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전시·공연

103세 현역 화가 "장수 비결 말고 내 그림에 대해 질문하라"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9.04.11 13:03

수정 2019.04.11 13:03

김병기 개인전 '여기, 지금' 
가나아트센터 4월 10일~5월 12일
김병기(가나아트센터) /사진=fnDB
김병기(가나아트센터) /사진=fnDB
산의 동쪽-서사시 Mountain East-Epic, 2019, Oil on canvas, 162.2x130.3cm /사진=fnDB
산의 동쪽-서사시 Mountain East-Epic, 2019, Oil on canvas, 162.2x130.3cm /사진=fnDB

김병기 Kim Byung-Ki, 성자(聖者)를 위하여, For the saint, 2018, Oil on canvas, 130.3x97cm /사진=fnDB
김병기 Kim Byung-Ki, 성자(聖者)를 위하여, For the saint, 2018, Oil on canvas, 130.3x97cm /사진=fnDB

역삼각형의 나부 Nude of an Inverted Triangle, 2018, Oil, gesso and charcoal on canvas, 145.5x112.1cm /사진=fnDB
역삼각형의 나부 Nude of an Inverted Triangle, 2018, Oil, gesso and charcoal on canvas, 145.5x112.1cm /사진=fnDB


“장수 비결 말고 내 그림에 대해 물어 달라.”

103세 현역 화가 김병기(103)가 자신의 생일날인 10일, 평창동 가나아트센터에서 개인전 ‘여기, 지금’을 개막했다. 지난 2016년 100세 기념 개인전 이후 3년 만에 열린 전시로, 신작 10점을 포함한 평면 작품 20여점을 선보였다.

김병기 화백은 생일날 개인전을 열게 된 소감을 묻자 “두 마음이 교차한다”고 답했다. “그림 몇 점 갖고 전람회를 하게 돼 마음이 약해진다. 그러면서도 100살 넘은 사람이 이렇게 전시회를 여는 게 역사상 유일무이할 것이다.

그 일을 내가 할 수 있게 돼 하나님께 감사하다. 이렇게 우월적인 것과 약함이 교차상태에 있다. 그게 지금 내 심리다.”

노장은 자신의 예술세계를 직접 설명하려는 의지도 강했다. 그는 아주 천천히, 또박또박 자신을 “추상을 넘어, 오브제를 넘어, 원초적인 수공업적인 상태에서 선에 도달했다”고 표현했다.

김병기는 우리나라 추상화가 1세대로 손꼽힌다. 서양미술 선구자로 꼽히는 김찬영의 아들로 일본에서 수학했다. 1944년 이중섭 등과 함께 ‘6인전’을 개최했으며, 1954~58년 서울대 미대 교수를 지냈고, 1961년 파리비엔날레 대표작가 선정위원, 1965년 제8회 상파울루 비엔날레 커미셔너로 참여하는 등 미술계 중심에서 활약했다.

1965년 미국으로 건너간 뒤 1980-90년대 국내에서 개인전을 몇 차례 열기도 했지만, 점차 잊혀졌다. 일흔이 넘어서야 미술평론가 윤범모(현 국립현대미술관장) 등을 통해 국내 화단에 복귀, 2017년에는 대한민국 예술원 회원으로 선출됐다.

그는 이날 국립현대미술관에서 한창 열리고 있는 마르셀 뒤샹전을 언급하며 “나 역시 뒤샹의 영향을 받은 사람이지만, 남은 것 변기뿐”이라며 개념 미술에 회의를 표했고, 화가가 직접 손으로 그리는 행위의 중요성에 방점을 찍었다. "눈으로 본 것을 그린다"는 원초적인 행위 말이다.

김병기는 추상화가처럼 작품 활동을 했지만 형상과 비형상 그 중간 지점에 있다. 스스로도 “체질적으로 형상성을 떠날 수 없었다. 형상과 비형상은 동전의 앞뒷면에 불과했다”고 회상했다. 그의 그림은 언뜻 추상화 같으면서도 어떤 형상을 떠올리게 한다.

또 선과 면 그리고 그 사이로 역동적인 붓질이 만들어낸 사선이 인상적이다. 김형국 가나문화재단 이사장은 이 사선에서 “대나무 그림의 고수였던 조선시대 이정 등이 그린 풍죽(風竹)”을 떠올리기도 했다.

김병기는 “무수히 많은 점이 연결돼 선이 되고, 선이 면이 된다”며 “면은 입체를 만들고 거기에 색채가 더해지면 그게 회화의 조건이 된다”며 말했다.

오랫동안 다크브라운을 즐겨 사용했다는 그는 신작에서 노란색 등 밝은 색이 늘어났다. 이유를 묻자 “색채에 대한 욕망이 일기 시작했다”고 답했다. “우리 한복만 봐도 얼마나 컬러풀한가. 한국은 오방색의 나라다. 앞으로 얼마나 더 작업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웃음), 내 작품은 점점 컬러풀해질 것이다.”

목탄으로 그린 2018년 작품 ‘역삼각형의 나부’를 통해 격동의 근현대사를 온몸으로 통과한 우리시대 모든 어머니에 대한 경의도 표했다.

한때 역삼각형만 그렸다는 그는 “역삼각형은 정삼각형보다 불안하지만, 깊이가 있다”며 “나부는 우리 어머니, 그 어머니의 어머니다. 그들은 역삼각형처럼 어려운 상태를 극복하셨다. 그들은 현명했다. 우리나라가 지금에 이른 것은 모두 그녀들의 공이다.”

작품에 대한 자부심과 함께 세상을 먼저 떠난, 동료 예술가들에 비해 자신이 저평가된 현실에 대한 불만도 솔직하게 드러냈다.

“내 그림은 항상 볼만하다. 이중섭 김환기 유영국 박수근 모두 상당히 가까운 친구였지만, 그들 이야기를 할 때 나를 들러리처럼 취급하는 것은 불만이다. 난 나대로 주역이다. 조역이 주역처럼 나오는 영화들 있잖나. 난 그런 사람이다. 난 장거리 선수다.”
자신만의 아우라로 지금 이 순간 작가로 서있는 사실에서 알수있듯, 인생을 아는 현자의 지혜도 전했다. “다빈치가 모나리자를 4년간 그렸는데 미완성이라고 생각했다. 난 그걸 높이 평가해. 인생처럼 작품도 완성이란 없다.” ‘역삼각형의 나부’를 지난 3년간 끊임없이 그렸다 지우기를 반복한 이유다.

그렇다면 노장은 언제 자신의 그림이 이 정도면 됐다고 느낄까? 그러니까 전시회에 나온 이들 그림들이 작업실에서 세상에 나오기로 결정되는 순간이란 언제일까?

김병기는 “그건 이성을 넘는 감성의 문제”라고 답했다.
“난 코가 찌릿해져. 그리고 눈물이 살짝 핑 돌아.”

문득 데카르트의 말이 떠올랐다.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 김병기 선생께 적용해본다.
‘나는 그린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 전시는 5월 12일까지 가나아트센터.

jashin@fnnews.com 신진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