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부칼럼 한미재무학회칼럼

[한미재무학회칼럼] 되는 것은 되고 안되는 것은 안된다

안삼수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9.03.19 16:25

수정 2019.03.19 19:44

[한미재무학회칼럼] 되는 것은 되고 안되는 것은 안된다

며칠 전부터 전기면도기가 이상한 것 같아 자세히 살펴보니 면도망에 구멍이 생겼다. 새것으로 갈아넣은 지 석달 만에 벌써 못쓰게 된 것이다. 같은 상표의 면도기를 오랫동안 사용했고, 이렇게 빨리 못쓰게 된 적이 없었기에 고객상담센터에 문의했다. 상담원의 얘기인즉 면도망의 보통 사용시간인 18개월보다 훨씬 빨리 못쓰게 되었고, 내가 오래된 고정 고객이니 이번 한번은 무료로 대체 부품을 보내준다고 한다. 과연 3일 후에 새 면도망을 받았다. 캐나다에 살면서 위와 비슷한 경험을 종종 했다.
사소한 경험들이었으나 가만히 생각을 해보니 제품보증제도는 사회가 안정되었다는 한 징표가 아닐까 하는 느낌이 들었다.

제품보증은 제조회사가 소비자에게 한 약속이다. 캐나다의 경우 제품보증기간 제품에 문제가 생기면 제조회사가 대부분 문제를 해결해준다. 제조회사가 대기업이건 중소기업이건, 제품이 싸건 비싸건 제품보증 내용을 대부분 충실히 이행한다. 제품보증제도가 제대로 운용되는 데는 두 가지 전제조건이 있다. 하나는 소비자가 이 제도를 오용 또는 남용하지 말아야 한다. 거짓으로 제품에 하자가 있다고 하지 않는 것이 한 가지 예이다. 둘째로, 제품 보상대상과 보상한계, 보증기간 등 제품보증에 관한 내용이 분명해야 한다. 특희 제조사는 회사의 제품보증에 관한 책임한계를 명확히 규정한다. 이 한계 안에서는 제품보증에 따른 보상을 받을 수 있고, 이 한계를 벗어나면 보상을 받을 수가 없다. 한마디로 되는 것은 되고, 안되는 것은 안되는 것이다.

캐나다에서 처음 살기 시작할 때는 이 칼 같은 한계가 무척이나 낯설고 이에 적응하는 데 시간이 제법 걸렸다. 경우에 따라 사정을 봐줄 수도 있을 텐데 도무지 봐주는 것이 없기 때문이다. 허나 여기에서 몇 년 지내다보니 오히려 이러한 정확한 한계가 편하게 생각된다. 안되는 것은 아예 안되는 것이니 기대도 하지 않는다. 반면 되어야 하는 것이 되지 않을 경우에는 아주 강력하게 따진다. 담당자와 해결이 되지 않을 경우에는 담당자의 상관한테 얘기하고, 그래도 안될 경우는 더 위의 상관하고 얘기하면 웬만한 일은 해결이 된다. 이렇듯 캐나다에서의 생활은 한계 안에서 생활하는 것이고, 이 한계를 달리 표현하면 기본질서라 할 수 있을것이다.

이러한 기본질서가 사회에 뿌리를 내리려면 한 가지가 더 필요하다. 고발정신이다. 누가 새치기를 하면 새치기하지 말라고 본인이나 학교선생님한테 얘기하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되는 것은 되고 안되는 것은 안되는데, 새치기는 안되는 것에 속하는 것이다. 안되는 것을 안되는 것이라고 얘기하는 것이 고발이다. 잘못된 것을 바로잡는 첫걸음이 고발이다. 캐나다 사람들은 고발을 잘한다. 학교에서 누군가가 새치기하면 선생님한테 얘기하고, 누군가가 음주운전같이 위험하게 운전하면 경찰에 신고한다. 내가 어릴 때는 이런 것을 고자질이라 하였다. 고자질은 떳떳하지 못하고 비열한 행위라는 인식이 강했다. 세월이 흐르다보니 고자질이 사회나 회사에서 많이 필요하고 중요한 덕목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안되는 것을 안된다고 하고, 잘못된 것을 잘못되었다고 말하는 데는 굳은 신념과 큰 용기가 필요하다는 것을 알았다. 어떤 면에서는 의리와 지조를 중시하는 선비 정신과도 같은 맥이라 할 수 있다.


곳간이 가득 차야 예의를 안다고 했다. 우리나라의 국민소득이 3만불이 넘고, 사회 전반에 기본질서가 제대로 자리잡힌 모습이 보인다.
이제는 되는 것은 되고 안되는 것은 안되고, 잘못된 것은 잘못되었다고 말하는 고발정신 또한 사회 전반에 자리잡기를 바란다.

김영수 캐나다 리자이나대학 교수

fnSurve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