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호의 플레이어 4] 손현욱 비바리퍼블리카 실장
평생직장의 신화가 박살났다. 누구도 회사가 구성원의 삶을 책임져 주리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혹시 그런 사람이 있다면 바보라고 조롱받을 게 분명하다. 시대가 바뀐 것이다.
하지만 사람들의 사고체계는 생각만큼 빨리 변하지 않는다.
금융어플 ‘토스’로 잘 알려진 비바리퍼블리카에서 대외협력 업무를 담당하는 손현욱씨는 자신이 제 삶을 개척하는 사람이라고 자부한다. 2017년까지만 해도 8년 째 SK텔레콤에 몸담고 있던 그는 지난해 비바리퍼블리카로 이직, 새로운 경력을 시작했다.
■8년차 직장인이 사표를 던진 이유
비바리퍼블리카는 금융소비자가 겪는 불편을 없애 대중의 편익을 증진시키는 걸 목적으로 하는 업체다. 서비스 출시 4년여 만에 대중적인 인지도를 얻었음은 물론, 직원 수 200여명, 연매출 550억 원에 달하는 성공한 기업으로 자리매김했다. 주목할 건 비바리퍼블리카가 거듭 새로운 시장으로 제 영역을 확장하고 있다는 점이다. 현재의 성취에 안주하지 않고 개인의 금융생활 전반을 책임지는 서비스제공자로 거듭나겠다는 게 이들의 목표다.
비바리퍼블리카가 발전하는 회사인 건 사실이지만 SK텔레콤도 손꼽히는 대기업이다. 현욱씨에게 이직을 하게 된 계기를 물었다.
“처음엔 돈도 그렇고 안정적인 직장이라고 생각해 3년에서 5년 정도는 다녀보자고 생각했어요. 그러다 8년을 넘게 다니게 됐죠. 창원에서 대리점을 관리하는 일을 했고 부산본부에선 프로모션 마케팅을 맡았어요. 그때 모시던 본부장님이 멘토 역할을 해주셨고 서울로 옮기실 때 따라 가게 됐죠. 그 이후에 진급도 하고 결혼도 하게 됐어요.”
보통 대기업에 다니며 결혼을 하고, 남보다 빠르게 진급까지 한 사람이라면 이직을 선택하기가 쉽지 않다고 생각하게 마련이다. 그런데 어째서 현욱씨는 8년만에 직장을 옮기게 됐을까.
“지역에서 일할 때는 실무자의 권한이 강했지만 본사 핵심부서로 옮겨가며 자유롭게 일하기가 어렵다는 걸 느끼게 됐어요. 제가 납득하기 어려운 것들을 열심히 해야 하고 그러면서 안 좋은 말까지 듣는 게 힘들었죠. 정치싸움이 심하고 의사결정이 느린 건, 제가 몸담은 회사뿐 아니라 성장이 멈춘 조직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특징이라고 생각해요. 그런 것들을 경험하며 '의미 있는 일을 하고 싶다' '일에만 집중하고 싶다' '성장하는 조직에서 일하고 싶다' 그런 갈증이 커졌어요.”
그렇다면 왜 하필 비바리퍼블리카였을까. 대기업 통신사와 금융 스타트업 사이엔 적지만은 않은 차이가 있었을 게 분명한데 말이다.
“이직의 기준으로 삼은 건 세 가지였어요. ‘성장하는 회사인가’ ‘직원을 어떻게 대하는가’ ‘내가 가진 경험과 재능이 회사에 기여할 수 있는가’였죠. 비바리퍼블리카가 이 세 가지 기준을 만족시킬 수 있는 곳이란 생각이 들었고 그래서 선택했어요. 만약 회사의 성장이 멈춰 현재의 문화가 유지되지 못하거나, 내가 기여를 할 수 없게 되거나 한다면 언제든 떠날 수 있다는 마음가짐을 지금도 갖고 있어요.”
■회사와 같은 꿈을 꾼다, "세상을 더 나은 곳으로!"
현욱씨의 꿈은 세상을 더 나은 곳으로 만드는 것이다. 그리고 몸담은 회사는 현욱씨에게 꿈을 이루는 발판이자 동반자가 되어주고 있다. 세상에 기여할 수 있는 상품을 만드는데 일조하고 있다는 느낌을 주기 때문이다. 이 시대 직장인으로선 드문 일이다.
“‘공화국 만세’라는 뜻의 비바리퍼블리카란 사명부터가 혁명적인 의미를 담고 있죠. 사람들의 힘든 부분을 없애주는데, 마침 그게 금융이었던 거에요. 정보비대칭으로 인한 불편을 없애면서 소비자들의 편리함을 키워주는 일이 매력적이죠. 전 꼭 이 회사가 아니더라도 세상을 더 나은 쪽으로 만드는 곳에 몸담고 싶다는 생각을 하는데 지금은 회사가 제 꿈과 아주 잘 맞아요.”
현욱씨는 다른 사람에게 영감을 주는 사람이 되기 위해서도 노력한다. 그 스스로도 다른 사람에게 영감을 받는 일이 많다는 그는 사람들이 저마다 자신의 삶을 스스로 개척하는 세상을 꿈꾸고 있다.
“한국엔 자기가 의식적으로 변화를 추구하지 않으면 남들 사는 대로 휩쓸려가는 경우가 유독 많은 것 같아요. 똑같은 교육과정을 거치고, 서울대나 연·고대에 가야한다는 게 모두의 사고에 박혀 있고, 어딜 가나 그런 생각을 하는 사람을 만나죠. 지난 일 년 반 동안 600명 넘는 사람들을 만났는데 이런 쪽에서 깨어있다고 할 수 있는 사람은 손에 꼽는 게 사실이에요. 그런 사람들에게 삶의 목적이 뭐냐고 물으면 제대로 답하는 경우가 드물죠.
만약 원하는 게 돈이라면 퇴근하고 부동산 투자를 알아보러 다니는 게 맞고 생활이 중요하다면 가족과 함께 해야 하잖아요? 주변에 회사생활을 지나치게 열심히 하는 친구들을 보면 목적이 뭔지 꼭 물어보는데, 임원이 되는 걸 꿈꾸는 것도 아니면서 스트레스를 많이 받고 하는 모습이 안타까워요. 아직 구체적인 방향을 정하진 않았지만 나중에 누군가 저로 인해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이 변화되고 조금이라도 가슴 설렐 수 있다면 멋질 것 같아요.”
직장에서의 생활과 본인의 목표가 상당부분 일치하다보니 현욱씨의 삶이 직장 쪽으로 많이 기울어 있는 듯 느껴졌다. 그의 말대로 비바리퍼블리카가 그렇게 멋진 집단이라면, 그곳에서 일하는 많은 사람들이 그와 같지 않을까 싶기도 했다.
“소수의 우수한 인재를 채용해 최대의 성과를 내는 걸 기본으로 하는 조직이다 보니 다들 업무량이 많은 건 사실이에요. 또 그 과정에서 자율과 책임도 명확히 하고 있어서 다들 책임감을 갖게 되죠. 늦게 퇴근하는 사람들도 많고, 저도 다른 사람보다는 일찍 퇴근하려고 하고 있지만 전보다 아내와 만날 시간이 줄어들었죠. 아이가 태어나도 지금처럼 살 수 있을까 고민이 있긴 한데, 지금은 제가 사는 방식이 좋아서 만족하고 있는 상태에요. 회사에 아이가 있는 분들 보면 점심때 힘들어서 자기도 하던데 저도 고민해봐야 할 문제겠죠.”
직장과 가정의 양립은 현욱씨뿐 아니라 많은 직장인이 고민하는 문제다. 회사를 옮기며 아내와 보는 시간이 많이 줄어들었다는 그에게 가정의 의미에 물었다.
“가정은 제게 쉼터 같다고 생각해요. 보는 시간이 줄어들었으니 아내가 섭섭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데, 주말엔 전혀 일과 관계된 일을 안 하려고 하고 처가에도 자주 가려고 하면서 집안의 평화를 위해 노력한다고 말할 수 있어요.”
■왜 우리는 일을 할까? 모두가 고민해봐야
요즘 현욱씨는 리더십에 꽂혀 있다. 리더십에 대한 책을 읽고 리더십이 좋은 사람들을 보며 영감을 받는 일이 많다. 언제고 리더의 역할을 맡게 되면, 주변 사람들에게 영감을 줄 수 있는 좋은 리더가 되겠다 마음을 다진다.
“사람들이 일을 싫어하는 건 권한은 주어지지 않는데 책임만 묻는 구조적인 환경 때문인 경우가 많아요. 보통의 회사는 부문장·본부장·사장·오너, 거기다 각종 규제와 언론까지 다 신경을 써야 하는데, 우리는 철저하게 구성원들이 일의 본질에만 집중할 수 있게 해주죠. 그 과정에서 특정인의 리더십이 상당히 큰 역할을 하고 있는데 조직문화를 만들어가는 그런 리더십에서 배울 점이 많다고 생각해요.”
그래도 사람이 하루 종일 일과 관련된 것만 하고 살 수는 없을 터다. 현욱씨에게 사람들에게 추천할 만한 무엇이 있는지 묻자 곧장 답이 돌아왔다.
“<고등래퍼>를 추천 드려요. 시즌 1부터 다 보시기를요. 처음엔 랩을 하는 사람들에 대해 겉멋 들었다는 이미지가 굳어져 있었는데 보다 보니 자기가 원하는 걸 다 하더라고요. 어린 나이임에도 생각을 명확하게 랩으로 풀어내고요. 제가 시즌 2때 영감을 많이 받았어요. 김하온·이병재 같은 분들께 영감을 너무 많이 받았죠. 세상을 보는 눈이 열 일곱 살 열 여덟 살 밖에 안 됐는데도 저보다 뛰어나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아내에게 애를 낳으면 랩을 시켜야 한다고 했는데 아직 대화가 필요해요(웃음)”
인터뷰를 마치며 감상을 물었다.
“사실 저는 평범한 회사원이라 인터뷰를 앞두고 걱정이랑 고민이 많았어요. 그런데 평범하면 평범할수록 왜 이런 일을 자기가 하고 있는지 고민할 수 있는 시간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팟캐스트 방송이나 이런 기사가 누군가에게 한번 쯤 그런 생각을 해보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네요.”
[가끔 상상합니다. 비디오가게 점원 타란티노를, 차고 안의 잡스를, 아를의 반 고흐를 만나는 순간을요. 연습구장에서 땀 흘리는 메시를, 취재에 치이던 트웨인과 헤밍웨이를 만나는 건 또 어떨까요. 상상만으로도 짜릿합니다. 저도 한 때는 예술에 삶을 걸겠다고 맹세했었지요. 어찌나 즐겁고 괴로웠는지, 얼마나 뜨겁고 슬펐던지를 기억합니다. 꼭 한 번이라도 그 시절 나를 만날 수가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그래서 기획했습니다. 만날 가치가 있는 사람을 만나 들을 가치가 있는 얘기를 듣는 인터뷰 프로젝트를요. '플레이어'라 이름붙인 이 길 위에서 애저녁에 떠나가버린 나와 만나게 되는 날이 올지도 모를 일입니다. 조건은 오로지 셋입니다. 꿈이 있을 것, 꿈을 향해 달리고 있을 것, 매력적일 것. 플레이어가 이름을 얻지 못한다 해도, 필요한 곳에 조그마한 힘이라도 건넬 수 있다면 그것으로 족합니다.
그럼 제 인생의 플레이어일, 제 삶 가운데 투쟁하고 있을 멋쟁이 꿈돌이들에게 이 인터뷰를 바칩니다. 지긋지긋한 이 生을, 어디 한 번 살아내 봅시다.]
팟캐스트 <김성호의 블랙리스트> <김성호의 플레이어>에서 더 깊은 인터뷰를 만날 수 있습니다.
pen@fnnews.com 김성호 안태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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