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으로 단맛 쓴맛, 그는 오늘도 무대로 향한다

오페라 첫 도전 '스타 연출가' 김광보
내달 무대 오르는 '베르테르', 괴테의 소설에 선율 붙인 작품
석달간 관련음악만 무한청취
"주인공의 자살 와닿지 않았는데 음악 듣다보니 이해할수 있었다..그 격정적 느낌 전해주고 싶어"
창작극 '함익'도 지휘
햄릿을 현대극으로 해석한 작품..초연때 미니멀리즘 연출로 호평..다시 무대 올려달란 요청 쏟아져
"뉴페이스들 연기 기대해달라"


연극계 '스타 연출가' 김광보(55) 서울시극단장은 요즘 몸이 열 개라도 모자란다. 낮에는 다음 달 개막하는 서울시오페라단의 '베르테르'(5월 1~4일·세종문화회관 대극장) 연습에 열중하고, 밤에는 오는 12일 재연하는 서울시극단의 창작극 '함익'(4월 12일~28일·세종문화회관 M씨어터) 연습에 들어간다. 체력 관리가 관건이라 영양제도 부지런히 챙겨먹는다. "컨디션이 어떠냐?"고 묻자 그는 멋쩍은 듯 "괜찮다"고 답했다. 일단 작업에 들어가면 방전될 때까지 에너지를 쏟는 스타일이라 우는 소리 따위는 할 시간도 없다는 듯. "다행히 '함익' 초연에 출연했던 배우 절반 이상이 이번에 합류해 연습이 순조롭습니다. 오페라는 멋모르고 덜컥 수락했는데 어렵네요. 타 장르에 대한 두려움과 새로운 것에 대한 기대감이 상충하는 나날이지만, 그래서 또 흥미롭습니다."
오페라 '베르테르' 연습실에서 단원들과 얘기를 나누고 있는 김광보 단장 서울시극단 제공


'함익'은 셰익스피어의 희곡 '햄릿'을 여성이 주인공인 현대극으로 재창작한 작품. 아버지와 계모가 어머니를 자살로 몰고 갔다고 믿는 30대 재벌 2세 연극과 교수 함익(최나라), 그녀의 분신 익(이지연)과 함익의 제자 연우(오종혁·조상웅)를 중심으로 펼쳐지는 복잡한 심리극이다.

2016년 초연 당시 김은성 극작가의 세련된 대본과 김광보 단장의 미니멀리즘 연출로 큰 호평을 받았다. 서울시극단 작품 중 재연 요청이 많았던 대표 작품이다. 이번 공연의 가장 큰 변화는 연우 역할에 뉴페이스가 합류한 것이다. "근본적으로 달라진 점은 없습니다. 기본 틀은 같고 그 안에 배우가 바뀐 거죠. 오종혁은 예민하고 섬세하다면 조상웅은 선이 굵고 발랄합니다."

괴테의 소설에 프랑스 작곡가 쥘 마스네가 선율을 붙인 '베르테르'는 김 단장의 첫 번째 오페라다. 지난 2000년 창작 뮤지컬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초연작을 연출한 바 있지만 오페라는 처음이다. 주어진 미션이 무엇이건 집요하게 수행하는 그는 이번 오페라 프로젝트도 자신만의 방식으로 돌파하고 있었다. 해외 유명오페라단의 '베르테르'를 모니터하는 것은 물론이고, 지난 3개월간 '베르테르'에 나오는 모든 음악을 통째로 다 외웠다. 음악을 무한 반복 청취하면서 김광보만의 연출 실마리도 찾았다.
오페라 '베르테르' 연습실에서 단원들과 얘기를 나누고 있는 김광보 단장 서울시극단 제공

"사실 저는 베르테르가 굳이 자살까지 해야 했나… 뮤지컬 연출 때도 의문을 풀지 못했다가 이번에 음악에서 그 답을 찾았어요. 오페라는 소설·뮤지컬과 달리 노래 가사도 그렇고, 음악 선율이 굉장히 격정적입니다."

김 단장은 베르테르가 연모한 로테(극중 샤를로트)를 팜므 파탈 캐릭터로 해석했다. "샤를로트의 애매모호한 태도가 베르테르를 자극해, 저 역시도 순간 화가 나고 뭔가 끓어오른다고 느꼈죠. 베르테르의 욕망에 가까운 사랑, 그 과도한 욕망이 부른 파멸로 전제한 후 연습 첫날, 격정적 사랑 이야기로 풀겠다고 했더니 양진모 지휘자가 자신의 해석과 일치한다며 기뻐했죠."

김 단장은 '베르테르'를 두 남녀의 심리 오페라로 만들고 있다. "성악가들에게 연기 주문을 많이 하고 있는데 모두 열린 자세로 임해주고 있어요. 연기 갈증이 있었는지 더 많은 지도를 원해 며칠 전에는 직접 시연도 했습니다. 연극배우들도 대사 없이 30초간 서 있기 힘들어 하는데, 무려 3분30초에 달하는 내면 연기 장면이라 쉽지 않았죠."
'함익' 연습현장 서울시극단 제공


무대는 인물들의 심리가 효과적으로 드러나도록 현대적으로 꾸민다. 무대에 투명 아크릴판으로 된 사각 박스를 세우는데, 이 벽면을 통해 5톤가량의 가을비가 쏟아지고 하얀 눈이 쌓일 예정이다. 그는 "관객들이 오페라 '베르테르'를 보고 폭풍이 지나가는듯한 느낌을 받았으면 좋겠다"며 "물론 결과는 뚜껑을 열어봐야 알겠지만…"라며 웃었다.

동아연극상·이해랑연극상 등 연극계 굵직한 상은 다 휩쓴 스타 연출가치고 다소 겸손한 태도를 보여 본인에게 엄격한 스타일이냐고 물었다. 스스로를 채찍질한단다.

"제가 부족하다고 느껴서 그런 겁니다. 고졸에 연극 전공자도 아니라 핸디캡을 극복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컸지요. 작품 할 때마다 집요하게 파고드는 것은 제가 이해해야 연출이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마치 자신을 증명하듯 창작에 전념해온 그는 1994년 데뷔 이래 연평균 네 작품을 무대에 올렸다. '베르테르'는 무려 69번째 작품·100번째 연출작이다.
꼭 재연하고 싶은 작품이 있을까? 그는 유일하게 직접 쓴 '뙤약볕'을 꼽았다. "일에 빠져있다가도 간혹 공허한 기분이 들면 제게 재도약의 발판이 되어준 '뙤약볕'이 떠오릅니다. 요즘은 인생 대표작에 대한 욕심이 생기네요."

자신의 삶을 "연극을 통해 실패하고 연극을 통해 성공한 인생"이라고 표현하는 김 단장은, 오늘도 '숙명처럼 다가온' 그 무대로 향한다.

jashin@fnnews.com 신진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