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호의 플레이어 3] 오재형 작가
지난달 한 화가의 은퇴전이 있었다. 앞서 세 번의 전시를 가진 삼십대 중반의 화가가 주인공으로, 대학교 졸업작을 비롯해 자신이 그린 그림 대부분을 전시했다. 동양화를 전공했다는 그는 활동기간 내내 유화를 그리다가 어느 순간부터는 아예 새로운 그림을 그리는 일이 뜸해졌다고 고백한다. 작가 오재형의 이야기다.
화가로는 마지막을 선언했지만 자연인이자 예술가 오재형은 살아있을 것이므로, 은퇴전은 산 자의 장례식과 같았다. 이 장례식의 끝에서 그는 자신이 가진 캔버스와 물감 따위를 모두 다른 이에게 넘기고는 화가로의 경력을 마감하였다.
더는 그림을 그리지 않지만 오재형은 여전히 예술을 업으로 삼는다. 다양한 재능을 가진 이 사내는 자신이 찍은 다큐멘터리 <모스크바 닭도리탕>으로 이달 열리는 인디다큐페스티발에 참가한다. 또 영상을 틀고 그 앞에서 피아노를 치는 독특한 작업으로 대중들과 만날 계획이다. 전통적인 피아니스트나 영상작가와는 다른 길을 걸어왔지만, 그렇다고 둘 모두 되지 말란 법은 없다.
■'관종' 작가가 꿈꾸는 결합예술 프로젝트
오재형은 피아니스트이자 영화감독이며 은퇴한 화가이기도 하다. 가끔은 글도 쓴다는데, 주무기가 뭐냐 물으니 피아노와 결합한 영상작업이란 답이 돌아온다. 그에게 자기소개를 부탁하자 “이것도 하고 저것도 한다고 말하는 게 번거로워 잡상인이라 소개하는 걸 즐긴다”며 “요즘은 주로 독립영화제에서 영상작업을 하는데, 앞으로는 피아노를 치며 영상 퍼포먼스를 하려고 한다”고 답한다.
쉽게 말해 이것저것 다 한다는 건데, 좋게 말하면 다재다능하고 나쁘게 보면 무엇 하나 뚜렷하지 않다는 뜻이 되겠다. 실제로 오재형은 동양화를 전공해 유화를 주로 그렸고 그림보다는 피아노에 더욱 관심을 가졌으며, 독립영화 활동과 글쓰기를 병행했다.
이에 대해 오재형은 “미술도 하고 음악도 하고 글을 쓰고 연기까지 하는 사람을 보면, 속으로 ‘쟤는 제대로 할 줄 아는 게 뭐야?’하고 아니꼽게 보는 시선이 있다”며 “나는 조금 다른 게 피아노와 영상, 그림 세 가지를 합쳐서 보여주는 게 나만의 장르라고 생각하고, 그래서 한 가지를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고 설명했다.
굳이 전문 피아니스트를 쓰지 않고 직접 연주를 하는 이유로 오재형은 스스로가 관종(관심을 위해 무엇이든 한다는 뜻의 ‘관심종자’의 준말)이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그는 "내가 돋보이고 싶은 게 사실이다. 기껏 영상까지 만들어놓고 누가 나 대신 조명을 받는다는 건 용납하기 어려운 일"이라며 "피아노를 치면서 느끼게 되는 건 내가 뭔가를 해야하는 사람이라는 것이다. 무대에서 라이브로 공연하다 보면 긴장도 되고 재미도 있는데 그 자체가 즐겁다"고 털어놨다.
이렇게 자기만의 영역을 구축하기까지 오재형은 먼 길을 돌아와야 했다. 그 길에는 제주 강정마을 해군기지 건설, 세월호 침몰참사, 테러방지법 통과, 박근혜 탄핵정국 등 굵직한 사건들이 자리했다. 그는 “대학교를 막 졸업하고 사회문제엔 전혀 관심 없이 살다가 우연히 경찰이 지역주민을 괴롭히고 문정현 신부님이 구럼비바위에서 떨어지는 걸 보며 아주 열이 받았다. 그때 '저 사람들도 저렇게 하는데 나도 화가의 방식으로 투쟁을 해보자'는 생각이 들어 무작정 그림 한 장 들고 내려가게 됐다”고 설명했다.
오재형은 “이전에는 화이트큐브라고 부르는 하얀 갤러리에서 작업을 하고, 결과물을 짠- 하고 발표하는 게 예술이라고 생각했다. 나도 반 고흐나 세잔 같은 화가를 좋아해서 동네 뒷산에서 아름다운 풍경을 주로 그렸는데 강정마을에 가서 충격을 많이 받게 됐다”며 “평소 일상에선 전혀 떠올릴 일 없던 전쟁·평화·재개발 이슈 같은 걸 총체적으로 느끼는 시간이었다”고 말했다.
■'사회에서 나로', 무뎌짐과 예민함 사이에서
불과 8년이 되지 않는 기간 동안 한국사회는 수많은 사건을 겪었다. 수용과 표현을 삶의 가장 큰 가치로 삼는 예술가라면 더욱 엄청난 변화를 느꼈을 게 분명하다. 고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예술가 가운데 어느 누구도 감당한 적 없는 격변이었을 테다. 그 한 가운데를 지난 오재형은 이제 그 자신에게 관심을 집중하려 한다고 털어놓는다.
오재형은 “'사회에서 예술가의 역할이 뭘까'하는 거창한 담론이 내 안에 계속 있었다. 일인시위를 하고 사회문제를 다룬 작품을 만들고 했는데, 지금은 많이 달라졌다. 전처럼 영상 하나 보고 어디로 내려간다는 걸 상상할 수 없다”며 “사람은 나이를 먹으며 관심사가 변하게 마련인데 그런 과정인지, 아니면 너무 엄청난 경험을 하고 나니 둔감해진 건지 알 수 없다”고 말했다.
작가 오재형은 당장 25일 인디다큐페스티발에서 <모스크바 닭도리탕> 상영을 앞두고 있다. 7분 조금 넘는 이 단편영화는 오재형이 부모님과 함께 찾은 북유럽 패키지여행에서 본 장면들에 의미 없는 나레이션을 덮어 씌운 독특한 작품이다.
그는 이 영화에 대해 “모스크바 어느 식당에 갔더니 닭도리탕이 나왔다. 장소성이 파괴된 그 장면이 웃겨서 사진을 찍어 인스타그램에 ‘모스크바 닭도리탕’이라고 올렸는데, 사람들이 재미있어 했다. 그래서 스톡홀름 맑은무장국, 오슬로 제육볶음, 헬싱키 그림자 같이 시리즈로 올린 걸 집에 와서 작업한 것”이라고 제작배경을 설명했다.
그는 이어 “작년 말쯤에 우울감이 있었다. 대학교를 졸업하고 10년 동안 작업만 하다가 주변을 둘러보니, 곁에 남은 사람이 얼마 되지 않아서 외롭고 우울했다. 그때 그 기분이 작품의 기저에 깔려 있다. 한창 <프렌즈>라는 미국 드라마를 보고 있었는데 거기는 조그만 사건 하나 일어나면 친구들이 다 축하해주고 하는데 '사람이라면 저렇게 살아야 하는 게 아닐까' '나는 너무 고립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던 시기였다”고 말했다.
인터뷰를 위해 만난 오재형은 그가 이야기하는 당시와는 감정상태가 많이 달라보였다. 그는 “지금은 하루 종일 피아노를 치는데 매일 사는 게 즐겁고 행복하고 그런 상태”라며 “당시 내 우울감은 주변에 사람이 너무 없지 않은가 하는 것에서 출발했는데 어느날 밴드 공연에서 보컬이 ‘여러분이 외롭다고 느끼면 그렇지 않게 노력을 해보는 게 어떠냐’라고 하는 말을 들은 뒤 행동을 바꾸게 됐다.의식적으로 사람들을 만나고 그러다 직접 주최하는 모임이 생기기도 하고 그렇게 살다 보니까 괜찮아졌다”고 말했다.
인터뷰를 진행하며 오재형이 충분히 가벼운 인간이란 생각이 들었다. 스스로가 가벼워서 언제든 빠르게 변할 수 있어 보인다는 뜻이다. 오재형은 “스스로와 거리두기를 많이 하려고 노력한다. 글을 쓸 때도 그렇고 내가 어떤 상태인가를 객관적으로 보려고 하는 편이다. 모든 창작이나 표현활동에서 가장 강점이 되는 것도 솔직한 상태를 스스로 점검해보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주변을 보면 지겹지 않나 할 정도로 지나간 걸 놓지 못하는 사람이 있는데, 나는 상대적으로 포기와 전환이 빠른 편”이라고 설명했다.
■빨리 포기하는 인간의 '장인 되겠다' 선언
빨리 포기할 줄 알아서 많은 굴곡을 겪은 오재형은 인터뷰 말미에 장인이 되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그림과 영화, 피아노까지 먼 길을 돌아왔지만 이제는 자신만의 분야에 정착해 만족할 만한 작품을 내놓겠다는 것이다. 오재형은 “이제 제대로 된 직업을 찾았다는 생각을 한다. 피아노를 치며 영상을 트는 사람이란 정체성을 계속 가져가고 싶다. 극장을 대관해서 피아노 하나를 앞에 놓고 하는 단독공연을 꿈꾸고 있다”고 계획을 밝혔다.
전업작가 생활을 10년 넘게 해오고 있지만, 오재형은 아직 제 예술만으로 생활을 꾸리진 못하는 상태다. 그는 "부모님이 작업환경을 지원해주고 있어서, 굳이 따지자면 금수저 예술가라고 생각한다. 용돈벌이는 해야 하니까 영상을 만들고 글을 쓰는데, 경제적으로 자립했다고 하기는 어렵다"며 "다양한 경험을 바탕으로 하는 내 활동에 환경이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고 생각한다. 배부르고 등 따습다 보니 자유롭게 창작을 할 수 있는 것인지, 예술혼이 충만해 어떤 상황에서도 예술을 할 수 있었을지 스스로도 장담하기 어렵다"고 털어놨다.
그는 이어 "경제적으로 어려워야 좋은 예술을 할 수 있다는 고정관념을 믿지 않는다. 난 반 고흐도 스위트룸에서 지냈다면 더 좋은 작품을 냈을 거라고 확신한다"며 "최영미 시인이 호텔에 작업실을 달라고 해 화제가 된 일이 있었는데 거기에 많이 공감했다. 불우한 환경이나 굳센 고집에서 좋은 작품이 태어난다는 고정관념이 틀렸다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오재형은 유명한 예술가가 작품활동을 여유롭게 지속할 수 있는 환경에 대해 설명하며, 스스로도 그런 반열에 들고 싶다고 고백한다. 그는 “전엔 음악가들은 음반 하나를 가지고 계속 같은 콘서트를 하고 하는데 미술작가는 항상 신작을 만들어야 하나 하는 불만이 있었다”며 “나중에 생각해보니 유명한 사람은 관객이 많아 여기저기서 같은 공연을 할 수 있는데, 우리는 관객이 얼마 되지 않다보니 여기서 한 레파토리를 저기서 할 수 없는 상황이란 걸 깨달았다. 나는 제대로 된 하나의 콘텐츠를 만들어 놓고 여기서 한 걸 저기서 할 수 있을 만큼의 명성을 얻고 싶다”고 목표를 밝혔다.
[가끔 상상합니다. 비디오가게 점원 타란티노를, 차고 안의 잡스를, 아를의 반 고흐를 만나는 순간을요. 연습구장에서 땀 흘리는 메시를, 취재에 치이던 트웨인과 헤밍웨이를 만나는 건 또 어떨까요. 상상만으로도 짜릿합니다. 저도 한 때는 예술에 삶을 걸겠다고 맹세했었지요. 어찌나 즐겁고 괴로웠는지, 얼마나 뜨겁고 슬펐던지를 기억합니다. 꼭 한 번이라도 그 시절 나를 만날 수가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그래서 기획했습니다. 만날 가치가 있는 사람을 만나 들을 가치가 있는 얘기를 듣는 인터뷰 프로젝트를요. '플레이어'라 이름붙인 이 길 위에서 애저녁에 떠나가버린 나와 만나게 되는 날이 올지도 모를 일입니다. 조건은 오로지 셋입니다. 꿈이 있을 것, 꿈을 향해 달리고 있을 것, 매력적일 것. 플레이어가 이름을 얻지 못한다 해도, 필요한 곳에 조그마한 힘이라도 건넬 수 있다면 그것으로 족합니다.
그럼 제 인생의 플레이어일, 제 삶 가운데 투쟁하고 있을 멋쟁이 꿈돌이들에게 이 인터뷰를 바칩니다. 지긋지긋한 이 生을, 어디 한 번 살아내 봅시다.]
팟캐스트 <김성호의 블랙리스트> <김성호의 플레이어>에서 더 깊은 인터뷰를 만날 수 있습니다.
pen@fnnews.com 김성호 안태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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