark history)라고 부른다.

최근 과거사 문제, 초계기 사건 등 경직된 한·일 관계를 염려하는 사람이 많다.

우리 역사상 20세기 초 일본지배 36년이 가장 어두운 역사라는 데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역사에는 항상 원인과 결과가 함께한다.
조선이 일본에 나라를 빼앗기도록 원인을 제공한 19세기 말 조선의 통치자와 지도자들에 대한 통렬한 반성과 함께 우리는 어두운 역사의 교훈을 잊지 말아야 한다. 20세기 초 중국의 사상가인 양계초는 조선의 패망은 조선의 어리석은 지도자들 책임이 크다고 평가했던 말을 흘려듣지 말아야겠다. 19세기 말 한반도의 근대사를 잠시 산책해보자.

사실상 조선의 마지막 군주인 고종은 1864년 12세에 왕위에 올라 1907년 아들 순종에게 왕위를 양위한 무능한 지도자다. 고종 치하 19세기 말 조선의 국제정세는 세계열강의 각축장이다. 일본은 1867년 메이지유신 이후 아시아의 신흥강국으로 성장하면서 조선을 '보호국 또는 식민지국화'하려는 야욕을 갖고 수십년을 꾸준히 준비함에도 당시 조선의 지도자들은 막연한 낙관론으로 우물 안에 빠져 있었다.

당시 세계 최강대국인 영국은 강대국 러시아의 태평양쪽 남진을 저지하기 위해 일본과 동맹을 맺고, 한편으로 러시아의 남진을 저지하기 위해 1885년 남해안 거문도를 2년여간 점령했다. 청나라는 조선에 대한 종주권 유지와 만주지역 통치 강화를 위해 명성황후 등 수구세력과 연합해 일본, 러시아와 대립관계다. 1895년 청일전쟁에서 패배한 후 조선에서 떠났다. 러시아는 1860년 전쟁에 패한 청나라로부터 블라디보스토크 이남 땅을 할양받아 조선과 국경을 접한 이후 남진정책을 적극 추진한다. 중립적인 미국도 필리핀 식민지 인정을 대가로 일본과 밀약을 맺고 조선 식민지지배를 승인하게 된다. 일본은 실질상 1904년 러일전쟁 때부터 무력으로 조선을 지배하게 됐다.

19세기 말 서울 주재 외교관들은 고종을 어리석은 군주로 보는 것이 일반적이다. 개혁정책에 조삼모사 대응, 정실인사, 국제정세 무지 등 역사의 짐을 지기에는 무능한 지도자다.

역사는 일정 주기로 순환한다는 순환론이 있다. 19세기 말과 같이 현재 한반도는 미국, 일본, 중국, 러시아 등 세계 4대 초강대국의 이해가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다.

현재 세력관계는 세계 2위의 군사대국인 중국, 세계 3위 군사대국 러시아, 핵무장국가 북한이 한 축으로 행동하고 있다. 반면 현 정부는 김정은 정권과 평화체제 구축을 서두르는 과정에서 전통적 우방국가와 불균형 외교를 추진한다는 비판이 많다.

우리의 현대사에서 우파세력은 북한 위협의 '북풍론', 좌파세력은 '반미감정, 반일감정'을 정치적으로 악용한다는 여론이 있다. 일본과는 경제, 통상, 안보, 향후 통일문제 등 긴밀한 협력이 필요하다. 지난해 일본을 방문한 한국인이 750만명, 한국을 방문한 일본인은 350만명이다.
정치적 명분과 감정에 얽매여 과거 어두운 역사에만 집착할 것인지, 경제적 실리, 국가안보, 남북통일 등 미래지향적 정책을 할 것인지 냉철하게 생각할 시점이다.

강대국의 말과 행동이 정의인 것이 국제사회의 냉혹한 현실이다.
냉혹한 국제사회에서 우리가 정당한 대우를 받는 길은 우리나라를 부강한 나라로 만들고, 외교를 잘하는 것이다.

'국익 앞에서는 영원한 적도, 영원한 우방도 없다'는 명언을 다시 기억해보자.

윤영선 법무법인 광장 고문·전 관세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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