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염주영 칼럼] 명분도 논리도 없는 청년기본소득 실험

염주영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9.04.01 16:56

수정 2019.04.01 16:56

경기도 이달부터 수당 지급
복지 선진국도 포기한 정책
기본소득 함부로 내걸면 안돼
[염주영 칼럼] 명분도 논리도 없는 청년기본소득 실험

경기도가 이달부터 도내 청년들에게 연간 100만원씩 나눠준다. 분기마다 한 번씩 나눠주는데 첫 회분 25만원이 이달에 지급된다. 만 24세로 도내에서 3년 이상 거주한 17만5000명이 대상이다. 예산은 올해 1753억원이 투입되며, 향후 4년간 총 6866억원이 들어간다. 취업전선에 뛰어들거나 학비 마련 등으로 경제적 어려움에 처한 청년들을 돕기 위한 것이라고 한다.

극심한 취업난으로 고통받는 청년들을 도와주자는 뜻에는 공감한다.
그러나 아무리 좋은 일이라도 막대한 혈세를 투입해야 한다면 얘기가 달라진다. "왜 내가 낸 세금으로 이재명 지사가 선심을?"이라고 생각하는 주민들이 있지 않을까. 경기도에 돈 없어 고통받는 사람들이 어디 청년들뿐이겠는가. 늙거나 병들거나 장애 등으로 도움의 손길이 필요한 사람들은 부기기수다. 그런 사람들을 먼저 도와야 하는 것 아닌가.

지원대상이 꼭 24세여야만 하는 이유도 알 수 없다. 경제적 어려움을 겪는 청년은 23세도 있고, 25세도 있다. 이들에게는 왜 돈을 나눠주지 않는가. 세금은 납세자 대다수가 수긍할 수 있게 써야 한다. 수긍하려면 타당성, 형평성, 효율성이라는 세가지 기준을 충족해야 한다. 경기도가 청년들에게 돈을 나눠주겠다는 것은 타당하지도, 형평의 원칙에 부합하지도, 효율적이지도 않다. 도대체 무슨 기준과 근거로 혈세를 펑펑 쓰겠다는 것인가.

이재명 지사는 지난 선거에서 청년배당을 공약으로 내걸었다. 하지만 공약이라는 이유로 국민의 혈세를 함부로 써도 되는 것은 아니다. 이 사업은 이 지사가 성남시장 재임 시절인 2016년 처음 도입한 정책이다. 당시에는 '청년배당'으로 불리던 것을 이번에 '청년기본소득'으로 간판을 바꿨다. 그러나 기본소득에 걸맞은 명분이나 논리는 보이지 않는다.

기본소득은 다음 세가지 관점을 주목해야 한다. 첫째는 복지선진국들이 복지제도가 너무 잘돼있어 나타나는 부작용을 극복하기 위한 대안으로 나온 개념이란 점이다. 둘째는 복지선진국들조차도 아직 실험하는 단계다. 셋째, 현재까지의 실험에서는 어느 나라도 성공적 결과를 얻지 못하고 있다. 실험을 추진한 대표적인 두 나라를 꼽는다면 스위스와 핀란드다. 이들 중 스위스는 국민투표에서 반대가 많아 도입 단계에서 포기했다. 스위스 국민들은 세금부담이 늘어나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

핀란드는 2017년부터 실업자 2000명을 뽑아 실업급여 대신 매달 560유로(약 72만원)의 기본소득을 지급했다. 기본소득은 실업자가 취업해도 계속 지급된다. '놀면 주고 일하면 안주는' 실업급여를 '놀면 주고 일해도 주는' 기본소득으로 바꾸는 실험이었다. 핀란드는 '복지함정'이라고 부를 만큼 실업자들의 취업기피 현상이 심각하다. 핀란드는 이번 실험에서 기본소득이 고용을 늘리는 효과가 있는지를 관찰했다. 최근 나온 1차 보고서에서는 그런 효과가 나타나지 않았다. 핀란드는 실험을 중단했다. 2차 보고서는 내년에 나온다.

선진국의 기본소득 실험은 기초적 복지제도조차 제대로 갖추지 못한 우리 현실과는 거리가 멀다. 경기도의 청년기본소득 실험은 나가도 너무 나갔다.
구구단을 배우는 초등학생이 미적분 문제집을 들고 다니는 격이다. 결국 선심정책이란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기본소득이란 간판으로 그럴 듯하게 포장한다고 포퓰리즘(인기영합주의)이 감춰지는 것은 아니다.

y1983010@fnnews.com 염주영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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