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 엔터테인먼트 산업 위축
연예인 사진·이름 무단 침해돼도 법적 규정 없어 판결 오락가락
주도적 대처 못해 피해 고스란히
소송으로 해결땐 비용 많이 들고 이겨도 보상 없거나 적기 때문에 침해 사실 알고도 그냥 넘어가
연예인 사진·이름 무단 침해돼도 법적 규정 없어 판결 오락가락
주도적 대처 못해 피해 고스란히
소송으로 해결땐 비용 많이 들고 이겨도 보상 없거나 적기 때문에 침해 사실 알고도 그냥 넘어가

한류열풍으로 엔터테인먼트 산업이 급성장하면서 국내외에서 연예인들의 이름과 사진 등 퍼블리시티권이 침해될 여지가 커졌지만 법적 판단은 오락가락이다. 마땅한 법적 보호 장치가 마련돼 있지 않아 피해는 고스란히 엔터테인먼트 종사자들이 지고 있다.
4일 엔터테인먼트 및 법조계에 따르면 하급심의 퍼블리시티권에 대한 엇갈린 판결로 업계 종사자들의 혼란이 지속되고 있다. 일반적으로 연예인이 특정 소속사에 들어갈 경우 '초상·성명 등 퍼블리시티권 사용을 위임한다'는 내용의 전속계약을 체결한다. 그러나 막상 퍼블리시티권 침해가 발생하더라도 명확한 법적 규정이 없어 계약서가 무용지물이 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실제로 A소속사는 배우 B씨와의 계약서에 퍼블리시티권에 관한 내용을 기재했으나 C업체를 상대로 낸 퍼블리시티권 침해 소송에서 이를 인정받지 못했다. 1심 재판부는 "미국의 경우와 달리 재산권으로서 퍼블리시티권을 인정할 수 없다"며 지난해 12월 원고 패소 판결했다.
■현행법 한계…기획사는 대응 못 해
한 연예기획사 관계자는 "허가받지 않은 업체들이 연예인 사진으로 상품을 만들거나 인터넷 광고에 이용하는 등 부당이익을 취하는 경우가 잦다"며 "퍼블리시티권을 침해한 사실을 확인해도 소송으로 해결하는 비용을 고려했을 때 보상이 없거나 적기 때문에 그냥 알고도 넘어간다"고 말했다. 퍼블리시티권 소송이 '모 아니면 도'식으로 하급심 판결로 관련 업계에서는 '차라리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대응하는 것이 낫다'는 반응이다.
법원이 퍼블리시티권을 인정하지 않는 것은 현행 법체계의 한계 때문이다. 판단의 기준이 되는 법률과 대법원 판례가 없어서다.
임상혁 법무법인 세종 변호사는 "대륙법계를 취하는 우리나라에서는 퍼블리시티권에 대해 기존의 헌법과 민법에서 인정하는 '초상권'을 넓게 해석해 '초상영리권'으로 포섭가능하다고 보고 있다"며 "초상영리권으로 해결하는 것은 초상권이 기본적으로 개인의 일신전속권이므로 원칙적으로 양도나 상속이 부정되는 문제가 있다"고 설명했다.
재산권으로서의 퍼블리시티권을 인정받지 못한다면 소속사는 연예인의 사진이나 이름 등이 무단으로 침해되더라도 주도적으로 대처할 수 없다. 초상권과 성명권은 당사자에게만 귀속되기 때문이다.
강진석 법무법인 율원 변호사는 "퍼블리시티권이 명확하게 인정되지 않고 있는 상황에서 연예인·스포츠 스타 등 유명인들의 성명 또는 초상이 당사자의 허락 없이 사용돼도 초상권(인격권)침해로 인한 손해배상청구만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이어 "광고주들이 이를 악용할 경우 정당한 광고계약을 체결하기보다 일단 무단으로 유명인의 초상을 사용하고 광고비에 훨씬 미치지 못하는 손해배상액만을 지급하고 광고의 효과를 것도 가능해 광고계약의 수요가 감소하고 연예인 등 유명인들은 이로 인해 이중의 손해를 입게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퍼블리시티권, 재산권 인정해야"
전문가들은 연습생을 스타로 키워내는 과정에서 막대한 투자를 하는 국내 엔터테인먼트 산업의 특성을 감안해 연예인들의 퍼블리시티권을 재산권으로서 인정해줘야 한다고 조언한다.
김헌식 대중문화 평론가는 "해외와 달리 우리나라의 연예기획사의 경우 데뷔에 이르기까지 발굴·훈련·마케팅 지원 등 전 과정에서 많은 지원을 해주고 있다"며 "투자라는 측면에서 연예인 육성에 상당한 기여를 하고 있음에도 재산권은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거꾸로 미국에서는 아티스트에 대한 연예기획사의 기여가 적지만, 법으로 퍼블리시티권을 인정받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 때문에 해외에서의 한국연예인들에 대한 퍼블리시티권 분쟁이 생겼을 경우 국내보다는 해외법원을 찾아야 할 웃지 못 할 상황도 생길 수 있다.
고정민 홍익대 문화예술경영대학원 교수는 "연예인들의 주 수입원인 퍼블리시티권이 보호받지 못한다면 시장의 성장이 위축될 수 있다"며 "산업발전을 위해 법으로 보호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fnljs@fnnews.com 이진석 최용준 기자
*초상영리권은 초상이 함부로 영리 목적에 이용되지 않을 권리다.
일신전속권은 특정 권리주체만이 향유할 수 있거나 그 주체만이 행사할 수 있는 권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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