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남 살해혐의 베트남 여성 "고용된 배우로 알아…난 속았다"
아사히 진술조서 입수…'미스터Y'가 베트남서 촬영 제안
"김정남을 촬영위해 '고용된 배우'라 말해…액체 독극물인지 몰랐다"
(서울=뉴스1) 김윤경 기자 =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이복형 김정남을 지난 2017년 살해한 혐의로 구속기소된 베트남 여성 도안 티 흐엉이 사건 7주 전 '미스터 Y'라는 인물로부터 몰래 카메라 프로그램 출연을 제안받았으며, 김정남은 촬영을 위해 '고용된 배우'란 설명을 들었다고 진술한 것으로 나타났다.
아사히 신문은 8시간에 걸쳐 이뤄진 흐엉의 진술 내용을 적은 11페이지 분량의 조서를 입수했다면서 그 내용을 31일 전했다.
신문이 밝힌 조서 내용에 따르면 흐엉은 사건 발생 7주 전 하노이의 한 바에서 한국의 몰래 카메라 프로그램의 카메라맨을 자처하는 미스터 Y란 사람을 만났다. 그는 흐엉이 연예인이 되고 싶어한다는 것을 알고 베트남어로 자신이 제작하는 프로그램에 출연할 것을 제의했다.
흐엉과 미스터 Y는 출연료도 논의했는데 "한 달에 얼마냐?"는 질문에 "얼마든지 희망하는대로 주겠다"고 답해 흐엉은 "1000달러"라고 했다. 흐엉이 내는 월세 17개월분에 해당하는 고액이었지만 미스터 Y는 거부하지 않았다. 또 미스터 Y의 상사라는 남성도 나타났는데 그는 흐엉에게 "확실히 촬영해라. 그러면 돈을 내겠다"고 채근했다.
흐엉은 한 사람에게 액체를 칠할 것을 요구받았다. 그러나 2월4일 말레이시아에 들어와 테스트 촬영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흐엉이 겁을 내는 것을 보고 미스터 Y는 "실전 촬영을 위해 배우를 고용했다"고 설명했는데 그 '고용된 배우'가 김정남이었던 것.
흐엉은 그 말에 주저하지 않고 실행에 옮길 수 있었고 김정남인 줄은 몰랐다고 진술했다. 몰래 카메라 촬영 내용이라고 한 '사람에게 액체를 칠하라는 장난'은 실제론 맹독성 물질 (신경작용제 VX)을 묻히는 암살 행위였던 것이다.
미스터 Y는 흐엉을 격려하기 위해 옷을 사주고 노래방에도 데려다줬다. 그리고 "2월13일 촬영은 중요하다. 유튜브에 올릴 것이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한다.
미스터 Y는 쿠알라룸푸르 국제공항에서 배우(김정남)가 모습을 드러내자 흐엉의 손에 '조금 노란색 오일 형태의 액체'를 떨어뜨렸고, 흐엉은 그 액체를 배우의 얼굴에 칠했다. 흐엉은 먼저 배우의 눈을 만진 뒤에 손바닥을 안면에 문질렀다고 진술했다. 배우가 놀라서 뒤돌아봤기 때문에 얼굴 전체에 액체를 바르진 못했다고.
흐엉은 "곧바로 화장실에 들어가 손을 씻었고, 손이 뜨거워지거나 아프거나 하지 않아 유독성 물질인 줄 몰랐다"고 진술했다.
사건 후 흐엉은 공항 인근 호텔에 투숙해 자신이 촬영한 영상을 전송하거나 친지들과 채팅하기도 했으며 체포된 것은 사건 이틀 뒤 직접 공항에 돌아오면서였다.
흐엉은 "미스터 Y가 공항에서 촬영을 계속하겠다고 했던 사실을 떠올렸고 출연료를 받기 위해 공항에서 그를 찾으려 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미스터Y와 동료들은 사건 직후 출국해 북한으로 도피했다. 말레시이사 당국은 이들이 북한의 밀명을 받은 공작원이었다고 단정하고 국제지명수배 중이다.
현장에서 체포된 흐엉은 "그(미스터 Y)는 거짓말쟁이다. 나는 이용당했다"고 주장했다.
흐엉의 아버지인 도안 반 타인은 아사히 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딸이 너무나도 주의가 부족했다. 사람을 쉽게 믿어버렸다"며 "사건 전으로 돌아갈 수 있다면 어떤 수단을 써서라도 말리고 싶다"고 말했다.
신문은 "사건의 전모는 아직 보이지 않지만 피고인 진술 조서에서는 (연예인이 되고자 하는)여성을 끌어들이고 냉철하게 임무를 수행하려는 북한의 주도면밀한 암살 공작의 한 측면이 엿보인다"고 전했다.
말레이시아 사법당국은 지난 11일 흐엉과 같은 혐의로 기소했던 인도네시아 여성 시티 아이샤에 대해선 공소를 취소하면서 석방했다. 4월1일엔 흐엉에 대한 재판을 속행할 예정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