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정순민 칼럼] 말에도 품격이 있다

정순민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9.03.06 17:34

수정 2019.03.06 19:49

인터넷은 매일 막말 대잔치
공직자는 자나 깨나 말조심
言品의 진정한 뜻 되새겨야
[정순민 칼럼] 말에도 품격이 있다

무심코 던진 말 한마디에도 그 사람의 됨됨이가 드러나게 마련이다. 자신의 생각과 말을 손쉽게 표출할 수 있는 이른바 'SNS 시대'가 도래하면서 품격과는 거리가 먼 '아무 말 대잔치'를 거의 매일 목도한다. 자고 일어나면 밤사이 사람들이 쏟아낸 막말이 인터넷을 뒤덮고 있는 형국이다. 여기에는 여와 야, 남과 여, 노와 소가 따로 없다.

구화지문(口禍之門)이라는 말이 있다. 입은 재앙을 불러들이는 문이라는 뜻이다.
당나라 말기 재상을 지낸 풍도(882~954)는 '설시(舌詩)'라는 글에서 말의 중요성을 설파했다. 그에 따르면 혀는 자신의 몸을 자르는 칼(舌斬身刀)이다. 하여 입을 닫고 혀를 깊숙이 감추면 몸이 편안하고 곳곳에 웃음이 넘친다(閉口深藏舌 安身處處牢)고 여겼다.

일본을 천하통일한 도쿠가와 이에야스(1543~1616)는 부하들에게 보지도, 듣지도, 말하지도 말라고 일렀다. 그의 무덤이 있는 일본 북서부 작은 도시 닛코에 가면 눈과 귀와 입을 가린 세 원숭이 조각상을 만날 수 있다. 이는 예가 아니면 보지도, 듣지도, 말하지도 말라고 한 공자의 말과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있다. 그러나 보지도 않고, 듣지도 말 것까지야 없지 싶다. 봤더라도, 들었더라도 말하지 않으면 된다.

모름지기 말이란 적으면 적을수록 좋다고 했다. 그래서 옛사람들은 말이 적으면 근심이 없고(寡言無患), 말을 삼가면 허물이 없다(愼言無尤)고 생각했다. 자신의 문집에 '자경(自警)'이라는 글을 남겨 말 많음을 스스로 경계했던 조선 선비 윤기(1741~1826)는 이런 태도를 아름답다고까지 했다. "말을 하려다가도 도로 거둔다면 말을 해야 할 때 말을 하고, 말을 하지 말아야 할 땐 말을 하지 않게 된다. 때에 맞춰 누그러뜨린 뒤에 말하면 허물도 없고 후회도 없을 터이니, 어찌 아름답지 않겠는가."

하지만 사람들은 이런 사실을 깜빡깜빡 잊고 사는 모양이다. 올해 들어서만도 하지 말았으면 더 좋았을 말들을 꽤 많이 들었다. 어떤 분은 나이 드신 분들은 험악한 댓글 달지 말고 동남아로 가라 했고, 또 누구누구는 요즘 20대가 교육을 잘못 받은 것 같다는 험담을 공공연히 내뱉었다. 공익제보자에게 꼴뚜기, 망둥어 같은 단어를 들이대며 인신공격성 발언을 서슴지 않았는가 하면, 5·18 광주민주화운동이 북한 소행이라는 얼토당토않은 주장을 마치 사실인 양 떠벌리는 이들도 있었다. 앞뒤 가리지 않는 이런 독한 말들이 난무하니 아침저녁으로 귀 씻을 일이 많아졌다.

누구나 말조심을 해 나쁠 게 없지만, 특히 세상에 이름을 드러낸 이른바 공인(公人)과 공직에 나선 분들은 더더욱 말을 조심해야 한다. 스스로 이 사회를 이끌어가는 오피니언 리더라고 자부하는 분들도 마찬가지다. 생전의 법정 스님은 "사람은 모두 입안에 도끼를 가지고 태어난다. 어리석은 사람은 말을 함부로 하여 그 도끼로 자신을 찍고 만다"고 했다. 시위를 떠난 말화살은 다시 되돌릴 수 없을 뿐 아니라 돌고돌아 결국 내 등에 꽂히게 마련이다.

한 사람의 됨됨이를 나타내는 한자 품(品)은 입 구(口) 세 개가 쌓여 이뤄진 말이다.
품격이란 곧 쌓이고 쌓인 말의 탑이나 다름없다는 얘기다. 말을 의미하는 한자 언(言)은 또 어떤가. 글자 안에 두 이(二)가 있는 건 두 번 생각하고 말하라는 뜻일 게다.
말로써 구업(口業)을 쌓은 이에게서 품격이나 품위를 찾아보기 어려운 까닭이다.

jsm64@fnnews.com 정순민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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