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사회일반

먹방(Mukbang)·갑질(Gapjil).. '세계 공용어' 된 한글 단어, 이렇게 많아? [소소韓 궁금증]

이혜진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9.02.20 08:19

수정 2019.02.20 08:19

[사진=픽사베이]
[사진=픽사베이]

■먹방(Mukbang) 검색했더니 나온 결과가 글쎄..

요즘 저의 소소한 행복 중 하나는 일과 후 침대에 누워 유튜브 크리에이터들의 먹방을 보는 것입니다. 산더미처럼 쌓인 음식이 하나 둘씩 사라져가는 마법은 참으로 놀랍습니다. 일상적으로 먹는 음식에서 만들어지는, 귀를 간질이는 다채로운 소리들이 신기하기도 합니다. 얼마 전, 여느때처럼 유튜브에서 먹방을 보던 중 흥미로운 사실을 알게 됐습니다.

기존에 구독하던 것과는 다른 채널을 찾고 싶었던 저는 검색창에 '먹방'이라는 단어를 넣은 후 조회수 순으로 정렬해봤습니다. 그러다 순위권에서 뜻밖의 영상을 발견했습니다.
바로 누가 봐도 낯선 언어로 가득찬, 외국인 크리에이터의 영상이었습니다. 내친김에 'Mukbang'이라는 영어단어로도 검색해봤습니다. 마찬가지로 해외 크리에이터들의 영상이 결과로 등장했습니다. 덕분에 생전 볼수 없었던 해외 과자들과 꾸덕꾸덕한 파스타 등을 먹는 외국인들의 먹방을 실컷 보게 됐습니다.

먹방은 '먹는 방송'의 줄임말입니다. 2000년대 말 인터넷 방송에서 시작된 먹방은 지상파 프로그램을 넘어 유튜브까지 점령했습니다. 해외에서는 우리나라를 먹방의 종주국으로 본다는군요. 때문에 Social Eating 혹은 Eating Show라는 영어 단어를 두고도 Mukbang이라고 표현한다고 합니다. 지난해 전세계 유튜브 트렌드를 정리한 영상인 'YouTube Rewind 2018'에는 먹방이라는 단어가 자연스럽게 등장하기도 했습니다.

Mukbang이라는 단어를 사용하는 해외 크리에이터 [사진=유튜브 캡쳐]
Mukbang이라는 단어를 사용하는 해외 크리에이터 [사진=유튜브 캡쳐]

해외 먹방 크리에이터들은 영상 제목에 주로 Mukbang과 먹방을 병기하는데 때로는 먹방이라는 한글 단어만 써넣기도 합니다. 대다수는 한국과 1도 관계 없는 외국인들입니다. 이들은 다양한 음식을 먹지만 유독 우리나라 음식들이 자주 등장합니다. 불닭볶음면은 단골 손님이며 떡볶이, 라면, 삼겹살 등 한국인의 '소울 푸드'도 심심지 않게 볼 수 있습니다. 이쯤 되면 먹방을 신(新) 한류의 주인공으로 봐도 무방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리고 문득 궁금해졌습니다. 먹방처럼 외국어로 대체할수 없는 한글 단어에는 또 뭐가 있을까요? 한번 찾아보기로 했습니다.

■김치, 온돌과 함께 옥스퍼드 사전에 등재된 이 단어는?

옥스포드 영어사전에 등재된 재벌 [사진=옥스포드 영어사전 온라인판 캡쳐]
옥스포드 영어사전에 등재된 재벌 [사진=옥스포드 영어사전 온라인판 캡쳐]

재벌, 여러 기업을 거느리며 막강한 재력과 거대 자본을 가지고 있는 자본가 무리를 뜻합니다. 어떤 이들에게는 동경의 대상이자 또 어떤 이들에게는 공공의 적으로 통하는 존재입니다. 이 '재벌(Chaebol)'이라는 단어가 세계에서 가장 권위있는 사전 중 하나인 옥스퍼드 영어사전'(Oxford English Dictionary)에 등재된 것은 꽤 유명한 이야기입니다.

옥스퍼드 영어사전에 수록된 한국어 단어들은 한글, 김치, 온돌, 태권도, 시조 등입니다. 대부분 한국 고유의 것들을 나타내는 표현입니다. '재벌'은 어쩌다 한국의 전통 음식, 무예와 어깨를 나란히 하게 된 것일까요? 재벌총수 일가가 기업을 거느리는 경영 구조가 우리나라에만 존재하는 독특한 방식이기 때문입니다. 옥스퍼드 사전은 재벌을 "한국의 대기업 형태. 대규모 사업 집단으로 가족 경영을 위주로 함"이라고 소개하고 있습니다.

이와 비슷한 맥락으로 해외에 전파된 단어에는 갑질(Gapjil)이 있습니다. 미국 뉴욕타임스는 지난해 한 재벌 일가의 특권 의식을 보도하며 갑질이라는 단어를 한국어 표현 그대로 소개한 바 있습니다. 뉴욕타임스는 갑질을 '중세시대 영주처럼 임원들이 부하 직원이나 하도급업자를 다루는 행위'라고 설명했습니다. 영국 인디펜던트지에는 갑질과 함께 '개념 없는 중년 남성'을 뜻하는 개저씨(Gaejeossi)라는 단어가 등장하기도 했습니다.

■주모에서 오빠까지, 대체 불가 한글 단어 뭐가 있나 봤더니

[AP=연합뉴스]
[AP=연합뉴스]

다시 유쾌한 얘기로 돌아가볼까요. '주모(Jumo)' 라는 표현이 있습니다. 해외에 진출한 한국인들이 빼어난 활약을 보일 때 흥에 취하기 위해 소환하는 존재입니다. 주로 국내에서만 통용되는 표현이었는데, 어느새 바다 건너 해외 팬들에게까지 이 드립이 전파됐습니다. 손흥민이 골을 넣으면 SNS에서 주모를 외치는 외국인들을 꽤 많이 찾아볼 수 있습니다. 한 외국인은 "주모는 한국 전통 술집의 주인으로, 한국인들이 특별히 기쁘거나 무언가를 축하하고 싶을 때 부른다"고 친절한 설명을 남기기도 했습니다.

한국 식문화에 관심을 가지는 외국인이 늘며 반찬(Banchan)이라는 단어도 널리 사용되고 있습니다. 가짓수가 많고 돈을 더 내지 않아도 리필해주는 반찬은 한식을 처음 접하는 외국인들의 입을 떡 벌어지게 합니다. 양식에서 곁들임 요리를 뜻하는 'Side dish'라는 단어가 있지만, 반찬과는 그 뜻이 미묘하게 다릅니다. 무엇으로도 반찬의 뜻을 대체할 수 없어 그대로 사용하게 된 것입니다.

이 분야의 끝판왕은 케이팝(K-POP)입니다. 한국 아이돌의 인기가 날로 높아지며 해외팬들 사이에 한국 표현이 자연스레 스며드는 사례가 늘고 있습니다. 오빠(Oppa), 언니(Unnie)가 그 대표적인 예입니다. 나이에 따른 서열이 존재하는 한국의 아이돌을 덕질하기 위해 익혀야 할 필수 표현입니다.
이들은 그룹에서 가장 어린 멤버를 부를 때도 'The Youngest Member'가 아닌 막내(Maknae)라는 표현을 사용한다고 합니다. 아이돌이 진행하는 라이브 방송의 댓글창에는 애교(Aegyo)라는 단어도 심심지 않게 등장합니다.
대체할 수 있는 단어가 충분히 있음에도 굳이 한국식 표현을 사용하는 것은 그 나라 고유 언어에만 담겨있는 미묘한 뉘앙스를 제대로 살리기 위해서로 풀이됩니다.

#한국어 #먹방 #주모 #아이돌

sunset@fnnews.com 이혜진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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