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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소라의 팩트체크] 암호화폐 '납치상장' 둘러싼 갑론을박

김소라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9.05.09 16:03

수정 2019.05.09 16:03

1. 누구나 암호화폐를 만들 수 있다고 상장도 누구나 할 수 있을까?  2. 비트코인 하나에 7천 만원인 암호화폐 거래소가 있을까?

“시중에 쏟아지고 있는 암호화폐와 블록체인 관련 소식들이 모두 사실일까? 시중의 주목을 끄는 뉴스 중에는 “정말일까” 고개가 갸우뚱해지는 뉴스도 많습니다. 블록포스트는 사실관계를 따져봐야 할 중요한 이슈들을 가려 팩트를 체크해봅니다.”


■누구나 암호화폐를 만들 수 있다고 상장도 누구나 할 수 있는 겁니까?


[김소라의 팩트체크] 암호화폐 '납치상장' 둘러싼 갑론을박


‘블록체인계의 지식인’이라 불리며 토큰 보상 서비스를 통해 건강한 지식 생태계를 만든다는 목표로 출발한 아하가 예기치 못한 ‘상장’ 이슈에 휘말렸습니다. 한 암호화폐 거래소에서 아하 토큰(AHT)을 상장한다는 공지가 올라왔기 때문인데요. 이에 아하 측은 ‘납치상장’이라는 말까지 쓰며 적잖이 당황했었습니다.


지난 7일 온비트(ONBTC)라는 암호화폐 거래소는 홈페이지를 통해 8일 정오에 아하 토큰을 상장한다고 발표했습니다. 온비트는 “온비트 연구개발팀(ONBTC R&D)에서 유망한 프로젝트를 선별해 우선 상장하는 ‘탈중앙 프로젝트’에 아하 토큰이 선정됐다”고 상장 근거를 밝혔습니다.


이를 알지 못했던 아하 측은 뒤늦게 커뮤니티 제보를 통해 해당 사실을 인지하고 즉각 반박 공지를 내며 아하 토큰 투자자의 주의를 당부했습니다. 아하 측은 “해당 거래소는 아하 팀과 어떠한 연관도 없으며, 아하 토큰 상장 일체에 대해 저희와 일절의 논의 혹은 소통을 한 적이 없다”며 “추후 법적대응 등을 포함한 강경 조치를 진행할 예정”이라며 다소 격앙된 심경을 드러내기도 했습니다.


그러면서 “아하 팀과 전혀 관련없는 납치상장 거래소에서 거래를 한다면 그에 따른 피해는 온전히 아하 회원님의 몫”이라며 “회원님이 선의의 피해를 입지 않도록 비트베리(암호화폐 간편 지갑 서비스) 토큰 송금을 일시적으로 제한 조치한다”고 공지했습니다.


사실상 블록체인, 그리고 암호화폐 업계에서 ‘납치상장’ 논란은 심심찮게 일어나는 일 입니다. 이는 대부분의 암호화폐공개(ICO) 프로젝트가 ‘이더리움 토큰 표준’이라는 ‘ERC-20’ 기술을 기반으로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ERC-20은 대표적인 블록체인 프로젝트인 이더리움 네트워크 위에 위치한 계약의 일종입니다. 만약, 어떤 거래소에서 암호화폐 이더리움을 입출금 할 수 있다면 해당 거래소는 이더리움 네트워크의 프로토콜을 따르고 있다는 뜻인데요. 쉽게 말해 누구나 같은 템플릿, 즉 표준을 따르고 있기 때문에 거래소에선 ERC-20을 채택하고 있는 암호화폐를 손쉽게 상장할 수 있는 것입니다.


최근 이스라엘 기반의 블록체인 플랫폼 프로젝트인 오브스(Orbs) 역시 상장문제로 한 차례 곤욕을 치렀습니다. 지난 3월 26일 국내 암호화폐 거래소 빗썸은 홈페이지를 통해 전세계 암호화폐 거래소 중 최초로 오브스를 상장한다고 밝혔습니다. 하지만 빗썸이 갑작스레 해킹으로 보이는 사고를 당하면서 자연스레 오브스 상장도 지연됐습니다.


그러는 사이 3월 30일 빌락시(Bilaxy) 거래소에 오브스가 먼저 상장되는 일이 발생합니다. 이렇게 될 수 있었던 것은 오브스의 ICO 당시 빌락시 거래소가 자체적으로 확보한 오브스 물량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때 ICO보다 낮은 가격에 거래되는 오브스로 인해 피해를 입은 투자자도 생겼습니다.


상장 이슈를 둘러싼 입장은 대체로 거래소와 암호화폐 프로젝트가 상반됩니다. “블록체인의 본래 취지인 탈중앙화에 위배되지 않기 때문에 비난받을 일이 아니다”는 거래소 입장과 “프로젝트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일이라면 상장 역시 거래소가 단독으로 결정해서는 안된다”는 프로젝트의 입장이 엇갈리는 것입니다.


하지만 프로젝트라고 해서 모두가 같은 생각을 가진 것도 아닙니다. 한 프로젝트 관계자는 “현재 30여 개에 달하는 거래소에 자체 암호화폐가 상장돼 있지만 우리가 먼저 거래소에 연락해 상장했던 적은 한 번도 없다”며 “애초에 퍼블릭 블록체인을 한다는 것 자체가 ‘열린 경제’를 만들어 나간다는 뜻이고, 프로젝트 입장에선 이런 위험들을 감수해야 하는 일”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이번에 이슈가 된 아하 측 역시 문의 결과 “해당 거래소도 나름의 입장이 있었을 것”이라며 “피차 서로 곤란하게 만들고 싶지 않다”고 답했습니다. 지난 8일 아하 홈페이지에 올라온 ‘납치상장 거래소 관련 긴급 공지’라는 공지사항도 지금은 내려진 상태입니다. 온비트 거래소도 “아하 토큰 상장을 철회한다”며 “해당 암호화폐를 입금한 고객은 신속히 출금 해달라”는 공지를 새로 띄웠습니다.


이에 대해 안 모씨(27)는 “업계 밖에서 봤을 땐, 해당 산업에 대해 아직 온전히 이해하기 어려운게 사실”이라며 “소수가 탈중앙이라는 가치를 독차지하는 것으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고 털어놓기도 했습니다.


이는 결국 “기술로 독재에 맞선다”는 취지에서 출발한 블록체인의 철학이 대중과의 진정한 공감대를 형성하기엔 아직까지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 비트코인 하나에 7000만원인 암호화폐 거래소가 있다?


트래빗 홈페이지 갈무리
트래빗 홈페이지 갈무리

9일 오전 11시 경, 현재 비트코인 시세는 암호화폐 시황중계 사이트 코인마켓캡을 기준으로 약 714만 원 가량입니다. 빗썸이나 코인원 등 국내 주요 암호화폐 거래소에서도 역시 700만 원 선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비트코인 하나를 사려면 7천 만원이 필요한 거래소가 있다고 합니다.


확인 결과, 이는 사실로 드러났습니다. 그 주인공은 거래소 트래빗(Trebit)인데요. 사이트를 방문해보니 ‘암호화폐 거래 서비스 종료 공지’라는 팝업창이 가장 먼저 눈에 띕니다. 해당 공지에 따르면 트래빗은 수 차례 보이스피싱 피해와 대고객 신뢰도 하락 등으로 심각한 경영 악화가 발생해 파산하게 됐다는 것이었습니다.


트래빗은 지난 3월까지만 해도 코인제스트, 코인이즈 등 다른 거래소들과 함께 ‘사이버범죄 예방 협의제’를 구성할 만큼 활발하게 활동해 왔습니다. 하지만 이런 노력이 무색하게도 트래빗은 지난 7월 처음으로 문을 연 뒤, 지금까지 약 4차례에 걸쳐 보이스피싱 사건이 터지며 투자자의 신뢰를 떨어뜨렸습니다.


트래빗은 지난 3월 서울 서부지방검찰청에 보이스피싱 가해자를 고소했지만, 법인계좌(벌집계좌) 특성상 가해자를 특정하기 어려웠습니다. 이에 임시 대안으로 원화 입·출금을 중단하기도 했으나 그럴수록 투자자의 불만은 높아져 갔습니다.


결국 트래빗은 오는 15일 완전히 문을 닫게 됐습니다. 하지만 더 큰 문제는 현재 트래빗에선 원화뿐만 아니라 암호화폐 입출금도 원활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처음에 트래빗 투자자들은 원화 출금이 어렵다는 것을 인지하고 암호화폐로 바꿔 자본을 출금하기 위해 모두가 암호화폐 매수에 뛰어들었습니다. 그 결과 지금의 ‘비트코인 7천 만원’에까지 이르게 된 것입니다. 하지만 암호화폐 입출금도 녹록치 않자 투자자들은 각종 커뮤니티에서 “이게 바로 진정한 먹튀가 아니냐”고 불만을 토로하고 있습니다.


현재 트래빗에 암호화폐가 상장돼 있는 한 프로젝트 관계자는 “회사 동료, 친척, 지인 등 가까운 사람들이 트래빗을 통해 자본을 투자했는데 정말 난감한 상황이다”며 우려를 드러냈습니다.


일각에선 정부의 무관심이 사태를 악화시켰다는 비판의 목소리도 나옵니다.

한 업계 관계자는 “빡빡한 규제라도 있는게 아주 없는 것보다 낫다”며 “업계 나름대로 변화된 상황에 맞게 스스로를 맞춰 나갈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srk@fnnews.com 김소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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