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플 부고

<부고> '민주화 운동의 대부' 문동환 목사 별세...향년 98세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9.03.10 14:20

수정 2019.03.10 14:20

문동환 목사 별세 /사진=연합 지면화상
문동환 목사 별세 /사진=연합 지면화상


'민주화운동의 대부' 문동환 목사가 지난 9일 오후 별세했다. 향년 98세.

목사이자 교육자, 신학자였고, 민주화운동가이자 정치인이기도 했던 문 목사는 늦봄 문익환(1918~1994) 목사의 친동생으로 큰 족적을 남긴 한국 근·현대사의 증인이다.

문 목사는 일제강점기이던 1921년 5월 5일 북간도 명동촌에서 독립신문 기자로 일했던 부친 문재린 목사와 여성운동가였던 김신묵 여사의 3남 2녀 중 차남으로 태어났다. 독립운동과 기독교 선교의 중심지였던 명동촌에서 형 늦봄 문익환 목사, 윤동주 시인 등과 함께 성장하며 어려서부터 민족과 나라를 위해 헌신하는 삶에 뜻을 뒀다.

고인은 이승만에서 박정희로 이어지는 독재정권의 부조리함을 교육 현장에서 설파했다. 이후 1976년 명동성당에서 '3.1 민주구국선언문' 사건으로 투옥돼 2년 가까이 복역했다.
석방된 후에는 민중운동에 깊이 참여했고 동일방직 및 와이에이치(YH) 노조원의 투쟁을 지원하다 다시 투옥되기도 했다.

1979년 10·26 사건으로 유신정권이 막을 내리자 한신대에 복직했으나 전두환 신군부에 의해 다시 해직돼 미국으로 망명을 떠났다.

미국에서 한국의 민주화를 위한 다양한 활동과 더불어 목회 생활을 하다가 1985년 귀국해 한신대에 다시 복직했다.

1986년 한신대에서 정년퇴임을 한 후 재야에서 민주화 활동을 하던 중, 고(故) 김대중 전 대통령의 권유로 민주화운동을 했던 젊은 청년 활동가들을 이끌고 평화민주당에 입당, 평민연(평화민주통일연구회) 이사장으로 활동했다.

1988년에는 전국구 의원으로 국회에 진출해 평화민주당 수석부총재를 지냈고, 국회 5·18 광주민주화운동 진상조사특별위원회 위원장으로도 활동했다.

이후 1991년 부인과 약속을 지키기 위해 미국으로 돌아가 노년을 보내면서 젊은 목회자들과 함께 성서 연구에 주력했다. 고국에서 밀려나 저임금 노동자로 팔려가는 이주노동자들 삶의 구조적 원인이 미국의 신자유주의 경제체제라는 문제의식을 토대로 민중 신학을 더욱 심화시켜 '이민자 신학', '떠돌이신학' 연구에 매진했다.

유족으로는 부인과 아들 창근·태근, 딸 영혜·영미(이한열기념관 학예실장)씨 등이 있다. 문성근(영화배우)씨가 조카다.


빈소는 연세대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 발인은 12일 오전 8시. 장지는 마석 모란공원이다. (02)2227-7500

jiany@fnnews.com 연지안 기자

fnSurve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