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의 위상 드높이고 선양해야죠"…3·8의거사업회 김용재 의장
(대전ㆍ충남=뉴스1) 송애진 기자 = "3·8 민주의거가 대구의 2·28, 마산의 3·15와 함께 4·19혁명의 단초가 됐던 역사적 사건이었으니까 대전의 위상을 드높이고 선양하도록 노력해야죠"
3·8 민주의거기념사업회 김용재 의장(76·한국현대시인협회 이사장)은 요즘 어느 해보다 감회가 깊다. 하루 앞으로 다가온 3·8 민주의거가 올해는 국가기념일로 지정된 뒤 처음으로 이낙연 국무총리가 참석한 가운데 정부 기념식으로 열리기 때문이다.
김 의장은 "앞으로 대전지역에 기념관을 세우고, 시민들의 편의를 위해 주차장을 확보하고, 3·8의거둔지미공원 안에 있는 3·8민주의기념탑과 함께 다른 표지석과 기념조형물, 예술작품 등을 세워 공원을 시민들이 둘러볼 수 있도록 했으면 한다"는 바램을 표시했다.
다음은 김 의장과 3·8민주의거 국가기념일을 앞두고 가진 일문일답.
-3·8 민주의거의 국가기념일 지정은 충청권에서는 처음으로 그 의미가 크다. 소감과 함께 앞으로 어떻게 살려 나가야 하나?
▶4개의 학생의거와 광주 5·18 항쟁, 6·10 전국반독재투쟁을 포함한 6대 민주화운동 중 지난해 11월 가장 늦게 국가기념일로 지정 받았다. 기념일 지정을 위해 3·8민주의거기념사업회는 제1회 민주시민 걷기 대회, 시낭송회, 국가기념일 지정을 위한 50만인 서명 운동 등을 펼쳐 국가기념일 지정을 위한 다양한 활동을 펼쳐왔다. 또 국가기념일 지정 촉구를 위한 15개 시민단체를 중심으로 범시민추진위원회를 발족하기도 했다. 3·8민주의거기념사업회는 앞으로 대전의 역사를 조명하는 대표적인 기념사업을 전개하며, 대전의 위상을 높이고 선양할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다.
-3·8민주의거가 어떤 운동이었는가?
▶3·8민주의거는 4·19혁명의 원인이 된 1960년 3·15 부정선거를 일주일 앞둔 3월 8일 대전고 1, 2학년 학생 1000여명이 야당의 부대통령 후보인 장면 박사의 선거연설회에 맞춰 경찰의 저지망을 뚫고 '독재 타도'와 '학원의 자유'를 외쳤다. 당시 가정방문을 온 교사로부터 자유당을 찍으라는 말을 듣기도 하는 등 부정선거와 부패가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학생들은 맨손으로 투쟁하는데 경찰들은 소방 호수로 물을 뿌리는데 당해낼 재간이 없었다. 경찰과 육탄전이 벌어지는가 하면 방망이로 얻어맞기도 했다. 경찰의 트럭, 기마부대가 출동하고 소방차까지 동원돼 학생들의 모자, 교복, 신발, 소지품 등이 분실되고 빼앗기기도 했다. 논바닥에 가둬 높은 인분통에 빠지고 넘어져 상처가 난 경우도 허다했다. 9일에는 경찰에서 4개 학생 학교 대표 24명을 연행해 구속했다. 당시 시민들은 학생들을 숨겨주고, 먹을 것도 주면서 학생들의 용기를 북돋았다.
결론적으로 3·8 민주 의거는 대전지역 고교생 1000여 명이 1960년 3월 8일부터 시작한 자유당 정권의 부패와 독재에 항거했던 충청권 최초의 학생운동으로 대구 2·28, 마산 3·15 의거와 함께 4·19혁명의 도화선이 됐던 역사적 사건이다.
-3·8민주의거기념사업회는 주로 어떤 일을 하는 곳인가?
▶3·8민주의거기념사업회는 대전·충남 4·19혁명동지회와 함께 사단법인체로 등록돼 있다. 대전시 조례와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법이란 법률에 따라 승인된 민주화운동의 표준단체다.
-3·8 민주의거를 어떻게 알리고 선양해 나갈 계획인가?
▶지난 1962년 5월 25일 대전고 교정에는 현정탑이 세워졌다. 대전시는 지난 2006년 7월 대전 서구 둔산동 둔지미공원에 25m의 3·8민주의거기념탑을 세웠다. 정부와 대전시의 지원을 받아 세워진 이 탑은 민주화 운동과 관련 대한민국에서 최고로 크다. 지난해 11월 국가기념일로 지정된 3·8민주의거를 기념하기 위해 둔지미공원의 명칭도 '3·8의거둔지미공원'으로 변경했다. 시에서 재정을 지원해 공원 주차장을 확보하고, 표지석과 기념조형물, 예술작품 등을 세워 시민들이 보고 역사를 다시 한 번 되새겨볼 수 있으면 좋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