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산업일반

화목한 가정 꿈꾸던 두산가(家)의 '큰 어른'

뉴스1

입력 2019.03.04 17:20

수정 2019.03.04 17:20

박용곤 두산그룹 명예회장 © 뉴스1
박용곤 두산그룹 명예회장 © 뉴스1

형제경영 기틀, 부인에게 남다른 애정도
자녀 교육은 철저…"남의 눈칫밥 먹어봐라"

(서울=뉴스1) 박동해 기자 = 두산그룹의 맏형 박용곤 명예회장이 지난 3일 오후 향년 87세의 나이로 별세했다. 고인은 평소 두산그룹의 '큰 어른'으로서 회사의 혁신에도 큰 기여를 했을 뿐만 아니라 두산 특유의 형제경영의 기틀을 잡음으로써 현재의 두산을 만들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6남1녀의 장남인 박 명예회장은 선친이자 두산그룹의 초대회장인 박두병 회장이 강조해온 '형제들 간의 인화'를 중요시했다. '자신의 분수를 지켜야 가정이 화목하다'라는 뜻이 담긴 '수분가화(守分家和)'를 가훈으로 삼기도 했으며 이를 붓글씨로 담아 형제, 자녀들에게 선물하기도 했다.

두산이 강조해온 형제 간의 인화는 '공동 소유, 공동경영'이라는 독특한 두산만의 승계체제로 이어졌다.

박 명예회장의 남자형제들은 막내인 박용욱 이생그룹 회장을 제외하고 두산그룹의 회장을 돌아가면서 맡으며 공동경영 체계를 만들어 냈다.

다만 2005년 발생한 두산그룹의 '형제의난'은 박 명예회장에게 큰 상처였다. 형제의난은 박 명예회장의 동생인 박용오 회장과 셋째인 박용성 회장 간의 경영권 문제로 발생했다. 두산 관계자는 이때 박 명예회장이 심적으로 크게 힘들어 했다고 전했다. 박 명예회장은 동생인 박용오 전 회장이 가족들의 화목을 깼다고 보고 그룹 경영에서 완전히 배제시켰다.

가족의 화목을 중요시한 박 명예회장은 아내 사랑에서도 남달랐다. 박 명예회장은 1960년 부부의 연을 맺은 고(故) 이응숙 여사에게 평생 각별한 사랑을 쏟았다. 특히 이 여사가 암 투병을 할 때는 병실 소파에서 쪽잠을 자며 간병을 하기도 했다. 두산 관계자에 따르면 1996년 이 여사가 결국 투병 끝에 세상을 떠나자 박 명예회장은 며칠간 식음을 전폐하기도 했다. 더불어 재혼 이야기가 몇 차례 나왔지만 박 명예회장은 한사코 이를 거부했다는 후문이다.

다만, 자식들의 교육에 있어서는 "남의 눈칫밥을 먹어봐야 한다"라는 선친의 교육 철학을 엄격하게 적용했다. 다른 재벌들처럼 자신의 회사 안에 두고 온실 속 화초처럼 키우지 않았다.
이런 교육철학에 따라 박 명예회장의 장남인 박정원 두산그룹 회장은 일본의 기린맥주에서, 차남인 박지원 두산중공업 회장은 미국의 맥켄에릭슨에서 근무하며 사회 첫발을 뗐다.

한편, 박 명예회장의 빈소는 5일 오후 2시부터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되며 장례는 가족장으로 치러진다.
발인과 영결식은 7일이며 장지는 경기 광주시 탄벌동 선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